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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사각지대 전세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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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안효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안효성 경제부 기자

안효성 경제부 기자

최근 A씨 부부는 전세대출 이자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A씨 부부가 받은 전세대출 금리는 지난달 말 연 3.5%에서 연 5.68%로 훌쩍 뛰었다. 이자 부담은 110만원에서 190만원으로 80만원이 불었다. 뾰족한 수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굳이 결론을 찾자면 “전세계약이 끝날 때까지 덜 쓰며 버티다 월세를 알아보자” 정도였다.

치솟은 전세대출 금리로 고통을 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금리 상단은 13일 기준 연 7.406%까지 올랐다. 전세대출은 변동금리 비중이 93.5%(21년 말)로 유독 높다.

그동안 전세대출은 금융당국 발 대출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전세대출이 풍선처럼 부풀고, 갭투자와 전셋값 상승의 동력이 됐을 때도 규제를 하지 않았다. 실수요자가 대출을 받는 경우도 많은 데다, 정부 입장에서는 은행 대출을 활용해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도모할 수 있어서였다.

전세대출 금리 급등으로 전세 세입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 전세대출 금리는 상단 기준으로 연 7%를 넘어섰다. [연합뉴스]

전세대출 금리 급등으로 전세 세입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 전세대출 금리는 상단 기준으로 연 7%를 넘어섰다. [연합뉴스]

그래서인지 전세대출은 금융당국이 금리 상승기에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낮춰 준다며 쏟아대는 각종 대책에서도 사각지대다. 대책의 수혜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아 집을 산 이른바 ‘영끌족’에 집중돼 있다. 내년부터는 소득과 상관없이 집값이 9억원을 넘지 않으면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의 고정금리 대출로 바꿔준다고 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런 혜택을 전세대출에도 확대할 수 있는지 검토해보겠다고 했지만, 현실성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금융당국도 만기도 짧고 담보도 없는 전세대출의 특성상 뾰족한 수를 찾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주담대는 만기가 길고 담보가 있는 만큼 고정금리 대출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주택저당증권(MBS) 발행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전세대출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보증기관의 보증을 통해 무위험으로 수익을 내온 은행들의 반응도 미지근하다. 일부 은행이 전세대출 금리 인하를 한다고 했지만, 신규와 연장 대출에 한해서다. 서민들을 돕는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최근 전세대출 감소에 대출 수요를 다시 늘려보겠다는 계산도 깔렸을 것이다. A씨 부부처럼 기존 세입자들에게는 별다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A씨 부부에게 잘못한 게 있다면 결혼한 시기였을 것이다. 하필이면 아파트 가격 급등과 임대차 3법이 맞물리며 전셋값이 급등한 지난해 중순 무렵 전셋집을 마련했다. 정책 실패의 후과와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역풍을 그대로 맞았다. 금융당국은 각종 금리 등에 개입하며 ‘선량한 관리자’를 자처하고 있다. 선량한 관리자가 정책 실패로 피해를 보는 세입자를 외면해서야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