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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안중근…그가 쓰니 달랐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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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호 20면

하얼빈

하얼빈

하얼빈
김훈 지음
문학동네

안중근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할까. 숱하게 이야기로, 학술논문으로 다뤄진 주제지만 소설가 김훈이 쓰니까 역시 다르다. 올 광복절 직전 출간된 김훈의 안중근 소설 『하얼빈』은 출판사 문학동네에 따르면 지금까지 30만 부 가까이 찍었다(※판매 부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책이 팔리니까 출판사는 찍어낸다). 그래서 2022년 출판 시장을 언젠가 복기한다면 빠뜨리기 어려운 항목이 됐다. 반격 능력 보유가 명분이라지만 가뜩이나 일본이 ‘재무장’에 나서는 요즘 국면에서, 아니 한·일 관계가 삐걱거리는 미래의 언제라도, ‘국뽕’이나 역사적 원수 갚기 같은 이데올로기를 탈색한 김훈표 안중근 소설은 참고가 되는 텍스트일 것 같다.

김훈은 본지 9월 16일자 26·27면 서면 인터뷰에서 “소설을 구상할 때부터 안중근의 전체, 시대 전체를 그려낼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런 큰 구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요즘 독서 시장 생리에 누구보다 민감한 작가와 잘 나가는 출판사가 읽기 부담스럽지 않은 ‘가벼운’ 분량을 선택한 건 음미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시대 전체 혹은 안중근을 둘러싼 시시콜콜한 디테일이 들어설 자리에, 그것들을 생략하고 대신하는 것은 굵직굵직한 대립 구도다.

서울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 앉아 있는 모습의 안중근 동상과 ‘大韓獨立’(대한독립)을 혈서로 적은 태극기 이미지가 보인다. [중앙포토]

서울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 앉아 있는 모습의 안중근 동상과 ‘大韓獨立’(대한독립)을 혈서로 적은 태극기 이미지가 보인다. [중앙포토]

가령 밝음, 빛이라고 해서 똑같이 빛나는 게 아니다. 서구 열강의 물리력을 단숨에 따라잡은 일본의 메이지(明治) 유신은 힘의 밝음(明)을 추구했다. 김훈은 메이지 시대의 “밝음은 힘을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다고 썼다. 힘을 추구한 결과는 아시아의 산과 바다에 시체가 쌓이는 상황이었다.

안중근이 마주한 빛은 몸이 여려 힘껏 안아주지도 못하고, 자신의 몸이 자칫 깨끗하지 않을까 봐 볼에 입 맞추는 것도 주저하게 되는 어린아이의 이빨에서 나온다. 빛은 아이의 분홍빛 잇몸에서 젖니를 밀어 올린다. 그런데 안중근이 목격한 빛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안중근은 그 빛 안에서 삼남의 들판을 뒤덮은 시체들을 떠올린다.

성격이 판이한 빛과 빛은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소설은 일본의 근대화와 조선의 생존이 하얼빈에서 만나 부서지는 충돌 코스다.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등 가족과 주변 인물의 뒷얘기를 후기에서 상세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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