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文에 돌직구' 前경기방송 기자 "재승인때 사장이 한직 종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9년1월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불손한'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민주당 지지층에 공격당한 끝에 기자직을 사직한 경기방송 김예령 전 기자는 "당시 사장이 나를 불러 '재승인 심사과정에 김 기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살신성인해달라'며 출입처를 청와대에서 한직인 경기 북부로 바꾸라고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김 전 기자는 "당시 재승인 심사권을 쥔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내 이름이 계속 거론됐고 경기도 의회 민주당 모 도의원도 내 이름을 거론했다고 들었다"며 "경기방송이 내게 출입처 변경 등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재승인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암시로 해석됐다"고 중앙일보 유튜브 '강찬호의 투머치토커' 인터뷰에서 말했다.

19년 文 회견에 '자신감' 질문한 김예령 기자 #"사장이 청와대서 북경기로 출입처 변경 요구" #"이유 묻자 '정무적 판단이니 살신성인하라'" #"방통위도 '김예령'이름 거론하며 압박 정황" #"페북 글 올리자 사장 '부담된다'며 함구 요구" #"민주당 의원들,경기방송 출연금지 오더받아" #"내 질문이 폐업에 영향 미친 것 분명해보여" #오후5시 유튜브 '강찬호의 투머치토커' 상세보도

 이와 관련,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박경섭)는 최근 2019년 경기방송 재허가 심사에서 점수 조작 등 위법을 저지른 혐의로 고발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등 방통위 관계자 6명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한 위원장 등을 고발한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은 "경기방송은 33개 방송사 중 '객관적 평가'에서 8위에 올랐으나, 심사위원 의견이 반영되는 '주관적 평가'에선 33위로 꼴찌를 기록했다"며 (한상혁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지냈던) 민주언론시민연합 소속 심사위원이 점수를 고의로 낮게 줬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공언련에 따르면 경기방송이 이렇게 납득하기 힘든 심사 결과로 조건부 재허가 승인을 받은 끝에 이듬해 폐업하게 된 것은 2019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예령 전 경기방송 기자가 건넨 질문이 발단이 됐다는 것이다. '강찬호의 투머치토커'는 사건의 중심에 선 김 전 기자를 인터뷰했다. 일문일답.

 -경기방송 폐업을 불렀다는 당신의 2019년1월 대통령 기자회견 질문은 어떤 취지에서 나온 것인가?
 "당시 동네 가게에 들를 때마다 매상을 물어보니 하나같이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을 했는데, 문재인 청와대는 매일 통계를 들이대면서 경제가 나아지고,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고 하더라. 이해가. 안되던 차에 문 대통령도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그런 얘기를 하니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준비했던 질문 대신 이렇게 물었다.  '현실 경제가 굉장히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께서 현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시는 이유를 알고 싶고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니다'"
 -그때 문 대통령 표정은
 "'이 기자가 무슨 질문을 하나'면서 듣고 있다가 '자신감'이란 단어가 나오니까 불편한 표정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질문을 마치니까 얼굴이 다소 일그러진 느낌이더라."

 -당신의 질문은 온라인에선 '경제가 잘되고 있다는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고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 워딩과는 차이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 그래서 '근자감'이란 잘못된 말까지 돌고 있다. 이렇게 내 질문을 왜곡하고 희화화하는 사람들은 질문의 근간을 꿰뚫지 못한 분들이다. 내 질문의 요지는 대통령을 비꼬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잘못된 정책을 고수하는 대통령 철학의 본질이 뭔지 물은 것이다."
-그 뒤 어떻게 됐나
 "기자회견 11개월 뒤인 2019년 12월에 회사에서 보도국장을 통해 내 출입처(청와대)를 경기 북부로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고 따졌다. 그러자 회사가 '청와대를 계속 출입하라'고 입장을 번복하더라. 그래서 한때의 해프닝으로 여겼는데 한 달도 안된 2020년 1월 6일 점심 직후 청와대 춘추관에 있던 내게 사장이 전화해 '회사로 들어오라'고 하더라. "
-그래서 어떻게 했나
 "귀사해서 사장실로 들어가니 사장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김 기자, 내가 좀 미안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출입처를 경기 북부로 바꾸라'고 말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경기 북부로 가야 하는 이유를 묻고 싶다'고 하니 사장은 한숨을 쉬면서 '정무적인 판단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상징성 있는 중요한 자리 아니냐. 그래서 김 기사가 대의적으로 살신성인 해야 할 것 같다'고 답하더라. 이어 '지금이 우리 회사 재승인 심사 기간인데 그 과정에서 김예령 기자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고 하더라. 사장이 재승인을 앞두고 방통위 관계자들을 만나다 그런 소리를 듣고 내게 에둘러 표현한 듯하다."

 -방통위가 사장에게 "김 기자를 청와대에서 빼야 재승인에 불이익이 없다"는 암시를 준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은 'KBS 기자도 문 대통령을 인터뷰한 뒤 다른 곳으로 보직 변경되지 않았나?'라고도 하더라. 게다가 경기방송은 관청이나 지자체에서 수주하는 광고가 많은데 내 질문이 논란이 된 이후 광고가 격감해 예산이 삭감됐다. 민주당 정치인들도 우리 방송 출연을 기피해 인터뷰 섭외마저 힘들어졌다. 민주당 출입 기자들에게 들어보니 민주당 의원들이 '경기방송은 출연하지 말라'는 오더를 받았다고 하더라. "
 -사장의 출입처 변경 요구는 어떻게 됐나
"난 '그런 이유라면 출입처 변경을 받아들일 수 없다. 싸워야 할 것 같다'고 일축했다. 사장실을 나온 뒤 방통위와 도 의회 출입 동료 기자에게 물어보니 '방통위에서 김예령 이름이 계속 거론됐고 도 의회에서도 모 민주당 도의원이 김예령 이름을 언급했다'고 전해주더라. 일단은 버텼지만, 경기방송 공채 1기인 내가 회사의 재승인에 걸림돌이 돼선 안되고, 후배들 생계를 가로막아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결국 3월 초 사표를 냈다."
 -그런데도 3월 29일 경기방송은 결국 문을 닫았다.
 "객관적 평가는 6위인데 주관적 평가는 33위, 꼴등을 했다. 이런 비상식적인 결과가 나온 데 대해 검찰이 수사를 개시했으니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
-경기방송은 조건부 재승인으로 심사 결과가 났는데, 폐업한 이유는
 "재승인의 조건이 과했다. 특정인 (A 전무)을 경영에서 배제하고 주요 주주나 특수 관계자 아닌 사람을 사내이사로 위촉케하는 등 독소 조항이 너무 많아 폐업 외엔 길이 없던 듯하다."

 -경기방송 폐업에 당신의 기자회견 질문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회사의 한 임원이 사석에서 민주당을 비판한 발언이 여권에 흘러 들어간 것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그러나 내 문제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맞다고 본다. "
 -사직 전후 무슨 일이 있었나?
 "페이스북에 내 답답한 상황을 올리고 '회사를 떠나야 할 것 같다'고 썼다. 언론에 이 소식이 대서 특필되자 사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김 기자, 미안하지만 내 이름이 더는 거론 안 됐으면 좋겠다. 부담을 많이 느낀다'고 하더라. 인간적으로는 안 된 마음이 들어 이후 침묵을 지켰다."
-민주당 지지층의 악플에 시달렸다는데
 "악플은 수없이 많이 받았지만 거기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라 들여다보지 않았다. 악플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언론계 동료나 선배들이 내게 냉랭해진 것이다. 지나가다 인사해도 무시하는 건 기본이었다.  한 선배는 '언론인 출신 부친한테 부끄럽지 않으냐'는 문자까지 보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문재인 청와대나 민주당의 반응은
 "정치인들이라 그런지 대놓고 항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과거보다 눈에 띄게 냉랭하게 대하더라. 날 대하는 표정도 어색했다. "
-탁현민 전 청와대 비서관이 SNS에서 김예령 기자 질문을 언급하면서 "빈정거리는듯한 태도 등을 놓고 여권에서 예의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문재인) 청와대는 그 기자를 제재해야 한다거나 해당 언론사의 취재를 제한해야한다고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내가 그때 빈정거렸다고 생각하나? 오히려 더 강하고 직선적으로 질문해야 했는데, 너무 예의를 차려 에둘러 물었던 것이 후회된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출연한 유튜브 방송은 내 질문에 대해  '술 먹고 푸념하는 질문'이라고 했는데, 이야말로 빈정거리는 태도 아닌가?"

 -한겨레 등 진보 매체와 기자협회 등이 윤석열 정부의 '언론 탄압'을 강력히 비판하는데 당신의 경우와 비교하면
 "태도가 한참 다르다. 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내게 민주당 지지층의 악플이 쏟아지던 상황에서 기자협회 간부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술 한잔 마신 분위기였는데 '미안하다. 우리가 할 일인데 하지 못하니 이해해달라'고 하더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입장을 내는 게 우리 일인데, 그걸 못하겠으니 미안하다'는 거다. 그냥 '알았다'고 답한 뒤 끊었다. 청와대 출입 지방 매체 기자단도 내게 전화해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 '야당(국민의힘)도 성명을 냈고 우리도 그래야 하는데….' 하면서 말을 못 잇는 거다. "
-검찰이 최근 경기방송 재승인 심사 조작 의혹 수사에 착수했는데
 "낱낱이 수사해 실체가 밝혀지기 바란다. 그러면 내 발언으로 피해를 본 경기방송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수사에 협조 요청이 오면 기꺼이 응해 내가 당했던 일이나 팩트를 소상히 진술할 생각이다."
(이 기사는 14일 오후 5시 중앙일보 유튜브 '강찬호의 투머치토커'에 상세보도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