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치과의사는 사망보험금 내놨다…죽어서도 나누는 '유산 기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광주광역시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김수관(58)씨는 지난달 사망보험금 약 1782만원을 기부했다. 나눔에 적극적인 김씨는 평소에도 국내외 소외계층을 위한 의료봉사를 다니고 기부도 자주 해왔다. 그는 “평소 기부를 생활화하다 보니 가족들도 유산기부에 동의했다”며 “의료봉사를 다녀왔던 몽골에 기부금이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부한 뒤에 찾아오는 뿌듯함과 보람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며 “경기가 나아지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유산기부의 기쁨을 알려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글로벌 아동권리전문 NGO인 굿네이버스의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굿네이버스는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해 유산기부자모임인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을 2019년 9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굿네이버스를 통해 지금까지 유산기부를 약속한 사람은 40명, 올해에만 10명이 기부 의사를 밝혔다.

고(故) 오모씨의 유가족의 추모기부로 학교 기자재와 학습물품을 지원받은 에티오피아 케베나 지역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고(故) 오모씨의 유가족의 추모기부로 학교 기자재와 학습물품을 지원받은 에티오피아 케베나 지역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유가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며 유산 내놓기도

사후(死後) 기부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유산기부’로 이어지고 있다. 유산기부는 기부자가 자신의 사망 후 남겨질 유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익단체 등 제삼자에게 기부하는 것을 뜻한다. 현금이나 부동산, 주식, 보험, 미술품 등 다양한 유형의 자산을 기부할 수 있다. 고인이 평생을 소중하게 모아온 재산이 다음 세대를 위한 재원으로 ‘사회적 상속’이 이뤄지고,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고인을 기리고자 하는 유가족의 뜻으로 추모 기부가 이뤄질 때도 있다. 고(故) 오모씨의 남동생 2명은 생전 자신보다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누님을 추모하며 2019년 누님의 유산 중 1000만원을 에티오피아 교육지원사업에 기부했다. 이후 사업 결과 보고서를 통해 기부금으로 노트북을 받은 에티오피아 대학생들의 밝은 모습을 본 유가족은 감동받았고, 지난해 1000만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자선단체는 원활한 유산기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외부 전문가와 협업한다. 굿네이버스는 대한변호사협회를 비롯해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법무법인 신우, 세무법인 명품과 업무협약을 맺고 유산기부 관련 법률·세무 상담 및 자문, 유언공증 시 변호사 증인 참석 등을 협력하고 있다. 우리은행, 하나은행과도 업무협약을 통해 유산기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유류분 제도 개선되고 세제 혜택 커져야”

유산기부에 대한 국민 인식은 긍정적이지만 실제 이뤄지는 유산기부는 많지 않다. 2019년 한국자선단체협의회의 ‘유산기부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6.3%가 사회에 유산을 기부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18년 기준 전체 모금액(13조 2000억원)의 25%(3조 3000억원)가 유산기부인 영국과 달리, 한국(2019년 기준)의 전체 기부금(14조 5000억원) 중 유산기부의 비중은 0.8%(1229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한국자선단체협의회는 2019년부터 9월 13일을 유산기부의 날로 정하고, 굿네이버스를 비롯한 16개 자선단체와 함께 유산기부 인식 제고를 위한 공동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유산기부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선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민법상 유산기부를 약정한 기부금에 상속인이 유류분 청구 소송을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유류분은 고인의 뜻과 무관하게 상속인이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유산 비율이다.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절반,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청구할 수 있다. 박종흔 변호사(법무법인 신우)는 “현재의 유류분 제도가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유류분과 관련한 헌법소원도 여러 건 제기됐다”며 “유산기부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유류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세제 혜택이 커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성주 굿네이버스 나눔마케팅본부 본부장은 “최근 부동산 기부에 대한 문의도 많이 들어오는데, 전세금과 세금을 제하고 나면 기부액이 거의 없을 때도 있다”며 “고유목적사업에 쓰지 못해 처분해야 하는 부동산을 공익법인이 기부받을 경우 취득세만 12%(부동산 투기과열지구 기준)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산기부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특별법과 같은 방법으로 세제 혜택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