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 태어난 동굴 마굿간, 돌 구유...참 낮은 곳이었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아기 예수 태어난 동굴 마굿간, 돌 구유...참 낮은 곳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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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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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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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앞두고 이스라엘 땅을 찾았다. 예수가 나고, 자라고, 하늘나라의 뜻을 전하고, 십자가에서 숨진 뒤 부활한 땅. 그곳을 순례했다.

보고 싶었다. 2000년 전 예수가 밟았던 오솔길과 그가 바라봤을 광야의 새벽별, 성경에 등장하는 갈릴리 호수의 풍경도 보고 싶었다. 예수도 만났을 풍경들을 통해 사실은 ‘예수 당시’를 만나고 싶었다.

#베들레헴-예수의 탄생

지난달 28일 튀르키예를 거쳐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했다. 보안 검색은 엄격했다. 불과 며칠 전에 예루살렘에서 두 건의 폭탄 폭발 사건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종교의 성지이자, 동시에 정치적 갈등의 땅이었다.

베들레헴 예수탄생 교회 앞의 광장에 대형 성탄 트리가 세워져 있다. 오른쪽 뒤편으로 이슬람 모스크의 탑이 보인다. 십자가와 초승달,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상징이 마주한 풍경이 베들레헴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다. 백성호 기자

베들레헴 예수탄생 교회 앞의 광장에 대형 성탄 트리가 세워져 있다. 오른쪽 뒤편으로 이슬람 모스크의 탑이 보인다. 십자가와 초승달,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상징이 마주한 풍경이 베들레헴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다. 백성호 기자

먼저 간 곳은 베들레헴이었다. 예수가 태어난 땅이다. 지금은 이스라엘 안에서도 팔레스타인 자치 도시다. 높다란 장벽이 베들레헴을 둘러싸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들어갈 때는 ‘체크 포인트’라 불리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실탄을 장착한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베들레헴은 해발 770m의 산악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베들레헴 너머에는 황량한 유대 광야가 펼쳐졌다. ‘베들’은 집을 뜻하고, ‘레헴’은 빵을 뜻한다. 베들레헴은 ‘빵 만드는 집’이란 뜻이다. 그러니 옛날에는 이곳에 밀을 빻는 정미소가 있지 않았을까.

예수의 고향은 나사렛이다. 어머니 마리아와 양부 요셉이 살던 도시다. 그런데 왜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까.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10㎞나 된다. 당시 사람들은 걸어서 하루 16㎞를 갔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꼬박 1주일 여정이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마리아와 요셉은 왜 이곳까지 왔을까.

순례에 동행한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는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로마 황제의 명에 의해 호구 조사가 실시됐다. 요셉은 자신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호적 신고를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만삭의 몸으로 1주일을 걸었으니 말이다. 마리아와 요셉은 힘겹게 베들레헴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갔다. 30년째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유대학연구소 이강근 소장은 “베들레헴 지역에는 자연 동굴이 많다. 당시 마리아가 찾아간 숙소도 동굴로 된 집이었다. 위층의 게스트룸은 이미 다 찼고, 아래층은 주인이 사는 방이었다”며 “할 수 없이 요셉과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자야 했다. 그런데 그날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장소라고 전해지는 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엎드려 기도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아기 예수가 태어난 장소라고 전해지는 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엎드려 기도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그 동굴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1500년 전에 세워진 예수탄생 교회(The Church of Nativity)다. 325년에 지어졌다가 파괴되고 529년에 재건됐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지 중의 성지’로 꼽는 곳이다.

그곳을 찾아갔다. 아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교회였다. 앞에는 널따란 광장이 있었다. 광장 맞은편에는 커다란 이슬람 모스크(사원)이 있었다. 십자가와 초승달,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두 상징이 수십m 거리에서 마주하는 풍경이 베들레헴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예수탄생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가 무척 낮았다. 고개와 허리를 한껏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이 소장은 “베들레헴이 이민족에 정복됐을 때, 말을 타고 성지에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 기존의 출입문을 없애고, 더 낮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은 ‘겸손의 문’이라고 불린다.

교회 바닥에는 지하로 내려서는 통로가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동굴로 된 공간이 나왔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그 앞에 줄지어 있었다. 예수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자리, 그 앞에서 사람들은 엎드렸다. 누구는 기도를 하고, 또 누구는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모두 2000년 전에 벌어진 신비의 사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예수탄생 교회 지하에 있는 동굴에는 아기 예수를 눕혔다고 전해지는 말구유가 있다. 구유는 화강암으로 제작됐고, 베들레헴에서 화강암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돌이다. 백성호 기자

예수탄생 교회 지하에 있는 동굴에는 아기 예수를 눕혔다고 전해지는 말구유가 있다. 구유는 화강암으로 제작됐고, 베들레헴에서 화강암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돌이다. 백성호 기자

그리스도인에게 예수의 탄생은 신비다. 하나님(하느님)이 몸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는 일이다. 말씀(로고스)이 육신이 되는 일이다. 하늘의 뜻이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통로가 생기는 일이다. 그러니 이보다 큰 기적과 신비가 있을 수 없다.

예수가 탄생한 자리 바로 옆에 말구유가 있었다. 화강암으로 된 구유였다. 화강암은 베들레헴에서 흔한 돌이다. 소강석 목사는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곳이 바로 여기다. 당시 유대 땅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전쟁용으로 쓰일 수 있는 말을 함부로 키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곳은 나귀를 키우는 마구간이었을 것”이라며 “아기 예수를 뉜 말구유를 보니까, 더 낮게 내려서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 한국 교회를 반성하게 된다. 우리 곁으로 더 가까이 오고자, 가장 누추한 곳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고 말했다.

#골고다 언덕-예수의 죽음과 부활

순례의 길은 나사렛과 갈릴리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이어졌다. 올리브 산에 있는 예수승천 교회에 갔다. 뜻밖의 광경이었다. 순례객 중에 히잡을 둘러쓴 무슬림들도 있었다. 가서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본다. 그래서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슬람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보진 않지만, 아브라함이나 모세 같은 선지자로 보고 있다. 반면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나 선지자로도 보지 않는다. 하나의 뿌리에서 올라온 세 종교, 예루살렘에서는 그걸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예수 이전부터 유대인에게는 죽음 뒤의 부활관이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일단 땅속에 묻히고 육신이 썩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유대의 메시아가 오면 새로운 몸을 갖고 무덤 속에 있던 이들이 다시 일어난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에서 만난 고고학자 루발 루아 박사는 “유대교인은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는 날, 죽은 사람도 부활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메시아가 이 땅에 오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2000년 전, 예수 당시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관과 사후 부활관을 지금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고 전해지는 장소다. 백성호 기자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고 전해지는 장소다. 백성호 기자

십자가에서 숨진 예수의 주검을 눕혔다고 전해지는 돌이다. 그 돌에 손을 올리고 순례객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십자가에서 숨진 예수의 주검을 눕혔다고 전해지는 돌이다. 그 돌에 손을 올리고 순례객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불과 800m였다. 사형 재판을 받은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진 곳에서 처형을 당한 골고다 언덕까지, 직선거리로 고작 800m였다. 이 짧은 거리는 예수에게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땅에서 하늘까지 거리였을까. 예수 뒤에 남은 이들에게도 그랬다. 히브리어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불리는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을 향하는 순례길이기도 하다.

야트막한 계단과 오르막의 연속인 그 길을 따라 골고다 언덕으로 갔다. 언덕 꼭대기에 성묘 교회가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따가운 이스라엘의 햇볕 아래서 숨을 거두었던 곳. 그 자리에는 예수의 십자가상이 서 있었다. 그 앞에 많은 순례객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은 십자가의 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두 손을 모았다. 성묘 교회 안에는 예수가 부활한 자리라고 전해지는 동굴 무덤도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무덤은 텅 비어 있었다. 매 순간 소멸하는 인간의 유한한 삶, 그걸 뚫고 나가는 초월의 사건이 거기서 벌어졌다. 다름 아닌 예수의 부활이다.

성묘 교회 안에 있는 예수 부활의 동굴 무덤이다. 소강석 목사와 이재훈 목사가 동굴 무덤 안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성묘 교회 안에 있는 예수 부활의 동굴 무덤이다. 소강석 목사와 이재훈 목사가 동굴 무덤 안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동굴 무덤 속에서 눈을 감았다. 삶과 죽음, 우리에게는 양립할 수 없는 두 단어다. 예수는 달랐다. 그는 부활을 통해 삶과 죽음을 하나의 직선으로 이었다. 무엇일까. 삶과 죽음, 그 사이의 아득한 간격을 잇는 다리 말이다. 동굴 무덤에서 나와 다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상으로 갔다.

못 박힌 예수를 보면서 생각했다. 십자가가 아닐까. 그 다리의 이름 말이다. 우리의 고단한 일상에서, 날마다 주어지는 각자의 십자가가 아닐까.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며 몸소 보여준 게 아닐까. 나에게 이르는 길, 그건 바로 너의 십자가라고 말이다.

골고다 언덕에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도 노을이 이렇게 붉었을까. 십자가에서 쳐다본 예수의 하늘도 이토록 붉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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