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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무속적""이태원 정치적"…여론 만드는 여론조사 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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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대결 부추기는 여론조사

사례 1: “(이태원 참사 추모와 관련해) 위패와 영정을 생략하고 글씨 없는 리본 착용을 정부가 지시한 것이 무속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올 11월 16일, 여론조사꽃)

사례 2: “이태원 핼러윈 사고를 정치 쟁점화해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올 11월 8일, 여론조사공정)

여론조사가 진영 대결을 확산시키는 도구로 변질하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 업체 92곳이 난립해 있다. 여론조사의 편향성 논란은 친야 성향 방송인으로 불리는 김어준씨가 재점화했다. 사례 1은 김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여론조사꽃’(이하 꽃)에서 실시했다. 이 문항에 응답은 ‘그렇다’ 39.0%, ‘아니다’(37.9%)로 각각 나왔다. 현 정부의 무속 연계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때부터 부인해 온 내용이다. 그러나 이 문항은 마치 윤석열 정부가 무속의 영향을 받아 ‘위패와 영정을 생략하고 글씨 없는 리본 착용’을 한 것이라는 오해를 은연중에 유도하기 십상이다. 김씨는 “‘국정에 무속이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냐’고 물으면 훨씬 높게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례 2는 ‘여론조사공정’(이하 공정)에서 수행했다. 설립 초기 임원진이 보수 성향 기독교계 인사들이었다는 이유로 우편향 의혹을 받는다. 조사 문항은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정치적 성향의 촛불집회로 흘러간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공정’은 과거에도 논란을 빚었다. “‘노회찬 의원 사망사건 자살/타살 여부’, 자살이라는 의견과 타살이라는 의견이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2018년 7월)가 단적인 예다. 고(故) 노회찬 의원의 극단적 선택에 꼬리를 물던 정치적 음모론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는 지적을 받았다.

여론조사 문항 표현을 조정해 특정 성향의 응답 비율을 ‘조작’하는 시도를 ‘문구 효과(Wording Effects)’라고 한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신창운 인하대 겸임교수는 “김어준씨의 여론조사 결과물이 10건 이상 쌓이면서 전문가들도 주목하고 있다”며 “정파적으로 지목된 기관의 문항에선 특정 답변을 노리는 것으로 보이는 문구들이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진실 왜곡 부메랑…100만명이 “여론조사 전화 안 받겠다”

문구 효과 논란은 선거철에 기승을 부린다. 상대 후보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내기 위해 ‘성폭력 가해 교사를 변론했던 A후보’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B교수’와 같은 표현을 문항에 넣는다.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 때 이런 이유로 여론조사심의위가 제재한 사례는 165건에 이른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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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이 엇갈리는 내용들을 하나의 문항 안에 넣어 특정 답변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귀하께서는 경제 악화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 및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보십니까?’(꽃, 11월 2일)와 같은 방식이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 상황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인식을 물어본 뒤 그 평가에 대한 책임 주체를 묻는 게 정공법이다. 그런데 경제가 어렵다는 걸 기정사실로 깔아둔 채 질문을 던져 의도한 답변을 구하려는 인상을 준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대표가 자신과 관련된 의혹 사건들에 대해 직접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공정, 10월 25일)라는 문항도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 A씨는 “‘직접 조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불확실하고, 이 대표가 범죄 피의자라는 전제를 두고 하는 질문”이라고 했다.

원하는 답변 끌어내려 교묘하게 질문

문항에 정파적 표현을 담기도 한다. 꽃은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씨’라는 문구를 일관적으로 사용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쓰는 명칭은 ‘김건희 여사’다. 다른 다수의 여론조사 기관도 여사로 표현한다. 지난 9월 발표된 ‘윤 대통령 탄핵 주장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52.7%’라는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 업체의 대표가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출신이라고 알려져 ‘입맛 조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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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에게 심리적 영향을 끼친다. 2018년 정성은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지도가 우세한 것으로 발표된 후보에 대한 우호도 변화를 연구했다. 연구 조사 대상 중 41.0%가 우세한 후보에 대한 지지도 상승 심리를 나타냈다. 우세한 후보에 대해 반감을 갖는 비율은 21.7%에 그쳤다. 여론조사 결과를 접한 대중이 대세에 편승하려 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했다.

김어준씨가 여론조사 업체를 세운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파악된다. 김씨는 올 3월 대선이 끝난 뒤 한 방송에서 “여론조사로 (유권자들을) 가스라이팅(타인 심리를 지배하려는 시도)했고, 그것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털어놨다. 여론조사가 국민 여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 셈이다. 신창운 겸임교수는 “이런 왜곡된 여론조사가 판칠 경우 진영 결집과 대결을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어떤 기관이 여론조사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에 영향을 준다. 국민의힘 공정미디어위원회는 15일 성명에서 이를 ‘하우스 이펙트’라고 표현했다. ‘꽃’의 11월 4주 차 여론조사에선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52%(타사 기준 35~40% 후반)가 나온 적이 있다.

여론조사 기관 성향 따라 결과 큰 차이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응답자가 여론조사 기관의 성향을 우호적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설문에 응하는 적극성이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조사 기관 간 편차가 커지고, 기관별 정치적 이미지가 더욱 굳어져 다음 조사에도 반영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꽃’ 측은 “답변하지 않기로 했다”고 중앙일보에 전했다. ‘공정’은 과거 ‘노회찬 설문’ 등에 대한 논란 당시 “주제 선정은 ‘사실로 확인된 것’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국민의 생각을 물을 수 있다”는 입장을 냈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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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응답률은 보통 3~5%다. 현재 전국의 여론조사 업체는 92곳. 이 업체들 한 건당 1000명의 응답자를 채우는 과정에서 2만~3만 명이 여론조사 전화를 받는다는 뜻이다. 전화 자체를 받지 않는 사람 수는 이보다 더 많다. 올해 치러진 대선과 지방선거 때 통신사가 암호화해 여론조사 기관에 제공한 가상번호만 무려 4469만 건에 이른다. 사실상 전 국민이 여론조사 전화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여론조사심의위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가상번호 제공에 거부 의사를 밝힌 휴대전화 이용자 수는 100만 명에 이른다. 1년 전 7000명에서 급증한 것이다. 여론조사 전화를 아예 안 받겠다는 사람이 1년 사이 무려 142배에 폭증한 것이다.

규제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전문가들은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하상응 교수는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대다수 시민의 판단으로 저질 여론조사가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박원호 교수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인내심이라는 자원을 사용하는 작업인데, 현재는 그 자원을 남획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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