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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크리스마스 같은 것" 사람·반려견 잃은 마음도 온기를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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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금희는 "크리스마스는 일 년간 뭘 했든 모두가 특별한 느낌을 갖고 새로운 해를 준비할 수 있는 날"이라며 "한 해의 끝에서 맞는 만남과 그 이후의 기분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김금희는 "크리스마스는 일 년간 뭘 했든 모두가 특별한 느낌을 갖고 새로운 해를 준비할 수 있는 날"이라며 "한 해의 끝에서 맞는 만남과 그 이후의 기분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년을 어떻게 보냈건 크리스마스엔 한 해를 인정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잖아요. 크리스마스는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인 것 같아요."

김금희 연작소설 『크리스마스 타일』

지난달 소설집 『크리스마스 타일』(창비)을 펴낸 소설가 김금희(43)의 말이다. 지난 7일 만난 그는 "1년 중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든 사람이 특별한 느낌이 드는 하루가 크리스마스"라며 "한 해의 끝의 만남이나 풍경, 깨달음을 파티처럼 보내고 또 다른 국면을 바라보는 좋은 기분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타일도 간격 필요하듯, 사람도 간격 필요하더라"

김금희는 "타일이 간격을 두고 붙어서 벽면을 이루는 모습이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 같더라. 저 간격이 없으면 벽면이 지탱되지 않듯, 사람 사이에도 약간의 간격이 있어야 관계가 지속되는 것 같다"고 제목을 단 이유를 설명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금희는 "타일이 간격을 두고 붙어서 벽면을 이루는 모습이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 같더라. 저 간격이 없으면 벽면이 지탱되지 않듯, 사람 사이에도 약간의 간격이 있어야 관계가 지속되는 것 같다"고 제목을 단 이유를 설명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크리스마스 타일』은  7개 단편을 모은 연작소설집이다. 방송국 PD 지민, 작가 소봄, 출연자 ‘맛집 알파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자의 이야기가 마지막 작품 ‘크리스마스에는’으로 퍼즐처럼 맞춰진다. "우리에게 겨울이,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무엇이,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간이 진짜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는 '작가의 말'처럼, 저마다의 장소와 풍경에서 진짜 마음과 생각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제목 '크리스마스 타일'은 “타일을 붙인 벽면이 잘 유지되려면 타일 사이 간격이 없으면 안 되듯, 사람도 함께 벽면을 이뤄서 무게를 감당하려면 약간의 간격이 있어야 하더라”는 뜻을 담았다. 타일이 붙어있는 모습이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 같더라고 했다. “부산 해운대 맥도날드 가는 길 보도 위, 보랏빛 섞인 베이지색 타일에 햇빛이 쫙 드는 장면을 보고 떠올린” 제목이다.

'슬픔'이 장기인 김금희, 한 방울 온기 더해진 새 책

단편들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계절·날씨 같은 풍경처럼 펼쳐진다. 40대 방송작가 은하는 '삶에 피하지방처럼 껴있는 모든 영양가 없는 관계들과 결별해야지' 마음먹었다가도, 데면데면했던 조카가 보낸 '고모 이제 안 아파요? 다 나았어요?'라는 문자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은하의 밤'). IT 개발자 세미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들어하던 청소년기를 위로해줬던, 겨울 흰 눈 같은 강아지 '설기'가 하늘로 떠난 뒤에도 선뜻 보내지 못하고 애태우지만 결국에는 강아지 용품을 모두 정리한다('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PD 지민은 세간의 화제가 된 옛 연인 '맛집 알파고'가 꼼수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무심하게 새해맞이 보신각종 타종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크리스마스에는'). 하나같이 지하철 옆자리 누군가의 이야기일 법하게 친숙한 사연들이다.

전체적으로 쓸쓸하다가도, 인물들 대부분이 완전히 행복하진 않지만 약간은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된다. '서늘하게 슬픈 마음'이 주를 이뤘던 김금희의 전작들에 비해 약간의 온기가 더해진 결말들이다. 김금희는 “나는 똑같이 썼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내고 나니 이전과 좀 다르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내가 조금 변했나 보다”라고 했다.
 김금희는 최근 몇 년간 변화하는 인간관계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마음의 부피를 줄이는 게 고립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이젠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마음을 갖는 게 좋다는 걸 압니다. 인간은 모였다가 흩어지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성숙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이런 깨달음은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상실은 견딜만해졌다"('월계동 옥주') 같은 문장에 고스란히 남았다.

40대, 중견, 반려견 잃은 마음도 문장으로

김금희는 2009년 데뷔해 14년차, 어느새 40대 중반을 향한다.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로 방송작가 은하를 꼽았다. “나 자신과 나이가 비슷하고, 사회생활하는 모습도 비슷해서”라고 했다. "자기 이외의 세상에는 별 관심 없이도 별일 없이 살아지는 중년 간부의 매직에 기대어" "그러면 일단 두루 다 해보라는 국장의 말로 몸만 피곤한 쪽으로 결론 났다"('은하의 밤') 같은 실감 나는 회사생활 문장들은 등단 전 실제로 회사에 다닌 경험 덕이다. “한 곳에서 오래 일하면서 생기는 관성과 권태에 관해 쓰면서, 문득 내가 어느새 중견 작가라는 자각이 왔을 때 받았던 충격에 이제는 공감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엔딩은, 예능 작가 소봄이 회식 자리가 끝나 귀가하면서 "자기가 알고 있던 아빠의 뒷모습과, 자신의 지금 모습이 비슷해졌다고 생각하면서 아빠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라고 했다.

 지난해 반려견 장군이를 잃은 경험도 소설 문장으로 남았다. “그래야 사랑이 환생하지.”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에 나오는 문장이다. 너무 슬픈 와중에도, 그간의 장군이와 보냈던 장면들이 사라질까 봐 조급해져서 카페에서 오열하며 쓴 작품이라고 했다.

"사랑은 크리스마스 같은 것, 매번 돌아오지만 혼자 있기도 해야"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은 2009년 등단한 그의 첫 연작소설집이다. 2019년 쓴 '크리스마스에는'을 시작으로 차곡차곡, 출판사의 요청 없이 주도적으로 써서 모은 소설들을 담았다. 사진 창비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은 2009년 등단한 그의 첫 연작소설집이다. 2019년 쓴 '크리스마스에는'을 시작으로 차곡차곡, 출판사의 요청 없이 주도적으로 써서 모은 소설들을 담았다. 사진 창비

"글을 쓰기 위해 일상을 살며" 비축한 에너지를 몰아 쓴다는 김금희는 요즘 글쓰기 외에 식물 키우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자그마치 80개의 화분을 기른단다. 최근 감격한 건 베고니아가 층층이 잎을 피운 일이다. "올해 봄에 떡잎 두 개일 때 사 왔는데, 신경을 거의 못 썼는데도 너무 아름다운 색으로 자라서 이런 걸 이루다니 기특했다"며 "꽃도 맺혔는데, 꽃 피기 전 잎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했다"며 활짝 웃었다.

다정한 것들에 쉽게 기뻐하고, 쉽게 낙담한다는 김금희는 "사랑은 크리스마스 같은 것"이라고 했다. "매번 돌아오지만 24시간 즐겁지는 않고 고독과 환희가 교차하는 날"이라서다. 늘 누군가와 함께 있는 건 아니고 사랑이 있어도 결국은 혼자 있어야 한다. "소설을 내놓을 때마다 혹독한 이별을 겪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고 했다. 다시 한번 '작가의 말'을 빌면 "우리는 무엇도 잃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이런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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