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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은 버리고 새해로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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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12월도 막바지로 향한다. 한 해가 캘린더 한 장, 열 손가락만큼 남았다. 돌아보면 2022년 임인년도 다사다난했다. 압권은 지난 3월 9일 대통령 선거였다. 고도의 지적 동물인 사람이 살아가는 어디엔들 명암이 교차하지 않겠느냐마는 20년, 30년, 100년을 지속할 것이라고 호언한 정권이 바뀐 것이다. 지난 정권 내내 심판받은 적폐세력이, 정권을 맡길 수 없는 ‘도둑놈들’의 후예가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 역사가 격동의 부침이라면, 2022년은 명실상부하였다. 또한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이다.

2022년 1월의 새해 아침을 소환해 본다. 이구동성으로 간구한 가치는  ‘소통’ ‘소통하는 공동체’였다. 서로 생각이 달라도 대화를 하고 공유하는 점을 찾아내서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2022년에도 소통은 불통에 고전하고 자주 패배하고 소통의 길이 끊어진 일도 잦았다.

팬덤정치에 함몰된 2022년 한 해
강성 지지자의 소리에만 귀 열어
‘편 가르기’ 줄어든 2023년 기대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염려스러운 점은 불통 전선의 확대 조짐이다. 특히 정치 분야의 리더들이 소통의 책임을 등한시한 채, 극렬 강성 팬덤의 편향된 의사에 의존하면서 불통을 심화시키고 있다. 극렬 팬덤의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는 정치인·정당·정치에 대한 비판 기능의 상실을 초래하고, 토론과 타협을 통한 정치를 막아서 민주주의를 오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맹신적 지지자들의 언행에 도취하고, 심지어 극렬 팬덤을 칭송하는 리더들은 ‘허위합의효과’(false consensus effect)와 같은 ‘인지적 오류’에 빠져서(Ross, Green & House) 정치와 공동체의 합리적 운영과정에서 스스로 거대한 불통으로 작동한다.

허위합의효과는 자기 생각이나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이 합치하는 정도를 과대평가하여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생각한다고 믿는 경향이다. 특히 권력이나 힘을 소유한 리더들이 자신의 판단과 행위를 보편적인 것으로 믿는 반면 자신과 다르면 부적합한 것으로 보는 정도가 높다. 리더들이 자신과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인지적 왜곡 과정을 통해 허위합의라는 ‘인지적 편향’에 빠지는 이유이다. 편향은 상대를 존중하는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고, 전체 국민이 아니라 지지자들을 위한 일에 치중하는 우를 범하게 한다.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팬덤의 지지에 안주하는 반쪽짜리 불통 리더가 되는 것이다.

16일 동안 진행된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파업도 불통이 빚어내는 나쁜 결과의 모범(?) 사례다.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화물연대의 완패, 정부의 완승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철회된 파업이지만 엄청난 손실이 발생했다. 물동량, 시멘트, 레미콘, 건설공사현장, 일용직 근로자, 철강업, 주유소의 정상적인 가동을 막아 국민에게 고통을 주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공동체의 정서에 아물기 힘든 상처를 냈다. 화물연대 충남 탱크지회는 지난 5일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지금 일하고 있는 의리 없는 XX놈들아/ 오늘 길바닥에서 객사할 것이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생존을 위해 일하는 동료에게 던지는 죽음의 저주는 있어서는 안 될 극단의 언어 공격 행위로 공동체 윤리를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자유의지를 훼손하는 막말이었다. 운행하던 컨테이너 트레일러를 조준하여 쇠구슬을 쏘는 행위로 자동차의 유리창이 깨지고 운전자가 다치는 사고도 발생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북의 핵무기 개발도 평화와 공존을 깨뜨리고 북한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불통행위이다. 그 막대한 비용이면 주민들의 빈곤, 영양실조, 기아, 아사와 같은 처참한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100% 투표에 100% 찬성 운운하며 ‘만장일치의 나라’라는 신기루 같은 허위합의효과에 가로막혀 북한의 개방은 요원하다. 고립과 불통의 악순환은 세계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두 사람이 일치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거나 ‘인간은 소통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소통은 환상이고 오히려 불통이 자연스럽다”와 같은 학문적 논의(『불통에 대하여』, 안민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통에 대한 연구도 소통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리더와 집단의 불통은 국민을 편 가르고 공동체를 고통에 빠뜨린다. 불통을 버리고 새해로 가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 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