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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주52시간 개편안에 “몰입노동에 숨통” vs “포괄임금제 과로 여전”

중앙일보

입력

“특정 시즌엔 몰입 노동이 필요한데 이제 좀 숨통이 트일 것 같다.”(IT 스타트업 임원 A씨)

VS “포괄임금제로 과로 여전한데 주52시간 손대면 더 심해지지 않겠나.”(IT 노조 관계자)

지난 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미래연)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과제 권고문을 두고 정보기술(IT)·스타트업 업계는 대체로 환영했다. 짧은 시간 내에 압축 성장하기 위해 몰입 노동을 자주 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주 52시간제는 장애물이었기 때문. 하지만 과도한 ‘크런치 모드(개발 마감을 위한 연장근무)’로 인한 상습 과로를 지적해온 IT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이게 왜 중요해

IT업계는 창업자와 스타트업중심으로 ‘몰입 노동에는 자율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주52시간제 틀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 그간 대립해왔다. 이런 가운데 미래연이 연장근로시간 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간 단위로 다양하게 관리하고, 일하는 날과 출퇴근 시간 등을 근로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을 전 업종에서 3개월 이내로 확대하도록 권고했다. 정부가 이를 즉각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IT 기업들은 권고안의 실효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법무법인·노무법인들은 자문사에 권고안 관련 자료를 이미 배포하며 대응 방안을 지원하고 있다.

IT업계 뭐가 달라지나

IT 스타트업들은 그동안 정산 기간 한 달을 기준으로 주당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근로자가 근무시간을 자율 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권고안은 노사가 합의하면 주12시간의 고정된 연장 근로 시간을 한 달에 52시간, 분기(3개월)에 140시간, 반기(6개월) 내 250시간, 1년 이내 440시간까지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권고안이 현실이 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프로젝트 기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론적으로 주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미래연 좌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예외적인,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일축했다.

이외에도 권고안은 기업이 근로 시간제나 임금 체계를 개편할 때 전 직원 아닌, 특정 직무·직종의 동의만 받아도 되게끔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기업이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근로시간 관련 제도를 도입하려면 근로자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 또는 근로자대표(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와 서면 합의를 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권고안이 실행되면 여러 직무 중 개발자 대표의 동의를 받으면 개발자들의 근로시간은 관련 제도만 따로 조정할 수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업계는 대체로 환영

권고안에 대해 IT 스타트업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입장이다. 민관 협력단체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송명진 리서치팀장은 “미래연이 IT업계 의견을 경청했고, 많이 반영이 된 것 같다. ‘J커브’로 압축 성장하려는 스타트업들은 숨통이 트일 수 있다”면서 “권고안이 연장 근로 단위를 확대하더라도 근로시간에 비례해 감축하거나 포괄임금제를 상시 감독하는 방안을 함께 제시한 걸 보면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고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IT스타트업 임원 A씨는 “창업자나 임원이 아니어도 개인과 회사의 성장을 위해 더 일하고 싶어하고 더 보상받고 싶어하는 직원들이 많다”면서 “현실에 맞도록 법이 유연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노조 “과로사 잊었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몰려있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의 모습. 중앙포토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몰려있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의 모습. 중앙포토

민주노총산하 화섬식품노조 소속인 서승욱 카카오 크루유니언 지회장은 “크런치모드로 인한 IT업계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가 될 때 IT업계 노조가 등장했고, 이후 주52시간제가 도입됐다”면서 “권고안에 따르면 노조가 없는 IT기업, 스타트업들은 회사 입맛대로 합의를 추진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IT산업에 노조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오세윤 네이버 공동성명 지회장은 “현장의 문제는 포괄임금제(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을 미리 정해 예정된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다. 규모가 작은 IT기업들은 포괄임금제를 이유로 52시간 초과 근무하고도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며 “법이 권고안대로 개정되고 부작용이 생기면 IT 노조가 다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희영 노무사(노무법인 해밀)는 “스타트업이 특정 기간 주52시간 이상 일할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그럼에도 12주 평균 주60시간 일하고 몇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과로 산재’가 될 가능성이 있어 연장근로시간 1년 확대는 무리”라고 평가했다.

앞으로는   

미래연의 권고안이 실제 적용되려면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동계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내용이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회엔 관련 개정안들이 발의된 상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은 지난 1일 주 단위 연장근로를 월 또는 연 단위로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같은 당 권명호 의원은 지난달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주당 추가 8시간까지 연장근로를 더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2년 더 연장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대 주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한 해당 제도는 올해 연말이면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