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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포클랜드 전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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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1982년 6월 13일 스페인 월드컵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개막했다. 참가국인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에서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남대서양 포클랜드 제도는 아르헨티나에서는 400㎞ 남짓 거리이지만 영국에서 1만6000㎞가 떨어진 곳. 영국은 1833년부터 영토로 인정했지만, 아르헨티나는 1816년 스페인에서 독립 당시 할양받았다며 반환을 주장해왔다. 양국의 영유권 회담은 1982년 2월 종료됐고, 아르헨티나는 그해 4월 전격으로 침공했지만 2개월 만에 영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당시 아르헨티나의 레오폴도 갈티에리 정권은 언론을 통제하며 이를 최대한 숨겼다. 하지만 월드컵에 참가한 아르헨티나 선수들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월드컵 개막 다음 날 외신을 통해 조국이 패전한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접하게 된 아르헨티나 선수단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렀고 결국 월드컵 결국 12팀이 올라가는 2라운드까지만 오르고 탈락했다.

양측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만났다. 아르헨티나의 2대 1 승리. 마라도나의 그 유명한 ‘신의 손’ 해프닝도 있었다. 이어 월드컵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감정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카타르 월드컵 4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승리한 아르헨티나 선수단이 라커룸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이 퍼졌다. 가사에는 ‘우리는 포클랜드의 영국인을 잊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스포츠는 정치와 갈등을 초월하는 화합의 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셔널리즘이 가장 강력하게 발현되는 무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