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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우주 탐사는 인류의 자기 성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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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달나라 탐사를 최근 재개했다. 1960년대에 케네디 대통령이 주도해 인간을 달에 보내고자 했던 아폴로 계획은 결국 1969년에 그 목표를 달성했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도착한 우주비행사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고 거기서 흙을 채취해오는 엄청난 업적을 이룩했다.

그런 일을 그 당시 기술로 해냈다는 것은 돌이켜보면 운도 좋았고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달나라에 가 보니 토끼는 없더라는 소식에 실망한 어린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1972년에 아폴로 17호가 다녀온 후에 NASA는 달나라의 유인 탐사를 중단했다. 현재 진행 중인 아르테미스 계획은 50년 만에 다시 인간을 달에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NASA에서 재개한 달나라 탐사
다시 보는 ‘작고 푸른 구슬’ 지구
탐욕·정복 얽힌 글로벌리즘 대신
‘인류 공영’의 세계주의 고민할 때

지난 11월 16일 발사된 아르테미스 1호는 인간 대신 마네킹을 싣고 달나라 근처를 돌아보면서 모든 장비 작동을 시험했다. 그 우주선은 26일간 200만㎞ 넘는 거리를 비행한 뒤 지구로 돌아와 낙하산을 펴고 멕시코 인근 태평양 수면에 안착했다. 아르테미스는 많은 관측자료를 가지고 돌아왔고, 비행 중 이미 그 자료의 일부를 지구로 전송했다. 이렇게 시운전을 잘 마쳤으니 앞으로 인간을 다시 달에 보내 많은 활동을 시도할 계획이다. 그동안 왠지 움츠렸던 미국 특유의 진취적 기상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다.

아르테미스가 보내온 사진들에는 달 표면 가까이 돌며 촬영한 분화구 등의 생생한 모습이 많은데, 사실 그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그 머나먼 곳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이다. 암흑같은 텅 빈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밝게 보이는 자그마한 푸른 구슬같은 지구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 모습은 아름답다. 아르테미스 1호는 또 달의 궤도를 넘어선 지점까지 가서 지구가 달을 다정하게 옆에 거느린 사진까지 찍어 보내줬다.

혹시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들도 우리 행성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실제로 지구에 도착해 보면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80억이라는 엄청난 인구로 지구의 표면을 덮어버린 인간들은 서로를 죽이고 고문하고 협박하고 착취하고 모욕하며 살아간다. 멀리서 볼 때는 평화로워 보이겠지만, 전쟁이 끊이지 않으며 생태계와 환경의 균형은 인간들의 무책임한 활동으로 파괴될 위기를 맞고 있다.

우주 탐사 작업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대중 과학의 세계 1인자로 꼽혔던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을 지금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가 주도해 제작했던 TV다큐멘터리  ‘코스모스’와 이를 바탕으로 만든 책은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에게 과학을 꿈꾸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칼 세이건 교수는 우주에서 본 지구의 아름답고 가련한 모습을 보고 잘 성찰한다면, 편협하고 이기적인 생각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우리 모두가 그 조그만 구슬 위에 다닥다닥 같이 사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일을 그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세이건의 이상은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넘어 범인류의 공영을 추구하는 ‘세계주의’(cosmopolitanism)였다. 그런데 20세기말에 득세한 것은 이와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의미가 다른 ‘글로벌리즘’(globalism)이었다. 세계화의 이상이 변질된 것으로, 국경을 무시하고 넘나들며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초국가적 자본주의이다. 세계 무대에서 일한다는 진취적 기상이 온 세계를 지배한다는 탐욕과 얽혀 들어가는 현상이다.

사실 이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유럽인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진취적 기상을 가진 사람들이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누비며 머나먼 지역을 탐색한 결과였다. 많은 경우 그런 탐험가들은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었다. 지금은 진취적인 사업가들이 다국적 기업을 통해 세계를 정복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온갖 최첨단 과학과 기술도 이를 위해 우선 사용된다. 이제는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사방을 직접 누빌 필요도 없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우주 탐사도 달나라에서 값진 광물을 캐내 돈을 벌겠다는 등의 욕심으로 하겠다는 세력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우주 탐사를 정복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전 인류가 나눌 수 있는 명상과 자기 성찰의 장이 돼야 한다. 세계 열강이 적어도 남극대륙에서는 영토 다툼을 하지 않고 과학연구에 협력하듯이, 달 탐사를 하면서 진정한 세계주의를 살리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아직은 어느 나라에서도 소유하지 않은 곳이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주에서 보면 조그마한 ‘지구촌’에서 깨지기 쉬운 생태계 균형도 조심스레 유지하고, 같은 인간들끼리 잘 살아보자는 의미의 세계주의를 부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우주에 나가서 지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다들 우주에 갈 수는 없지만 사진이라도 보면서 상상해 보자.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