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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주택가에 덩그러니…새하얀 산토리니풍 건물 '뜻밖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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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한 그리스풍 건물은 정교회 건물로, 정식 이름은 울산 성 디오니시오스 성당이다. 2005년 축성했다. 최승표 기자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한 그리스풍 건물은 정교회 건물로, 정식 이름은 울산 성 디오니시오스 성당이다. 2005년 축성했다. 최승표 기자

울산 최대 어항 방어진이 있는 방어동. 아파트와 빌라 빼곡한 주택가 한복판에 하얀 외벽과 파란 지붕의 그리스식 건물 한 채가 덩그러니 서 있다. 한국에선 흔치 않은 정교회 성당이다. 울산에서도 외진 항구 마을에 정교회 성당이 들어선 사연이 궁금했다. 알고 보니 울산이 항구도시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엿새 뒤면 성탄절이다. 장구한 역사를 가진 정교회를 통해 예수 탄생의 의미와 이웃의 평화를 바라보면 어떨까.

울산의 산토리니풍 성당

울산 정교회 성당은 독특하게 생겼다. 여느 가톨릭 성당과는 물론 다르고, 전국의 여느 정교회 건물과도 다르게 생겼다. TV 광고에서나 봤던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건물을 옮겨놓은 것 같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을 디자인한 경희대 건축학과 조창한 명예교수가 설계를 맡았다고 한다. 그런데 울산에 왜 이렇게 생긴 정교회 성당이 들어서게 됐을까.

 울산 성 디오니시오스 성당 설계는 조창한 경희대 교수가 맡았다. 방어동이 바다에 가까워 그리스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최승표 기자

울산 성 디오니시오스 성당 설계는 조창한 경희대 교수가 맡았다. 방어동이 바다에 가까워 그리스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최승표 기자

'울산 성 디오니시오스 성당'은 2005년 축성됐다. 한국정교회 대교구 박인곤 보제(報祭)는 "당시 울산에 소수의 한국인 신도가 있던 터라 성당이 필요했다"며 "울산의 중공업과 선사에서 일하는 그리스와 슬라브계 정교회 신도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박인곤 보제는 "정교회 성당은 비잔틴 양식을 따르는 게 기본"이라며 "벽돌로 지은 건물도 있고 디자인이 조금씩 다른데 울산 성당은 바다가 가까워 그리스 섬 분위기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올 8월 건립된 '전주 성모 안식성당'도 외관이 근사하다. 그리스에서 대대로 성당 건축을 해온 전문가가 설계했단다.

정교회는 건물 외형보다 성당 내부의 성화(聖畵)를 각별하게 여긴다. 울산 성당의 경우, 건립 당시 그리스 아테네대 교수들이 와서 직접 그렸다고 한다. 성서가 보급되지 않았던 초대 교회 시절, 일반 신자도 예수의 생애와 성서의 핵심 메시지를 알 수 있도록 교회 내벽에 성화를 그린 전통이 이어졌다.

울산 성당 내부도 화려한 성화가 빼곡했다.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장면이 일목요연하게 그려져 있었다. 오병이어 기적, 탕자 비유 등 예수의 핵심 메시지도 눈에 띄였다. 성당 입구, 익숙한 데 조금 다른 예수의 말씀 앞에서 잠시 머물렀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내게로 오라."

정교회는 성화를 중시한다. 성서가 보급되기 전, 성도들이 성화를 보고 예수의 가르침과 성서의 메시지를 알도록 한 전통을 따르고 있다. 사진은 울산 성 디오니시오스 성당 내부 성화. 최승표 기자

정교회는 성화를 중시한다. 성서가 보급되기 전, 성도들이 성화를 보고 예수의 가르침과 성서의 메시지를 알도록 한 전통을 따르고 있다. 사진은 울산 성 디오니시오스 성당 내부 성화. 최승표 기자

전국의 정교회는 평일 예배나 일요일 예배에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다가오는 성탄절 예배도 마찬가지다. 예배가 없는 시간에도 정교회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울산 디오니시오스 성당은 2017년 권바올로 신부가 선종한 뒤 주임사제가 없다. 하여 평일 예배가 없고 주중에도 대부분 교회 문이 닫혀 있다. 내년 1월 박인곤 보제가 주임사제로 부임할 예정이다.

조선 말, 러시아가 전해준 정교회 

한국에서 정교회는 낯설다. 정교회를 알려면 서양 중세사를 들춰야 한다. 1054년 이른바 '교회 대분열'로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가 갈라졌다. 교리, 정치 등 복잡한 이유에서였다. 콘스탄티노플, 그러니까 지금의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정교회는 전통을 이어왔다. 교황이 수장인 가톨릭과 달리, 국가마다 각 국가 정교회가 어느 정도 독립성을 가진다. 이를테면 율리우스 달력을 따르는 러시아와 슬라브 지역 정교회는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킨다. 현재 전 세계 정교회 신자는 약 3억 명에 달한다.

울산 성 디오니시오스 성당 내부에 새겨진 성화. 예수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인 기적이 그려져 있다. 최승표 기자

울산 성 디오니시오스 성당 내부에 새겨진 성화. 예수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인 기적이 그려져 있다. 최승표 기자

한국정교회는 1900년 태동했다. 러시아인 성직자 흐리산토스쉐트콥스키가 서울에 왔다. 조선에 살던 러시아인과 조선인 신자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서였다. 1903년 서울에 성당을 건립했으나 러일전쟁, 한국전쟁 등 환란을 겪었다. 1954년 첫 한국인 사제가 서품을 받았고, 1955년 세계총대주교청 관할에 한국 정교회가 들어갔다. 현재 한국에는 9개 정교회 성당과 2개 수도원이 있다. 국내 정교회 신자는 한국인만 약 3500명이다.

정교회 예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개방시간에는 교회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 사진은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진행 중인 예배 모습. 사진 한국정교회 대교구

정교회 예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개방시간에는 교회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 사진은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진행 중인 예배 모습. 사진 한국정교회 대교구

한국정교회는 어떤 기독교 종파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종식되길 기도한다. 한 가족이었던 러시아정교회가 2018년 세계총대주교청에서 탈퇴하고 민족우월주의 색채를 띠더니 급기야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고 나섰다. 한국정교회는 지난 7월 '기독교사상'에 "하느님의 형상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은 그리스도를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강력히 규탄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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