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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늘어나는 전세 사기, 세입자의 알 권리 강화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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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세보증보험금 사고·금액 지난해 수준 넘어서    

집주인의 비정상적 주택 수 등 세입자도 알아야

집값 하락이 이어지면서 주택 매매가격이 주택담보대출과 전셋값을 합친 금액과 비슷하거나 이보다 낮은 이른바 ‘깡통주택’이 늘어나고 있다. 전셋값도 떨어져 전세 시세가 계약 당시보다 하락하는 역전세도 많아졌다. 이래저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커졌다는 얘기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전세금을 내준 사례가 올 들어 10월까지 3754건, 7992억원에 달한다. 이미 지난해 전체 전세보증보험금 사고 건수(2799건)와 변제액(5790억원)을 넘어섰다.

부동산 경기 탓만은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된 ‘빌라왕’ 사례처럼 전세사기 의혹까지 터졌다. 수도권에서 1139가구를 세놓은 40대 김모씨가 갑자기 사망했다. 세입자 중 500명은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했지만 소용없었다. 세입자들은 임대차 계약 해지를 사망한 집주인에게 통보할 수 없었다. 김씨가 수십억원의 종부세를 체납하고 있어 친족들이 상속을 포기할 경우 법원이 상속재산 관리인을 선임하면 계약 해지 절차를 밟을 수는 있다. 하지만 상속재산 관리인이 선임될 때까지 통상 6개월~1년이 걸린다. 정부도 대책을 강구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국토부와 법무부에 TF를 만들어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법원이 관련 절차를 서두를 수 있다지만 충분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

‘빌라왕’ 김씨와 비슷한 사례는 여럿이다. 무려 3493채의 빌라를 세놓고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구속기소돼 ‘빌라의 신(神)’으로 불리는 이가 있고, 두 딸을 임대인으로 세우고 136채의 전세금을 가로챈 화곡동 사건도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자본 갭투자’를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점이다.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높거나 매매가격이 형성되지 않은 신축 빌라를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수천 채의 주택을 세놓았기 때문에 유지보수 등 집주인으로의 기본적인 의무조차 이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의도적인 전세 사기 의혹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현재 국회에는 세입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는 법안들이 상정돼 있다. 집주인의 세금 체납 정보를 등기부등본에 기재하고, 공인중개사가 세입자를 대신해 집주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개별 호수 등기가 되지 않는 다가구주택도 임대차 내역과 전입일자 내역을 세입자가 알아야 위험관리를 할 수 있다. ‘빌라왕’ 같은 사고를 막으려면 집주인의 보유 주택 수 같은 정보를 세입자도 알 필요가 있다. 집주인의 보유 주택이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서면 사회적 약자를 울리는 전세 사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늦지 않게 내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