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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당신에게 좋은 집이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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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부동산팀 기자

지난해 3월 ‘아파트는 좋은 집일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을 때 주변 반응이 흥미로웠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꼽히는, 2021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의 작품을 살펴보는 내용이었다. 낡은 공동주택을 현대의 쓰임에 맞게 리모델링한 수상자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고, 한국의 아파트는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변화를 담을 만한 공간인지 질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치솟는 아파트값에 전 국민이 몸살을 앓던 때였다. 아파트를 산 사람이 무조건 승자라고 불리는 시국에 아파트는 좋은 집이냐고 물었더니, “참 용감하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가구 수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주택 비중으로 봐도 아파트가 60~70%에 달하는 전 세계에서 드문 나라다. ‘아파트 공화국’은 전쟁 이후 가난했던 나라가 내놓은 맞춤형 해법이었다. 경제 성장을 토대로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원하는 국민이 늘어나자, 정부는 선분양 제도를 만들어 민간에서 알아서 개선하도록 했다. 1967년 2차 경제개발계획 5개년 계획의 주택부문 정책 목표를 보면 방향성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주택건설은 민간주도형으로 하고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당시 정부는 국가기반산업을 일으키느라, 국민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쓸 돈이 없었다. 그래서 한강변 습지를 정비해 팔았고, 강남 및 신도시 개발을 독려했다. 건설사는 저렴하게 공급받은 땅에 선분양으로 모은 자금으로 아파트를 지어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국민은 주차장 등 최신식 인프라를 갖춘 아파트 단지 환경에 만족하게 됐고, 그렇게 아파트 공화국이 탄생했다.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아파트는 한국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아파트 단지 안과 밖의 환경 격차가 너무 크다 보니 낡은 동네 주민들은 어서 빨리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길 희망한다. 가장 저렴하고 빠르게, 최신식으로 동네를 탈바꿈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때 도시재생이 유행했지만,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는 이제 거의 죽은 단어처럼 밀려났다. 옛것을 보존하면서 노후 인프라를 개선하려면 아파트 단지를 짓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탓이다. 진짜 개선해야 할 문제적 인프라는 건드리지 않고, 적은 돈으로 생색만 내려다보니 나온 것이 벽화 칠하기였다.

모두가 아파트에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아파트가 아닌 다른 형태의 집에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이제라도 아파트 단지가 아닌, 다른 주거환경개선 모델을 찾을 필요가 있다. 집은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고, 삶터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가오는 계묘년에는 나에게 맞는, 좋은 집이 무엇인지 좀 더 활발히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