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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판에 진짜 '자유 시대'가 열렸다

중앙일보

입력

NC 다이노스 구창모. 연합뉴스

NC 다이노스 구창모. 연합뉴스

야구판에 진짜 '자유 시대'가 열렸다. 비(非)FA 선수들의 장기계약이 보편화됐다. 계약 형태도 자유로워졌다.

NC 다이노스는 17일 왼손투수 구창모(25)와 다년 계약을 발표했다. 2015년 NC에 입단한 구창모는 통산 46승 34패 평균자책점 3.74를 기록했다. 2019년에는 구단 최초 좌완 10승을 거뒀고, 2020년에는 9승 무패 평균자책점 1.74로 호투하며 창단 첫 우승에 기여했다. 지난해엔 부상으로 통째로 쉬었으나, 올해 11승 5패 평균자책점 2.10으로 반등했다.

구창모의 계약이 흥미로운 건 계약기간이 두 가지란 점이다. 국제대회 성적에 따라 FA(프리에이전트) 자격 획득기간이 달라지는 걸 고려했다. 프로야구 선수는 8시즌(145일 이상 1군 명단 등록)을 충족해야 FA가 된다. 2015년 입단한 구창모는 올해까지 5시즌을 채웠다. 정상적이라면 2025년 이후에나 FA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내년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와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KBO는 국제대회 성적에 따라 포상점수를 부여한다. 구창모가 WBC와 아시안게임을 통해 35점 이상을 올리며 모자란 날짜를 채워 FA 기간을 1년 단축할 수 있다.

WBC에 참가하면 10점을 받는다. 성적에 따라 8강(20점)·4강(30점)·준우승(40점)·결승(60점)까지 더 많은 점수를 얻는다. 아시안게임은 출전점수 10점, 금메달 점수 15점이 걸려 있다. 구창모는 WBC 예비명단(50인)에 포함됐고, 아시안게임도 와일드카드로 나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구창모가 FA기간 1년을 단축하면, NC는 2023년부터 계약 기간 6년에 연봉 90억원, 인센티브 35억원 등 총액 125억원을 준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계약 기간 6+1년에 보장 연봉 88억원 포함 최대 132억원을 준다. 군복무를 하게 되더라도 기간은 보장된다. 구창모의 전성기를 통째로 사들인 셈이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호투한 뒤 미소짓는 SSG 박종훈. 뉴스1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호투한 뒤 미소짓는 SSG 박종훈. 뉴스1

비FA 장기계약은 이제 프로야구에서 상식이 됐다. 젊고 유망한 선수가 FA 시장으로 나가기 전에 '입도선매(벼가 익기 전에 사들이는 것)'한다. SSG 랜더스는 2021시즌 뒤 예비 FA인 박종훈, 문승원, 한유섬과 5년 계약을 맺었다. 삼성 라이온즈도 구자욱과 5년 최대 120억원에 계약했다.

롯데도 병역미필자인 투수 박세웅의 상무 입대를 미루고, 5년 계약(90억원)을 맺었다. LG 트윈스도 다음 시즌 뒤 FA가 되는 주전 유격수 오지환과 계약을 추진중이다. 올해 팀을 옮긴 일부 FA도 원소속구단으로부터 장기 계약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

장기 계약은 메이저리그(MLB)에서 보편적인 시스템이다. MLB는 FA기간이 6년으로 KBO리그보다 짧다. 구단 수도 KBO보다 많은 30개라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KBO리그에선 FA선수들에게만 가능한 '특권'이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FA 재취득기간(4년)에 맞춰 계약했다.

2019시즌 뒤 롯데와 계약한 안치홍. 뉴스1

2019시즌 뒤 롯데와 계약한 안치홍. 뉴스1

하지만 2019년 롯데 자이언츠와 안치홍의 계약 이후 달라졌다. 안치홍은 롯데와 2+2년 최대 56억원에 사인했다. 그런데 '+2' 방식이 색달랐다. 옵션을 채우면 자동 연장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양자 합의를 통해 계약하기로 했다. 불발될 경우, 자유롭게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도록 풀어주기로 합의했다. 4년을 채우지 않았음에도, FA가 되는 형태였다. KBO는 안치홍 계약을 통해 "어떤 선수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년 계약이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KBO는 그에 비해 '구매자'가 적고, 실패에 대한 부담은 크다. 내년부터는 샐러리 캡(연봉 총액상한)이 발효돼 자금 유동성이 더욱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구단들은 다양한 옵션을 통해 선수들의 마음을 붙잡기 시작했다. 계약 성패와는 별개지만, 구단 사정과 선수단 상황에 맞춘 영입이 가능해진 것이다. 박민우는 올해 NC와 무려 8년 계약을 맺었다.

당분간 이런 경향은 이어질 전망이다. 10개구단 시대도 자리잡았고, 고교야구 팀도 증가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선수가 모자라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A구단 관계자는 "최근엔 선수생명이 길어졌고, FA 계약을 맺고 안주하는 선수도 적다. 장기계약의 위험성은 크지만, 애써 키운 선수를 빼앗기기보다는 확신이 가는 선수에게 투자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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