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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북침설 등 6·25 낭설 여전… 해외 사료 수집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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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닻 올린 한국전쟁 글로벌 아카이브 사업
2023년 새해는 참혹했던 한국전의 포성을 멎게 했던 정전협정 70주년. 동족 간의 골육상쟁은 멈췄지만, 한반도의 허리는 여전히 잘려져 있고 형식적으로는 지금도 전쟁 상태다. 더 큰 문제는 북침설이 공공연히 제기될 정도로 진영 논리에 따라 한국전이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역사적 수수께끼도 수북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한국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글로벌 아카이브 구축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관련 자료를 집대성해 전쟁의 실체를 정확히 규명하자는 거다. 정전 70주년을 앞두고 뜻깊은 글로벌 아카이브 구축 사업의 배경과 현황을 짚어본다.

내년 정전 70년 맞아 여야 한마음 #미국 위주의 빈약한 사료 문제 커 #9월 글로벌 기록유산 발굴위 출범 #전문가 투입, 35개국 사료 찾기로 # #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남정호의 퍼스펙티브

“역사의 불행 되풀이 말아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기소를 둘러싸고 여야 간 대치가 치열했던 지난 9월 13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눈길을 끄는 토론회가 열렸다.  '6·25전쟁 글로벌 아카이브 구축 성공 전략'이란 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행사에 참석한 5선 중진 설훈 민주당 의원과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 10여명 및 사학계 원로 등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았다.

5선 중진 설훈 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5선 중진 설훈 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16개 참전국과 6개 의료지원국을 비롯, 세계 33개국과 남북한에 흩어져 있는 관련 문서와 참전용사들의 소장품 등 사료를 발굴해 한국전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자는 것이다. 당리당략을 뛰어넘는 숭고한 일이기에 여야의 중진 및 뜻있는 의원들이 뭉쳤다. 국회 내에 '6·25전쟁 글로벌기록유산 발굴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설 의원과 성 의장, 그리고 조광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맡았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 뉴스1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 뉴스1

 이밖에 민주당 안규백·인재근·김한정·송옥주·김홍걸·양기대·정태호 의원과 국민의힘 김성원·정운천 의원, 그리고 무소속 양정숙 의원이 부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사업은 한국전 아카이브 구축의 중요성을 인식한 설 의원의 주도로 시작됐다. 이후 사업의 중요성을 동감한 성 의장이 힘을 보태면서 추진력이 붙었다. 이 밖에 정운천 의원과 김두관 민주당 의원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조광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춘식 기자

조광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춘식 기자

 설 의원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남긴 한국전과 같은 불행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전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판단이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관련 자료를 모아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성 의장도 "해방 후 한반도는 두 진영의 세계적 각축장이 됐으며 지금도 그 역사에 대한 평가가 진영 논리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며 "한국전 아카이브 구축을 통해 우리의 역사가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공정하게 평가됨으로써 후대에 올바른 전쟁의 교훈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9월 1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625전쟁 글로벌 기록유산 발굴위원회' 출범을 기념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조평화

지난 9월 1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625전쟁 글로벌 기록유산 발굴위원회' 출범을 기념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조평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
 한국전은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내용과 미스터리가 너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유엔군 창설을 결의했던 1950년 7월 유엔 안보리 회의에 거부권을 가진 소련이 왜 불참했느냐는 것이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미국의 개입을 유도해 중국을 참전시킴으로써 두 나라의 국력을 소모시키려 했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또 공산국이던 헝가리가 유엔군과 남한에 물자를 지원해줬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북한의 배후에 소련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인도적 차원에서 남쪽을 도왔을 가능성이 크지만 다른 속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한국전 발발을 전후한 북한 내부 사정도 아직 밝혀야 할 부분이 많다. 특히 소련이 어떻게 북한군을 훈련하고 어떤 작전을 만들어줬는지도 규명돼야 할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당시 소련 군사고문단 단장인 니콜라이 바실리예프 중장이 본국 소련에 보낸 보고서가 결정적인 사료일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자료는 현재 러시아의 연방 대외정책문서보관소나 국방부 중앙문서보관소에서 잠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바실리예프는 북한군을 효율적으로 편성하고 훈련하는 한편 남침을 위한 준비를 지휘했다. 그는 공격 작전을 수립했을 뿐 아니라 막후에서 북한군을 지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6·25는 국제전, 사료는 태부족 
 이렇듯 한국전을 둘러싼 의문이 숱한데도 이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료는 빈약한 실정이다. 한국전은 남·북한군 외에 16개국으로 이뤄진 유엔군과 중공군, 소련군이 참여했던 진정한 의미의 국제전이다. 그뿐만 아니라 냉전이라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각국과 국제 관계에 깊은 영향을 끼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런 한국전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내 및 해외 기관이 소장한 다양한 사료를 확보한 뒤 이를 토대로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었다. 국내 학계는 주로 남북한 사료에 의존해왔다. 그나마 1970년대 이후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됐지만 미국 시각 중심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 유엔군 참전국인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자체적인 연구와 기념사업을 진행해왔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성과는 국내에 소개되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 때인 1990년대 초 한·소 관계 정상화가 이뤄지면서 소련의 한국전 관련 문서가 국내에 전달됐다. 이를 통해 몰랐던 비화들이 속속 밝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러시아 자료가 잠자고 있다.

1950년 겨울 한국전쟁의 분수령이 된 장진호 전투 당시 중공군의 저지선을 뚫고 탈출하는 미 해병대. 사진=위키피디아

1950년 겨울 한국전쟁의 분수령이 된 장진호 전투 당시 중공군의 저지선을 뚫고 탈출하는 미 해병대. 사진=위키피디아

 한국전쟁 글로벌 아카이브가 구축되면 미국 자료 중심이라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일변도의 연구가 갖는 문제는 한때 풍미했던 남침유도설 케이스를 통해 잘 드러난다. 미국의 한국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전 시카고대 교수는 1981년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남침유도설을 주장,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남침유도설은 결국 소련 옛 문서 연구를 통해 명백한 잘못임이 확인됐다. 입체적 연구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위원회 측은 전문 인력을 투입, 16개 참전국과 6개 의료지원국은 물론 러시아·중국 등 공산권 관련국과 중립국감독위원회 소속 국가 및  비공식 참여국(대만과 일본)까지 망라한 33개국과 남북한을 더해 전체 35개국의 자료를 수집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이 모을 자료는 해당 국가의 공문서와 공간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간 분야에서 생산된 언론기사·사진·영상까지 모아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한다는 게 이번 사업의 목표다. 나아가 길게는 한국전 아카이브 센터를 만드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베트남전 센터 & 아카이브가 위치한 미국 텍사스테크대 도서관 전경. 사진=위키피디아

베트남전 센터 & 아카이브가 위치한 미국 텍사스테크대 도서관 전경. 사진=위키피디아

미국의 베트남 전쟁 아카이브
 해외에는 특정 전쟁에 대한 아카이브가 존재한다. 실제로 미국 텍사스에는 ‘베트남 센터 & 아카이브’가 1989년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협력으로 설립됐다. 베트남전의 교훈을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게 설립 목적으로 센터는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놓고 있다. 한국전과 관련한 기관도 있다. 미국 미주리주 인디펜던트시에 위치한 트루먼대통령도서관 산하 ‘한국전 자료 연구센터’가 그것으로 주로 미국 문서를 소장하고 있다.
 별도의 한국전 글로벌 아카이브는 아직 없지만 만들어진다면 한국에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입지 조건이 여러모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전 관련국과의 관계가 두루 좋다는 장점이 있다. 사드 배치 및 우크라이나전쟁 등으로 중국과 러시아 관계가 다소 소원해지기는 했으나 미국 등과 비교해서는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어 주요한 문서 확보에 유리할 게 분명하다.
 둘째, 언어 문제에서도 한국이 유리하다. 한국전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영어는 물론 러시아·중국·프랑스어 등으로 된 1차 자료와 함께 남북한 문서를 해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해외 전문가들은 극히 제한돼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모국어인 한국어 외에 영어·불어·러시아어 등 다른 외국어에 능통한 자원이 많은 데다 서양 학자에 비해 중국어·일본어를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어 보다 광범위한 연구가 가능하다. 요컨대 해외 자료까지 충실히 수집한 글로벌 아카이브를 국내에 설립하면 '한국전 연구를 하려면 한국에 가야 한다'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을 수 있다. 이는 역사 분야 내 한국의 존재감을 한 단계 끌어올림으로써 국위 선양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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