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이태원 참사 49재…유족 배려가 우선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18호 30면

여권 막말과 맞불집회로 2차 가해 우려

생존자마저 극단 선택…후속 대책 절실  

외부 목소리 커지면 정치적 갈등만 증폭

16일 오후 이태원 광장에선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열렸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가 주축이 된 시민대책회의가 함께 마련한 행사다. 맞은편 도로에선 보수 단체의 ‘맞불 집회’가 개최됐다. 대규모 참사를 놓고도 갈라진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참사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장례 의식은 존중돼야 한다. 보통 49재가 끝나면 장례 절차는 마무리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158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번 참사에서 부상을 입고 입원 치료를 받았던 고교생이 지난 12일 숨진 채 발견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학생은 친구 2명을 사고 현장에서 떠나보냈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그는 퇴원 후 학교에서 심리상담과 함께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는 중이었다고 한다.

학생의 어머니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죽은 친구들을 모욕하는 듯한 그런 댓글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냈다. 자기만 살아남은 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컸다. 댓글을 보고 무너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받은 횟수가 5번이고 한 번 받을 때 15~20분”이라며 “지금 생각해보면 심리상담 등이 깊게 이뤄졌다면 알 수 있었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댓글 등을 통한 2차 가해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고 생존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심리 치료와 후속 대책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여권 일부에서 유족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듯한 막말이 이어지는 것도 큰 문제다. 현 정부의 실세 중 하나로 꼽히는 권성동 의원은 지난 10일 유가족협의회가 출범한 것을 두고 자신의 SNS에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결합해서 정부를 압박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슬픔에 잠긴 유가족을 자극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이 할 말이 아니다. 권 의원의 말이 일종의 지침이 돼 국민의힘 내부에서 더 심각한 막말이 나오고, 그로 인해 정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실제로 국민의힘 소속인 김미나 창원시 의원은 지난 12일 SNS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 대해 직접적인 막말을 쏟아내 비난을 받았다. 유족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2차 가해다. 국민의힘은 심각성을 깨닫고 김 의원을 엄중히 징계해야 한다.

진보계열 단체들이 대거 참여한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도 적절한 선을 지켜야 한다. 유가족보다 이들이 큰 목소리를 내면 자칫 정쟁과 갈등이 커질 소지가 있다. 어느 쪽이든 생존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엔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치적 책임과 도의적 책임을 미룬 채 법적 책임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경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지만 아직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자칫 실무자와 하위직만 처벌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 유족들에게 원망을 들으면서도 136일 동안 현장을 지켰다. 이 전 장관은 지난달 초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적인 책임과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별개다. 시의적절하게 조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50일이 됐음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데 유족들이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