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주 '마지막 노른자 땅' 옛 대한방직 부순다…"2조 개발 신호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4일 전주 '마지막 노른자 땅'이라 불리는 효자동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주변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자광은 약 60억 원을 들여 부지 내 21개 건물 전부를 해체할 예정이다. 김준희 기자

지난 14일 전주 '마지막 노른자 땅'이라 불리는 효자동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주변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자광은 약 60억 원을 들여 부지 내 21개 건물 전부를 해체할 예정이다. 김준희 기자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전면 철거

전북 전주 '마지막 노른자 땅'이라 불리는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75년 문을 연 지 47년 만이다.

부지 소유주인 ㈜자광은 16일 "오는 21일 오후 5시 옛 대한방직 공장 부지에서 철거 착공식 겸 경제 비전 선포식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광은 약 60억 원을 들여 부지 내 21개 건물 전부를 해체할 예정이다. 철거 기간은 1년이다. 건물 상당수가 슬레이트 지붕이어서 그간 1급 발암물질인 석면 노출 우려가 제기돼 왔다.

㈜자광은 착공식에 우범기 전주시장과 김관영 전북지사, 김윤덕·정운천 등 여야 국회의원, 전북대·전주대·우석대 총장 등 지역 오피니언 리더 70명가량을 초대했다. 이날 행사를 두고 "2조 원 개발의 신호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도로를 끼고 전북도청 청사와 아파트 단지 등이 있다. 사진 전주시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도로를 끼고 전북도청 청사와 아파트 단지 등이 있다. 사진 전주시

'먹튀' 논란…㈜자광, 450억 부지 1980억에 매입

대한방직 전주공장은 애초 '먹튀'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대한방직이 450억 원짜리 공장 터를 2017년 ㈜자광에 1980억 원에 팔아넘기면서다. ㈜자광은 주택 건설 등 부동산 개발과 리조트·레저·골프장 사업 등을 하는 회사다. 전북도는 신시가지 개발을 추진하면서 공업지구인 대한방직 전주공장이 '여직공 등 일자리 수백 개를 창출한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대한방직은 약 1500억 원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전주를 떠났다.

㈜자광은 2018년 11월 도유지 일부와 시유지를 포함한 23만565㎡(6만9700평) 부지에 공동 주택 3000세대와 복합 쇼핑몰, 153층 타워, 호텔 등을 짓는 2조 원 규모 사업 계획을 전주시에 제안했다. 하지만 전주시는 도시기본계획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용 불가' 결정을 내렸다. 이후 시민공론화위원회가 지난해 2월 대한방직 터를 상업 중심으로 개발하되, 전체 터 40%를 계획 이득으로 환수하는 권고문을 내놨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우 시장은 "개발 이익 환수에 대한 명확한 정리, 소상공인 상생 방안, 전주 지역 건설업체 참여 등 세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나머지 절차는 최대한 신속히 처리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우범기 전주시장이 지난 8월 17일 시장실에서 대한방직 터 소유주인 ㈜자광 전은수 회장과 공개 회동을 갖고 있다. 전 회장은 이날 대한방직 터에 짓기로 한 153층 '익스트림 타워' 모형을 우 시장에게 선물했다. 연합뉴스

우범기 전주시장이 지난 8월 17일 시장실에서 대한방직 터 소유주인 ㈜자광 전은수 회장과 공개 회동을 갖고 있다. 전 회장은 이날 대한방직 터에 짓기로 한 153층 '익스트림 타워' 모형을 우 시장에게 선물했다. 연합뉴스

전주시장·전북지사 초청…"당연한 책무" VS "부적절"

철거 착공식에 우 시장과 김 지사가 참석하는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개발 호재가 드문 전주에서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독려하는 건 단체장의 당연한 책무"라는 찬성론과 "공공기여율을 비롯한 세부 개발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용도 변경 등 허가권을 가진 두 단체장이 개발 현장에 가는 건 부적절하다"는 반대론이 엇갈린다.

일부 시민단체는 ㈜자광이 착공식에 단체장 등 유력 인사를 대거 초청한 건 수년간 지지부진하던 개발에 동력을 얻기 위한 노림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문옥 전주시민회 사무국장은 "자광 돈줄인 롯데건설이 자금난에 휘청이는 상황에서 착공식은 자광이 건재하다는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쇼'"라며 "자광은 자기 자본 15억 원만 들이고 (대한방직 부지 개발 관련) 모든 것을 금융 회사와 사모펀드에서 끌어온 빚으로 메우고 있다. 결국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져 국가 경제까지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전북도청·전북경찰청 등 주요 시설이 밀집한 신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대한방직 터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쇼핑몰 등이 생기면 '교통 대란'과 '물 부족 사태'를 겪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김윤덕(전주시갑) 국회의원이 지난 3월 29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옛 대한방직 터에서 전북지사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김윤덕(전주시갑) 국회의원이 지난 3월 29일 전북 전주시 효자동 옛 대한방직 터에서 전북지사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시민단체 "쇼"…전은수 회장 "미래세대 위한 개발"  

이에 대해 전은수 ㈜자광 회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투기라고 보는 건 전혀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전 회장은 "금융 기관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회사 담보나 신용을 보고 투자한다"며 "건설사나 중소기업 상관없이 국내 금융산업법에서 정하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등을 따져 (금융 기관이) 문제없는 한도 내에서 자금을 대출해 주는 게 기본적인 산업 구조인데 (시민단체 주장은) 그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전주시 공업지역 용적률은 350%, 일반 상업지역 용적률은 500%다. 하지만 전 회장은 "전주시가 대한방직 부지를 상업 용도로 바꾸고 용적률을 높여주더라도 현재 계획대로 용적률 350%를 넘지 않는 게 목표"라며 "대한방직 대지 가운데 3만 평 정도 '공개공지'에 공원을 만들고 지하에는 쇼핑몰을 넣을 계획"이라고 했다. '공개공지'는 도시 환경을 쾌적하게 조성하기 위해 사적인 대지 안에 일반인에게 상시 개방하는 공적 공간이다. 기부채납 대신 '공개공지'로 공원을 만들면 유지·관리 비용은 사업자가 낸다는 게 ㈜자광 측 설명이다.

'단체장을 초청한 노림수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강한 경제로 전주 규모를 키우겠다'(전주시장), '기업을 유치해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전북지사) 등 두 단체장 슬로건은 '대한방직 터 개발을 통해 더욱 강한 전주 경제를 이루겠다'는 ㈜자광 목표와 일치한다"며 "시민과 지자체·민간 사업자가 협력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타워 등 도시를 잘 정비하면 연간 1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 전주가 발전할 것이고, 미래 세대에겐 일자리 등 삶의 기반이 구축될 것"이라고 했다.

김관영 전북지사가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16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주 옛 대한방직 터에 전북의 랜드마크가 될 초고층 건물(마천루)을 건립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관영 전북지사가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16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주 옛 대한방직 터에 전북의 랜드마크가 될 초고층 건물(마천루)을 건립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전주시 "협상은 별도"…道 "참석 검토 중"

임상훈 전주시 공보담당관은 "시민 대다수가 개발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개발에 힘을 실어주는 건 맞다"면서도 "시장의 착공식 참석과 개발 관련 협상은 별도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석면 건물을 ㈜자광이 자기 자본을 들여 철거하는 건 잘하는 일이고, 시장 참석은 ㈜자광이 시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발하도록 격려하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앞서 김 지사는 지난 4월 민주당 경선 당시 "전주 옛 대한방직 터에 전북의 랜드마크가 될 초고층 건물(마천루)을 건립하겠다"고 공약했다. 임태영 전북도 보도지원팀장은 "자광 측에서 요청이 들어왔지만, 지사가 갈지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