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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다 쓰러진 아빠 악용한 인간들"…펠로시 딸 '분노 다큐'

중앙일보

입력

낸시 펠로시 전 미 하원의장과 막내딸 알렉산드라. 막내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14편의 작품을 만든 중진 영화인이다. 부모의 그늘이 아닌 자력으로 이룬 성과다. AP=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전 미 하원의장과 막내딸 알렉산드라. 막내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14편의 작품을 만든 중진 영화인이다. 부모의 그늘이 아닌 자력으로 이룬 성과다. AP=연합뉴스

“인간을 더이상은 믿지 않아요.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빠를 악용한 이들을 포용할 준비가 아직은 안 됐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알렉산드라 펠로시(52)가 뉴욕타임스(NYT)에 12일(현지시간) 게재된 인터뷰 기사에서 한 말이다. ‘펠로시’라는 이름 석 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는 미국 권력서열 넘버2인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82)의 딸이다. 지난달 중간선거 이후 낸시 펠로시는 의사봉을 내려놓았고,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한 다섯 남매 등 가족과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일상은 평온과는 거리가 멀다. 낸시 펠로시의 동갑내기 남편, 폴 펠로시가 지난 10월 말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치명상을 입어서다. 이 40대 남성 `괴한은 망치로 폴 펠로시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는 범행 직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팬데믹 대처에 대한 불만이며 펠로시 당시 의장에 대한 비난 조의 글을 올렸다.

폴 펠로시는 두개골에 심각한 골절상을 입고 쓰러진 뒤 수 주에 걸쳐 입원 치료를 받았다. 막내딸인 알렉산드라 펠로시는 NYT에 “아빠는 피바다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이달 초 부부가 함께 공연을 관람하며 피습 후 첫 공개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으나 여전히 불편한 상태였다. 알렉산드라 펠로시 감독의 NYT 인터뷰는 아버지의 피습이 펠로시 일가 전체에 준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여장부'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이 2020년 2월 미 의사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연두교서)이 끝난 후 트럼프 대통령이 건넨 연설문을 찢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장부'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이 2020년 2월 미 의사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연두교서)이 끝난 후 트럼프 대통령이 건넨 연설문을 찢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펠로시 전 의장이 유리 천장을 뚫고 20년간 민주당 지도부에서 활약하는 데는 가족의 뒷바라지가 큰 역할을 했다. 최근 수년간 미국 정치 역시 극단주의적 성향에 빠지고 무분별한 선동성 가짜 정보가 판을 치면서 펠로시 전 의장의 가족 역시 피해가 컸다. 알렉산드라는 NYT에 “지난해 1월 6일, 의회 폭동 현장에 아들을 데려갔는데, 아이가 계속해서 ‘엄마 근데 왜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할머니를 미워해요?’라고 묻더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라 펠로시는 정계 진출은 엄마만의 일로 남겼다. 부모를 엄호하기 위해 직접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일도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해왔다. 본인은 다큐멘터리를 주로 찍는 감독의 길을 걸었고,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은 14개에 달한다. 그중 최근에 완성했다는 다큐멘터리는 다름 아닌 지난해 1월 6일 의회 폭동에 관한 작품이고, 그의 어머니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알렉산드라는 NYT에 “내가 아는 많은 지인들이 의회 폭동에 가담했다”며 “겉으론 멀쩡해보이던 많은 사람이 왜 그런 선동에 마음을 빼앗겼는지를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를 방문해 마리오 드라기(맨 왼쪽) 총리를 만나는 낸시 펠로시(가운데) 미 하원의장과 남편 폴 펠로시.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를 방문해 마리오 드라기(맨 왼쪽) 총리를 만나는 낸시 펠로시(가운데) 미 하원의장과 남편 폴 펠로시. 로이터=연합뉴스

일반인들의 악플이며 비방도 펠로시 일가엔 상처가 됐지만, 더 큰 건 일부 정치인들이 사실 확인도 없이 가족의 비극을 희화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었다고 알렉산드라는 NYT에 말했다. 그의 아버지가 피습을 당해 의식 불명에 빠졌을 때 버지니아 주지사인 공화당 소속 글렌 영킨은 피습 직후, 중간선거 유세장에서 “남편이 피습을 당했다는데 낸시는 대체 어디 있나”며 “남편 돌보게 집으로 보내줘야겠다”고 조롱했다.

논란이 커지며 영킨 주지사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이라며 사과했다. 그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알렉산드라는 NYT에 “일부 정치인들이 팔로워를 늘리거나 표심을 잡기 위해 가족을 악용하는 걸 더이상 보긴 힘들다”며 “내가 해온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함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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