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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기적 보고 싶으면 ‘지·여·작·할·나’를 기억하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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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호 25면

[지혜를 찾아서] ‘밥퍼 35년’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

최일도 목사(가운데)와 밥퍼나눔운동본부 김미경 부본부장(왼쪽), 박희진 간사가 다음날 제공할 설렁탕을 준비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최일도 목사(가운데)와 밥퍼나눔운동본부 김미경 부본부장(왼쪽), 박희진 간사가 다음날 제공할 설렁탕을 준비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서울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6번 출구를 나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왕복 4차로의 좁은 도로 좌우로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이 서 있다. 최고 63층짜리 주상복합 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에 한창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집창촌이었던 ‘청량리 588(번지)’이 상전벽해의 신도심으로 거듭나는 현장이다.

여기를 지나 청량리 쌍굴다리(전농동 지하차도)를 통과해 오른쪽으로 틀면 밥퍼센터가 나온다. 지난 35년 동안 1400만 그릇의 밥을 노숙인과 독거 어르신에게 제공한 곳이다. 다일복지재단 이사장인 최일도 목사의 땀과 눈물이 진하게 밴 나눔의 현장이다.

최근 동대문구청이 ‘밥퍼센터가 불법 건축물이므로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동안 서울시와 동대문구의 도움으로 잘 운영해 오던 밥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최 목사는 고발을 당했고, 밥퍼센터는 전기가 끊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나눔과 공존의 지혜를 찾아 최일도 목사를 만나러 가는 날에 많은 눈이 내렸다. 조간신문에는 ‘고독사 지난해 3378명’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신분 확인 안 되면 식사 못 줘 마음 아파

코로나19로 인해 밥퍼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거리두기 강화로 문을 닫는 날이 길어졌습니다. 무료급식소들이 폐쇄된 상태에서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에서도 ‘밥퍼 가면 밥 준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찾아온 어르신들을 그냥 보내야 할 때,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신분증을 제시하고 바코드를 부여받다 보니, 신분증이 없는 거리의 형제들과 무의탁 어르신 등은 밥퍼까지 와서도 식사를 못하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코로나보다 배고픔보다 더 무서운 게 외로움”이라고 하셨는데요.
“한 끼 밥이 곧 생명이신 분들을 위해 거리두기를 지켜가며 도시락을 나눠 드렸고, 코로나가 완화된 뒤에는 도시락 배달도 해 보았지만 절반 이상의 어르신들이 밥퍼로 직접 가서 먹겠다고 하셨어요. 그분들이  ‘코로나로 죽기 전에 배고파서 죽겠어. 근데 배고픔보다 더 무서운 게 외로운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밥퍼는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무의탁 어르신들은 함께 밥을 나누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서로에게서 사랑과 희망을 얻기에 밥퍼에 오시는 것이죠.”
밥퍼가 35년간 지속하고 확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로 무료급식을 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둡니다. 35년 동안 약 50만명의 자원봉사자(익명 포함하면 65만명)들이 밥퍼 나눔을 해 주셨습니다. 기업의 후원도 큰 힘이 됐지만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내고 몸으로 사랑을 실천해 주신 분들이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나눔에 동참하고 싶어도 선뜻 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나눔의 지혜’ 꿀팁을 주신다면?
“‘지여작할나’를 기억하세요.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소소하지만 실천할 수 있는 것,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거지요. 기부를 하고 시간을 내서 오는 것만이 봉사가 아니라, 내가 앉은 그곳에서 함께 기도하고 응원해 주는 것부터가 나눔의 시작입니다. 그 마음들이 쌓이면 봉사할 수 있는 기회, 선행을 베풀 일들이 보이고, 움직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올해는 베트남다일공동체, 미국다일공동체, 다일천사병원이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다일복지재단은 밥퍼를 넘어 빵퍼, 꿈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미주 등 10개국 22개 지부를 운영하는 글로벌 조직으로 성장했다.

밥퍼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10개국에 퍼진 계기는 무엇입니까.
“무료급식이라고 하지만 ‘나도 돈을 내고 먹고 싶다’고 하신 분들이 계셔서 라면을 끓이던 냄비에 지원자에 한해 ‘체면유지비’ 100원씩을 넣게 했어요. 그 동전 200만개가 모여서 필리핀 다일공동체를 세우게 된 겁니다. 2002년 알리안츠생명으로부터 한 해를 빛낸 한국인 대상으로 받은 상금 5000만원을 기반으로 베트남 다일공동체가 세워지기도 했죠. 밥퍼를 ‘K나눔의 메카’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여서 짧은 시간 안에 뿌리를 내린 것 같습니다.”
밥퍼가 무료급식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복지 영역을 아우르고 있는데요.
“밥퍼 초창기 때 거리의 형제, 무의탁 노인들이 치료를 받으러 가면 병원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10여 년 동안 천사운동을 해서 모은 후원금으로 개신교 최초의 무료병원인 다일천사병원을 세웠죠. 말기암 환자 등을 위해서 11년 전에 세운 웰다잉 하우스 ‘다일작은천국’은 서울시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밥퍼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델과 교육의 장이 되고 있죠.
“결혼기념일에 자녀와 함께 와서 봉사하는 가족, 돌잔치를 밥퍼에서 하는 가정 등이 참 많습니다. 부모가 먼저 봉사하는 모습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이지요. 사춘기 반항아 학생들이 밥퍼 봉사를 통해 변화된 모습을 소감문에 남긴 것도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일정 봉사시간을 채우면 대통령상을 주는데 미주 다일공동체를 통해 많은 학생들이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혐오유해시설’ 공격엔 억장 무너져

철거 위기에 놓인 청량리 밥퍼센터. [뉴시스]

철거 위기에 놓인 청량리 밥퍼센터. [뉴시스]

2002년 밥퍼 배식을 위해 한겨울 새벽 쌍굴다리 앞에 줄을 서 있던 어르신이 사망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가 시유지인 현재 밥퍼센터 자리에 가건물을 만들어줬다. 2008년 지금의 건물이 지어져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올해 7월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이 부임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에 몸담았던 그는 6·1 지방선거에서 ‘밥퍼 문제의 깔끔한 처리’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구청장은 “밥퍼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노숙자들이 긴 줄을 서고 그들에게 밥을 퍼 주는 건 옛날 방식이다. 도시락 배달하는 식으로 풀면 된다”고 했다.

동대문구청이 건물 철거 통보, 불응 시 단전 예고 등 강경 대응을 하고 있는데요.
“구청장님 만나서 오해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대화로 풀고, 발전 비전이 있다면 협력할 의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섯 번의 대화 요청에도 답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서울시와 동대문구가 전달한 대로 이행했을 뿐인데 저를 범법자 취급하고 밥퍼를 ‘혐오유해시설’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공격하는 걸 보면서 억장이 무너지고 답답함과 분노로 잠을 이루기 힘듭니다.”
청량리 재개발 입주민과 밥퍼의 ‘공존의 지혜’를 찾아야 할 텐데요.
“선진국 대도시에는 도시빈민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노숙자 사망을 보도하며 책임감과 경각심을 갖게 하기도 합니다. 밥퍼도 주상복합 입주민과 청량리 지역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밥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협력한 부분들을 알릴 겁니다. 정식으로 그분들을 초대하고, 식사 대접을 하고 싶습니다. 밥퍼 35년은 동대문구 주민들이 만든 역사니까요.”
‘K나눔 메카’가 된 밥퍼를 세계적인 명소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밥퍼는 한국 토종 국제NGO입니다. 캄보디아 다일공동체에서는 여행사와 함께 착한봉사여행을 기획해서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2015년 당시 마크 리퍼트 미 대사가 봉사를 한 뒤 ‘대한민국 대표 K나눔 현장을 체험하는 아름다운 투어’를 제안한 적도 있습니다. 밥퍼 봉사에다 근처 다일천사병원·다일작은천국까지 둘러보고 동전 기부도 할 수 있으면 좋겠죠. 밥퍼 역사관도 만들고, 사진 전시회도 하며 밥퍼 굿즈(기념품)도 판매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밥퍼를 해 오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과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단 하루도 힘들지 않은 날은 없었습니다. 매일 선한 싸움을 싸우며 왔기 때문에, 지칠 때로 지쳤습니다. 분명한 건 제 자신의 명예와 욕심으로 35년을 달려오지 않았다는 거죠. 밥퍼를 통해 영양실조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바뀌고, 밥퍼 봉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합니다.”

최일도 목사의 몸속에는 혁명가와 시인이 함께 산다. 그는 지난 시간들을 얘기하며 자주 목이 메었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꿈을 물었을 때 그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의 꿈은 딱 하나입니다. 이 땅에 밥 굶는 이 없는 그날까지 밥퍼의 사역이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 밥퍼목사 최일도가 하늘나라로 가도, 밥퍼 사역은 지속될 거라는 꿈을 꿉니다.”

최일도. 서울에서 태어나 장신대를 나왔다. 독일 유학을 준비하다 청량리역 앞에서 나흘 굶은 할아버지에게 설렁탕을 사 드린 걸 계기로 빈민사역에 뛰어들었다. 1988년 청량리 588 한가운데 다일공동체를 세워 밥퍼 운동을 시작했다. 1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의 저자이며 등단 시인이기도 하다. 다일복지재단, 다일천사병원, 데일리다일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유튜브 ‘최일도TV’를 통해 나눔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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