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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대한민국, ‘카·페·인’ 우울증에 빠진 청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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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10~20대 정신건강 위험수위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조현병 환자들이 입원하는 정신과 폐쇄병동이 자해 청소년들로 가득해요.” 신의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의 이야기다. 신 교수는 “2019~2021년 연세대 상담센터장을 하면서도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다”며 “청년들의 정신건강이 매우 위태롭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대 우울증 환자는 지난해 17만 7166명으로 2017년(7만 8016명)보다 127.1% 급증했다. 불안장애 환자도 같은 기간 5만 9080명에서 11만 351명으로 86.8% 늘었다.

유아부터 경쟁 치열 20대 ‘번아웃’
청년 불안장애 4년 새 86% 급증
SNS 많이 쓸수록 우울감도 높아
“지나친 비교가 불행의 큰 원인”

우울증·불안장애 환자가 많아지면 자살률도 높아진다. 국내 자살률은 2011년 정점을 찍고 꾸준히 감소 추세인데, 10~20대만 반대로 늘고 있다. 2017~2021년 10대 자살률은 4.7명(10만 명당)에서 7.1명, 20대는 16.4명에서 23.5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20대는 전체 사망 원인의 56.8%가 자살일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

‘청춘의 그림자’는 비단 정신질환이나 극단 선택을 시도하는 일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층 전반에서 삶의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정적 정서가 팽배해 있다. 서울연구원의 시민행복도 조사 결과를 보면 청년들의 건강·사회생활 등 5개 부문의 행복지수 모두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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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2017~2020년 건강은 7.7→7.2, 친구관계는 7.3→6.7, 사회생활은 7.3→6.4로 떨어졌다. 변미리 서울연구원 도시모니터링센터장은 “최근 몇 년 새 20대의 행복도가 급격히 낮아졌다”고 말했다. 청춘의 아픔은 커지고, 행복은 작아진 이유는 뭘까.

‘갖고 싶은 것 vs 가진 것’ 이스털린의 역설

행복경제학의 창시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갖고 싶은 것과 실제 갖고 있는 것의 차이가 행복”이라고 했다(『지적행복론』). 행복의 3가지 요소는 ①물질적 부와 ②건강 ③가족을 포함한 사회관계다. 건강·사회관계는 행복과 정비례한다. 하지만 부는 일정 수준에 이르면 행복을 높여주지 않는다. 바로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역설의 이유는 “가진 게 많을수록 갖고 싶은 것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물욕은 끝이 없어 준거 기준이 계속 높아지지만, 물질의 소유를 통해 얻는 한계효용은 계속 낮아진다. 오히려 타인의 상황에 자신을 대입하는 사회적 비교가 더해지면 불행을 느끼기 쉽다.

최근 확산하는 ‘카페인 우울증’이 대표적이다. 이는 “카카오스토리·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에서 타인의 행복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네이버 시사상식사전)을 말한다. 실제로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19~32세 1800명 조사)에 따르면 SNS 접속 빈도 상위 25%는 하위 25%에 비해 우울증 발병 위험이 2.7배 높다.

직장인 최모(여·28)씨는 “SNS에서 명품 가방으로 도배된 사진들을 보면 초라함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정수현(여·24)씨는 연령이 낮을수록 이런 경향이 심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인플루언서를 닮고 싶은 10~20대가 많은데 남는 건 실망뿐”이라며 “SNS의 화려함을 평균으로 착각해 자신을 과소평가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SNS에 중독

‘카페인 우울증’이 10~20대에서 심한 이유는 SNS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2020 인터넷 백서』에 따르면 10대가 주 평균 29.2회를 이용해 부모 세대인 50대(17.9회)보다 월등히 많다. SNS를 매일 쓴다고 답한 비율은 10대(81.5%), 20대(74.9%), 30대(69%), 40대(62.5%), 50대(61.3%), 60대(44.1%) 순이다.(서울연구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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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처음 접한 시기도 중요하다. 신의진 교수는 “기성세대는 아날로그로 세상을 배운 뒤 성인이 돼 디지털을 접했지만 10~20대는 유년기부터 디지털을 경험한다”며 “자아 확립과 인격 성숙이 덜 된 상태에서 디지털 의존이 심해지면 정서조절능력과 회복탄력성이 약해진다”고 설명했다.

전보다 치열한 청소년기 경쟁 환경도 비교 스트레스를 높인다. 특히 학교생활과 내신 성적을 중시하는 수시 제도의 영향이 크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학력고사나 수능은 경쟁자가 전국의 또래들이지만 수시는 내 옆의 같은 반 친구들”이라며 “수시 비율이 2000년 3.4%에서 2020년 77.7%로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고교의 내신 경쟁이 너무 살벌해 친구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제대로 못 배우면 성인이 돼서도 경계 성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학에서도 취업 경쟁을 벌여야 하니 개선될 기회가 적다”고 강조했다.

치열한 경쟁 탓에 청년들이 일찌감치 ‘번아웃(burnout·지친 상태)’ 되기도 한다. 김병규 넷마블 경영기획담당(COO)은 “어릴 때부터 혹독하게 입시와 취업 경쟁에 ‘올인’한 나머지 정작 회사에 들어온 뒤 오히려 열정이 꺾이는 경우도 있다”며 “10년 이상 치열하게 고생했으니 이제는 쉬엄쉬엄하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행복하려면 사회적 비교 줄여야

청년들의 행복감을 높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구교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물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췄던 국가발전전략을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목표를 수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실효성 있는 복지정책과 균등한 기회제공으로 계층이동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줄 세워 타인과 비교를 강요하는 교육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한국교육학회장을 지낸 김성열 경남대 명예교수는 “입시에선 비교 평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교육 전반에선 다양한 잣대로 학생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동기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개인의 억압기제로 작용하는 집단주의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최은수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규범이 명확하고 어길시 강한 처벌이 내려지는 ‘타이트 컬처(tight culture)’ 사회를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집단주의 문화일수록 사회적 비교가 많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구교준 교수는 “핀란드는 가장 개인주의적인 나라지만 공동체 문화가 강하고 ‘타이트 컬처’인 한국은 반대”라며 “개인의 자율성이 존중받는 사회일수록 행복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엔이 발표한 2022 세계 행복지수 1위 국가는 핀란드이며, 덴마크(2위)·아이슬란드(3위) 등 북유럽 국가들이 최상위에 포진해 있다.

스스로는 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단단해져야 한다. 자기 가치관을 똑바로 세우면 타인과의 비교에 휘둘리지 않는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자신의 주체적 결정에 따라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다. 그 선택이 꼭 옳아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스스로 결정해 움직이는 삶은 그 자체로 의미 있기 때문이다(『자유론』).

1인당 GDP 520배 늘었지만 행복도는 여전히 낮아

리처드 이스털린

리처드 이스털린

경제학에서 효용(utility)은 재화를 소비해 얻는 만족도를 뜻한다. 관찰 가능한 데이터를 사용해 소비자 행동을 설명하는 현시선호이론은 ‘결정효용(decision utility)’을 중시한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라는 빌프레드 파레토의 말처럼 사람들은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대안이 여럿이면 예상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리처드 이스털린(사진)은 ‘결정효용’이 실제 만족도인 ‘경험효용(experienced utility)’과 다르다고 한다. 같은 일을 하는 A, B 두 회사의 월급이 각각 320만원, 330만원일 때 겉으로 보이는 ‘결정효용’은 B회사가 크다. 그런데 다른 동기들의 월급이 A, B회사 각각 300만원, 350만원이면 실제 ‘경험 효용’은 어디가 클까. 인간은 상대적 비교를 통해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A회사의 만족감이 더 높다는 게 이스털린의 생각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1953년 67달러에서 2021년 3만4870달러로 520배 늘었지만 행복은 그만큼 커지지 않았다. 한국의 ‘세계행복지수’(유엔)는 처음 조사가 시작된 2012년 56위에서 2022년 59위로 오히려 떨어졌다. 상대적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과 경쟁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정도가 심하기 때문이다. 반면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사회적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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