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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게임·OTT·음악 소비자 불만…한동훈 ‘이 법’으로 한 방에?

중앙일보

입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게임·OTT·음원·웹툰 같은 디지털콘텐트 소비자의 권리를 한꺼번에 다루는 법이 나온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아닌 법무부가 앞장서 만드는 ‘디지털콘텐츠계약법’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가챠 게임’(확률형 아이템 판매 게임) 조작의 법적 책임도 물을 수 있다”라며 직접 법안 홍보에 나섰다. ‘실세 장관이 왜 우리에게 관심을 갖나’, 콘텐트 업계의 연말 긴장감이 한껏 올라갔다.

무슨 일이야 

법무부가 지난 1일 입법예고한 디지털콘텐츠계약법(민법 개정안)을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게임·OTT·음악·웹툰·전자책 등 디지털 형태로 제작·공급되는 콘텐트 또는 서비스에 모두 적용되는 법안이다.

법무부는 “디지털 콘텐트는 복제 가능성과 기술환경의 영향 등, 일반 매매계약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어 그에 맞는 규범이 필요하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현재는 게임사 등 개별 회사의 약관으로 규율하는데, 이용자 보호에 미흡한 점이 있어 민법 적용 대상에 넣겠다는 것.

무슨 내용이길래

법안의 가장 큰 특징은 디지털콘텐트의 ‘품질’을 제공자의 의무로 본다는 것. 법무부가 공개한 개정안에는 ▲제공자가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품질의 제품을 제공할 의무 ▲품질 유지를 위해 업데이트를 할 의무 ▲제품 하자 시 담보책임 규정 ▲제공자가 제품을 변경할 권리 ▲이용자가 해지할 권리 등이 담겼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현행법상 디지털콘텐트 이용자 보호는 전자상거래법이 다루는데, 청약 철회(환불) 중심이다. ‘구매 후 이용 개시 전 환불 가능’, ‘다회 사용일 경우 분할 환불’ 등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 고시도 마찬가지다. 고시에 명시한 모바일콘텐트업·온라인게임서비스업의 분쟁 유형은 ‘7일 내 환불 요구’, ‘소비자 동의 없는 결제’, 허위 과장광고’, ‘미성년자의 지불’ 등이다. 다른 품목처럼 부패·함량미달·하자 같은 품질 분쟁은 다루지 않는다. 디지털콘텐트의 ‘품질 유지’을 법에 명시한 것은 디지털콘텐츠계약법이 처음이다.

뭐가 달라지지

‘디지털 콘텐트의 품질 제공·유지 의무’는 꽤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한 장관이 직접 언급한 ‘게임 아이템의 확률 조작·비공개’뿐 아니라 온라인 서비스의 갑작스러운 중단, OTT나 동영상 서비스의 화질·속도 저하 등에 모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한 해 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우마무스메:프리티더비(카카오게임즈)의 운영 과실 문제, 리니지(엔씨소프트)의 VJ 유료 프로모션 사태, 트위치의 화질 저하 등도 넓게 보면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품질’에 미치지 못했다는 소비자의 불만이었다.

지난 9월 카카오게임즈의 '우마무스메:프리티 더비' 국내 이용자들이 게임사의 운영 방침에 항의하는 의미로 실행한 '항의 마차'가 판교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카카오게임즈의 '우마무스메:프리티 더비' 국내 이용자들이 게임사의 운영 방침에 항의하는 의미로 실행한 '항의 마차'가 판교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관련 기업들은 겉으로는 “법의 취지를 살피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속내는 복잡하다. 가장 큰 우려는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품질’의 주관성이다. “이 법대로라면 OTT 서비스에 신작이 적다거나 웹툰 분량이 기대보다 적은 것도 모두 ‘품질’ 문제가 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콘텐트 업체 임원은 “규제가 없어도 사업자들은 사용자 만족을 위해 시장에서 경쟁적으로 품질을 높이고 있다”며 “다소 막연한 규제가 더해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법무부는 보도자료에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품질의 구체적인 요구 수준은 추후 판례와 거래 관행 등으로 점진적으로 구체화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무책임한 처사”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OTT 업체 임원은 “재판을 여러 번 하다 보면 기준이 만들어진다는 건데, 일반 이용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겠나”라며 “이용자 보호를 주무로 하는 부처였다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 웹툰 업체 임원은 “판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 사업자 입장에서는 규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단 의미이고, 감당해야할 사회적 비용도 커진다”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한 중견 게임사 임원은 “통신사들은 약관에 서비스 중지 시 요금 환급 조건 등을 자세히 밝혔으나 대부분의 게임사는 그렇지 않았다”라며 “법이 만들어지면 게임사 약관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라고 했다. 새 법안이 공정위의 약관 심사에 법적 근거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동통신사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요금제뿐 아니라 일반 약관도 변경 때마다 과기부에 신고해 감독을 받는다.

법무부는 왜

게임·OTT·음원서비스 등 디지털콘텐트 산업은 ‘콘텐트’이면서 ‘디지털’로 제공되는 특성상 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리·감독해 왔다. 공정위는 약관 조사와 표준 약관 발표 등으로 감독했다. 그런데 법무부가 왜?

① 글로벌 스탠더드야
디지털콘텐츠계약법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 2019년 발표한 ‘디지털콘텐츠 및 디지털서비스 공급의 계약법적 측면에 관한 입법지침’(디지털 지침)과 내용이 유사하다. 디지털 지침은 EU 회원국들이 국내법에 적용할 표준 규범이다. ‘하자 있거나 불완전한 업데이트는 계약 위반’이라고 규정하는 등 디지털 콘텐트·서비스의 ‘품질 관리 의무’를 명시했다. 법무부는 입법예고 보도자료에 EU 디지털 지침을 언급했다. 갑작스러운 입법이 아니라 유럽도 적용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얘기다.

② 민법이 기본이지
디지털콘텐츠계약법은 별도의 제정법이 아닌 민법 개정안이다. 민법 3편 2장은 증여·매매·교환·고용·도급·화해 등 15종의 계약을 정하는데, 여기에 16번째로 ‘디지털제품 제공계약’을 추가하게 된다. 그간 게임·OTT·웹툰·음원 등은 각 주무 부처가 규제나 진흥을 논해 왔으나, 법무부가 민법으로 기본을 잡는 모양새다. 법무부는 중앙일보 질의에 “민법은 일반법이고 기본법이니, 여러 개별 법들의 기초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OO 규제법’이 아닌 ‘이용자 보호법’인 만큼, 사업자들이 정면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 [연합뉴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 [연합뉴스]

한동훈은 왜

한동훈 장관은 입법예고 후 법무부 SNS를 통해 “이번 법안으로 가챠 게임에서의 확률정보 거짓 제공, 확률 조작 등에도 적절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별도 발언을 남겼다. 해당 게시물에는 “한 장관님은 무슨 게임을 하시냐”, “확률형 아이템 판매로 떼돈을 버는 ** 회사를 조사해 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콘텐트 서비스 이용자 권리를 강화한 법안에 게임 이용자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밤늦게 올린 트윗. 사진 이재명 트위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밤늦게 올린 트윗. 사진 이재명 트위터

최근 디지털 소비자들은 게임 운영이 불만스러우면 회사 앞에 항의 마차를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권익 찾기에 나선다. 정치권도 청년 세대 표심을 염두에 두고 디지털콘텐트 관련 정책·법안을 내놓는 모양새다. 지난 10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꺼내든 ‘망 사용료 법안’(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대표 사례다. 구글·넷플릭스 등 거대 콘텐트사업자(CP)에 한국 기업과 동등하게 통신망 사용 대가를 받겠다는 이 법안은 이 대표의 대선 출마 당시 공약이었고, 여야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했었다. 그러나 유튜브·트위치 같은 동영상 서비스 주 사용자인 젊은 층에서 망 사용료 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불거지자 이 대표가 ‘망 사용료 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제동을 건 것. 현재 법안 통과의 동력은 다소 떨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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