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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기 문란’ 국정 통계조작 의혹, 철저히 규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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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소득·고용·집값 통계 등에 정치적 개입 정황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감사원 전경. 뉴스1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감사원 전경. 뉴스1

중립성과 정확성 재확립하는 전기로 삼아야

감사원이 전 정부의 통계조작 의혹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득·고용·집값 등 주요 통계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등이 정치적 의도로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감사원은 전 정부에서 통계 작성을 총괄한 황수경·강신욱 전 통계청장을 조사한 데 이어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소환조사도 검토 중이다.

현재까지 제기된 통계조작 의혹은 세 갈래다. 첫째는 소득 통계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직후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내세워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다. 하지만 2018년 1분기 하위 20% 소득은 오히려 큰 폭으로 감소했다. 통계청이 이런 내용의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황 청장은 경질되고 강 청장이 그 자리를 맡았다. 이후 통계청은 표본 가구 수를 확대하는 등 조사 방식을 바꿨다.

둘째는 고용 통계다. 통계청은 2019년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1년 전보다 87만 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의 효과를 부정하는 결과였다. 그러자 강 청장은 “조사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과거와 비교하면 안 된다”고 강변했다. 이런 해명이 적절했는지, 당시 청와대 등의 개입은 없었는지가 관건이다. 셋째는 집값 통계다. 문재인 정부 내내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집값 상승률 통계와 부동산 시장에서 체감하는 집값 상승률의 괴리가 컸다. 조사 방법의 한계에 의한 ‘통계 착시’였는지, 정치적 의도로 수치를 왜곡한 ‘통계 마사지’였는지가 논란이다.

감사원은 통계조작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통계청 공무원 노동조합은 “표본 등 통계조사 방식의 개편은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던 일”이라며 “조작으로 보는 건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냈다. 물론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조사 방식 개편은 종종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소득주도성장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개입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만일 통계조작이 사실이라면 ‘국기 문란’의 관점에서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치권은 불필요한 정쟁을 자제하고 감사원의 조사 결과를 차분히 지켜보는 게 바람직하다. 감사원도 야당의 주장처럼 ‘정치 감사’나 ‘언론 플레이’로 비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번 일을 통계의 정확성을 한층 높이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통계는 정부가 국정을 운영하는 데 근간이 된다. 통계가 왜곡되면 이를 기초로 한 정부 정책도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연구자들이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도 정확한 통계는 필수 조건이다. 통계청을 비롯한 통계 생산 기관이 정책의 수요자인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데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