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 겨눈 시진핑, 중동 목줄 잡았다...위성에 찍힌 '400m 증거' [채인택의 세계 속 중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중국은 이미 세계 경영에 나서고 있다. 중국인들은 ‘없는 것이 없다’는 광활한 중원을 넘어 전 세계에 진출한 지 오래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해외로 나가 삶의 터전을 개척해야 했던 화교도 있고, 개혁‧개방과 성장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라 밖으로 떠난 사람도 상당하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일대일로 구상을 밝힌 이래 중국인들은 더욱 조직적으로 전 세계로 나가고 있다. 중국이 개척했거나 하고 있는, 또는 하려고 하는 다양한 글로벌 터전과 그 진출 과정의 역사와 지리를 살펴보면서 그 속에 자리 잡은 전략과 명암을 따지고 미래를 조망한다. 중국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나.

제1화: 지부티 

'중동 목줄'인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 요충지까지 진출한 중국의 지정학적 혜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2월 7~10일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으면서 중국과 아랍권의 관계가 변곡점을 맞고 있다. 시 주석은 9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6개 걸프협력회의(GCC) 정상들과 중국-GCC 정상회의를, 21개 아랍연맹 회원국(22개 회원국 중 자격정지 상태인 시리아 제외) 정상들과는 중국-아랍 정상회의를 각각 열었다. 중국이 중동·아랍 세계로 이만큼 다가선 적은 아직 없었다. 대규모 구매와 투자를 확정하고, 에너지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기로 하는 등 양측은 어느 때보다 밀착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의 위안화 결제는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균열을 노리는 것일 뿐 아니라, 대만 등 유사 사태 시 미국 등 서방의 국제결제시스템을 우회해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어서 주목된다.

이는 미국과 중동의 관계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미국은 중동에서 1930년대 자국 기업의 사우디 유전개발 이래 약 90년, 1951년 사우디와 상호방위협정을 맺은 이래 70년이 넘도록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1980~2000년 셰일가스에 세제 혜택을 주면서 생산이 급증해 에너지를 자급하기 시작하면서 중동에 대한 관심이 줄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4년 사우디와 수니파 연합군의 예멘 내전 개입으로 발생한 인도주의 참상과 2018년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와 관련해 사우디를 비난하면서 중동권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중국은 그 틈새를 전략적으로 파고든 셈이다. 포린폴리시는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과 관련, ‘미국과 사우디의 일부일처 결혼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제목으로 상황을 요약했다.

중국은 이런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 중동에 공을 들여왔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3월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사우디‧터키‧이란‧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오만 등 중동‧이슬람권 6개국을 순방하면서 지역 안보와 에너지 수급, 백신을 비롯한 보건, 5G,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논의했다.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 등의 목적으로 전략적으로 진출한 중동 국가 중에서 아프리카 동중부에 위치한 지부티는 유난히 눈에 띈다. 지부티는 아랍연맹 회원국으로, 시 주석은 사우디에서 중국-아랍 정상회의를 한 것은 물론 이스마일 오마르 겔레 대통령과 단독으로 회견했다.

지부티는 사실 인구 90만에 국토 면적이 전라남북도보다 조금 넓은 2만 3200㎢에 불과해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하지만 지부티의 가치는 국토나 인구로 판단할 수 없다. 이 작은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초크포인트(Choke Point: 요충‧관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홍해 입구, 즉 홍해의 남쪽 끝에 위치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부티 앞에는 아덴만에서 홍해로 이어지는 약 26㎞ 폭의 좁은 수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해협으로 통한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 홍해를 북쪽 끝까지 항해하면 글로벌 초크포인트인 수에즈 운하가 있기 때문이다.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수에즈 운하는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의 제조업 국가에서 생산된 수많은 상품이 유럽‧북아프리카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급소와도 같은 좁은 바다 길목이다. 인도‧동남아시아‧호주‧뉴질랜드의 다양한 상품도 지부티 바로 앞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쳐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지나 유럽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세계 최대 산유국의 하나인 사우디에도 이 해협은 경제와 안보의 목줄과도 같다. 사우디의 동부 아라비아만(페르시아만) 연안에서 주로 생산된 원유와 가스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하거나, 1982년 준공한 길이 1201㎞, 직경 120㎝의 동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홍해 연안을 거쳐 수에즈 운하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 외부로 운송되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물론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를 비롯한 페르시아만 지역의 산유국들이 생산한 석유와 가스도 유조선과 가스 운반선에 실려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그리고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지부티는 이런 길목을 지키는 경제 안보의 핵심 요충지인 것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의 안보와 세력균형 유지에도 중요하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분쟁 위험이 큰 바다다. 지부티는 물론 2014년부터 내전과 국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예멘과 1991년부터 내전으로 전국을 통제하는 중앙정부가 없는 혼란의 소말리아, 분쟁으로 점철된 에리트레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둘러싸였기 때문이다. 바브엘만데브 해협 동남쪽에는 소말리아 해적을 막기 위해 한국이 군함을 파병한 아덴만이 있다.

실제로 2016년 10일 예멘의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항해 중인 미 해군 구축함 메이슨 함을 향해 이란이 지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대함 미사일을 발사했다가 요격된 적도 있다. 이에 따라 강대국이나 무역 국가들은 홍해의 남쪽 입구를 아우르는 지부티의 지정학적·전략적 가치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서구 강국들은 오래전부터 지부티의 이런 가치에 주목했다. 1977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지부티는 식민지 시절 프랑스군이 사용하다 두고 철수한 레모니에르 기지를 2002년부터 미군에 임대를 주고 있다. 주둔비는 지부티의 주요 외화 수입원으로 전체 국내총생산(GDP) 37억 달러(2022년 명목금액 기준 IMF 전망치)의 약 5%를 차지한다. 미국은 2014년 주둔 기간을 20년 연장하는 장기 계약을 맺었다.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바다와 하늘을 방어하며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데 지부티만 한 곳은 찾기 힘들다.

프랑스는 지부티 독립으로 한때 떠났다가 주둔비를 지불하면서 새롭게 군 기지를 가동하고 있다. 지부티 공항에 설치된 제188 기지는 프랑스의 해외 기지 중 최대 규모로 정예 제13 외인여단이 주둔한다. 프랑스의 해외 부대 중 유일하게 3성 장군이 지휘한다. 프랑스군은 옛 식민지인 아프리카 차드‧말리‧니제르에 3750명의 병력을 파병하고 있는데, 지부티는 이 지역의 작전‧정보‧보급 지휘소,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에 대한 신속 대응 부대의 주둔지로 활용한다. 2019년 3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부티를 방문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프랑스와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지부티에 군수기지를 운영한다. 나토 차원에서 운영하는 전략적 기지다. 일본 자위대도 유일한 해외 기지를 지부티에 유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 공을 들이며 외교 영역 확대를 노렸던 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신경을 쏟았던 곳이다. 지부티 기지를 지렛대 삼아 자위대의 해외 활동을 확대하면서 정식 군대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의도가 읽힌다.

중국은 이런 지부티를 놓치지 않았다. 중국은 2016년 3월 지부티의 도랄레항 바로 옆에 해외 군사기지를 건설해 2017년 8월부터 사용하고 있다. 현재 1000~2000명의 인민해방군 해군이 주둔하면서 해외 보급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 9월에는 이 기지 인근에서 실탄 훈련도 했다. 미국 레모니에르 기지와 13km 떨어진 곳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사력을 중동과 아프리카로 투사하면서 미국과 서방을 견제하는 지정학적인 핵심인 셈이다.

중국이 이렇게 머나먼 곳에 해외 보급 기지를 설치한 다른 이유로 읽힌다. 홍콩 온라인 매체 홍콩01은 2019년 12월 중국이 항모 접안이 가능한 부두를 지부티에 건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20년 5월 영국의 더타임스는 포브스가 보도한 지부티 중국기지의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이곳에는 길이 400m의 접안 시설이 완성됐다고 전했다. 이는 중국이 현재 보유한 두 척의 항모를 접안할 수 있는 규모다. 장기적으로 중국의 항모를 글로벌에 전개할 수 있는 바탕을 이곳에 마련한 셈이다. 지부티는 글로벌 안보의 핵심 승부처가 되고 있으며, 중국이 선두 주자로 달리고 있는 셈이다. 심모원려(深謨遠慮)의 중국 글로벌 전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