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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진 총경, 직무유기→업무상과실치사상 법리 판단 바꾼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이태원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근무한 류미진 총경의 혐의가 직무유기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변경됐다.

'이태원 압사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근무한 류미진 전 인사교육과장(총경)이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 답변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연합뉴스

'이태원 압사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근무한 류미진 전 인사교육과장(총경)이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 답변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연합뉴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15일 브리핑에서 “수사 초기 상황관리관으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 직무유기로 입건했으나, 류 총경이 상황관리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행위가 상황전파 지체를 초래해서 사상자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해 죄명을 바꿨다”고 밝혔다. 류 총경이 참사 당일 오후 11시 39분 전용 폰으로 연락을 받은 뒤 자정을 넘긴 30일 0시 1분 김광호 서울청장에게 문자 보고를 했고, 상황실이 아닌 자신의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 관례였던 점을 감안해 직무유기로 의율하기는 어렵다는 법리 판단에 따라서다.

“상황실 비웠지만 청사 내 사무실 머물러”

법원이 고의적으로 의무를 방기한 경우가 아니라면 늑장보고나 업무태만 정도로는 직무유기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도 영향을 미쳤다. 특수본은 혐의 변경을 설명하면서 “일직사관이 순찰이나 검사 등을 하지 않고 잠을 잔 것은 충근의무에 위반한 허물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고의로 일직사관 직무를 포기하거나 직장을 이탈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83도 3260)를 인용했다. 특수본 관계자는 “(류 총경이) 상황실을 비운 것은 명백하나 청사 내 본인 사무실에 있으면서 상황발생 시 상황조치를 하려는 의사는 있었다는 점 등 관련 판례를 참고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상황관리관으로서 주어진 임무를 소홀히 했을때 결과가 충분히 예견 가능했던 만큼 158명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는 특수본이 수사 초기부터 주력해온 과실범의 공동정범 논리 구성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과실범의 공동정범은 범죄를 공모하지 않았더라도 각각의 과실이 모여 사고의 원인이 된 경우 성립한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경찰과 소방, 지자체 등의 과실책임이 중첩돼 참사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 인과관계 입증이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형량도 직무유기(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보다 업무상과실치사상(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더 무겁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임재 총경에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 추가 

특수본은 다만 이날까지 구속영장이 기각된 경찰 피의자에 대해서만 영장을 재신청할지 타기관 피의자를 포함해 일괄신청할지에 대해서 결론을 못 내고 있다. 지난 5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검찰 측에서 강도 높은 보강 수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영장 재신청 또는 일괄 신청이 이번 주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특수본에 따르면 경찰 측 피의자에 대한 보강 수사는 마무리단계다. 이임재 전 서장에 대해서는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가 추가될 예정이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이 사고 당일 이태원 파출소에서 작성된 상황보고서를 용산서 직원을 통해 파출소 옥상에서 보고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청까지 전파된 해당 보고서에는 용산서장이 참사 당일 오후 10시 17분 현장에 도착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전 서장이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한 시각은 실제로는 오후 11시 5분으로 확인된다. 특수본 관계자는 “(이 전 서장이) 허위내용이 기재된 보고서를 최종 검토 승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29일 오전 이태원 참사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경찰청 특수수사본부(특수본)로 소환되고 있다. 뉴스1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29일 오전 이태원 참사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경찰청 특수수사본부(특수본)로 소환되고 있다. 뉴스1

용산구청 일부 간부, 증거인멸 시도 정황 

다만 용산구청 측 피의자의 경우 일부 휴대전화를 교체 또는 분실한 정황이 있어 경위와 진위 여부를 수사 중이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일주일 뒤인 지난달 5일 기존 휴대전화 대신 아이폰을 새로 구매하고 지난달 말에야 수사팀에 아이폰의 비밀번호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간부는 참사 이후 휴대전화를 화장실 변기에 빠뜨렸다며 새 휴대전화를 구해 써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본은 용산소방서 측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조 지연으로 인해 인명피해가 얼마나 확산됐는지를 보강 수사 중이다. 특수본은 이태원역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도 함께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이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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