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일본의 실버민주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2500년 전 대제국 페르시아의 침략을 살라미스 해협에서 막아 낸 데미스토클레스는 8년 뒤 민회에서 추방된다. 도자기 조각에 추방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내는 도편(陶片) 추방 제도를 통해서다. 은광이 발굴되자 시민들에게 나누어주는 대신 선단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하여 그리스를 페르시아로부터 구한 그도 도자기 조각 개수 앞에서는 무력했다. 여기서 발전한 민주주의는 투표수가 핵심이다. 그런데 이러한 투표수가 간혹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때가 있다.

일본은 고령화로 인해 사회보장지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사회보장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기준으로 22%인데,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20%보다 높다. 이에 반해 조세부담과 사회보장부담을 합한 금액을 GDP로 나눈 국민부담률은 43%로 OECD 34개국 중에서 27위를 차지할 정도로 낮다. 사회보장지출과 국민부담률간의 불균형이 큰 편이다.

고령화로 사회보장지출 급증
세수는 정체, 국가부채로 충당
우리도 연금·세제개혁 이뤄야
젊은층의 적극적인 참여 필요

은퇴와 투자

은퇴와 투자

문제는 국민부담률은 높아지지 않고 사회보장지출 부담만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보장지출의 GDP 비중은 1990년에 비해 25년 동안 10%포인트가 상승했지만 국민부담률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별다른 개혁 없이 이 추세대로 가면 2060년에 사회보장지출 비중은 거의 30%까지 상승하는데 반해 국민부담률은 제자리 수준에 있게 되어, OECD 국가 중 특이한 불균형 국가가 된다. 일본은 이러한 불균형을 적자국채를 발행해서 해소하고 있는데 그 불균형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수 확대보다 적자국채를 계속 발행하는 것은 장기 저성장으로 세수가 증가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조세저항도 한 이유다. 일본은 세금 인상 이야기가 나오면 선거에서 진다. 1989년에 소비세 3%로 시작해서 1997년에 5%로 인상했는데 그다음 선거에서 의석수가 감소했다. 2010년에는 민주당에서 10% 인상안을 표명했다가 선거에 참패했다. 이후 5%에서 8%로 인상하는 데 무려 17년이 소요됐다. 아베 정부는 2014년, 2016년에 소비세 증세를 연기하면서 의석은 증가했다. 그리고, 소비세율은 2019년에야 10%로 인상된다. 소비세는 소득이 없는 노후에도 물건을 사면 부과되는 것이기에 고령자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고령자의 조세 저항이 있을 수 밖이다.

야시로 나오히로 교수는 『실버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투표율도 높은 고령층의 정치적 파워가 개혁을 막고 있다고 본다. 그는 ‘고령자는 약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고령자 우대를 극복해야 재정 건전성과 사회보장 개혁으로 국가의 지속 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이제부터 본격적인 고령화에 접어들어 2050년을 넘어서면 일본보다 노인부양비율(65세 이상 인구수/생산가능인구수)이 높아진다. 사회보장지출 급증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연금·세제 개혁 모두가 절실한 때다.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외부로부터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 외부로부터 강제로 개혁하게 되면 IMF 외환위기에서 보듯 국가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 파고를 맞는 우리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목표로 스스로 대비하고 바꾸어야 한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 증가는 피할 수 없지만 효율화하고 개혁하여 증가폭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연금개혁과 선택적 복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세수증가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포퓰리즘 정책에 안주하다 보면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져 경제 전체의 틀이 흔들릴 수 있다. 경제의 틀이 흔들리면 건강한 기업도 어렵게 된다.

세제 면에서는 근로소득을 버는 젊은층이 줄어들고 자산소득을 얻는 고령층이 많아지므로 소비나 자산이 감당하는 세수의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 특히 복지사회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지지 않도록 성장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복지를 유지하는 게 성장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실행에 옮기려면 젊은 세대의 적극적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2023년은 개혁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 『채근담』에 ‘멀리 바라보지 않으면 근심은 가까이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도 실버 민주주의가 이미 왔다. 실버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순기능을 발휘하기를 소망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