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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주는 진짜 구단의 주인일까

중앙일보

입력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감격한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 연합뉴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감격한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 연합뉴스

지난 12일 프로야구 SSG 랜더스 류선규(52) 단장이 구단에 사의를 전했다. 류 단장은 "물러날 때가 됐다. 박수를 받으며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어 SSG는 김성용 퓨처스(2군) R&D 센터장을 신임 단장으로 선임했고 14일 발표했다. 김성용 신임 단장은 24년간 야탑고 감독을 지냈고, 지난해 11월 SSG 구단에서 2군 역량 강화 업무를 맡았다.

비(非)선수 출신인 류 단장은 25년간 현장에서 일했고, 2020년 전신인 SK 와이번스에서 단장에 올랐다. 이후 구단이 SSG로 인수되면서 보직을 유지했다. 추신수, 김광현 영입, 비FA 선수들의 다년 계약 등을 이끌면서 SSG의 정상 등극에 기여했다. 그러나 우승 직후 이례적으로 물러났다.

SSG 팬들은 류 단장 해임 배경에 구단주와 가까운 A씨가 있다고 본다. A씨는 중소기업 대표로 정용진 구단주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오래 전부터 야구계 인사들과도 자주 교류했다. 연예인 야구단인 천하무적 야구단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당시 야탑고 감독이었던 김성용 단장과 알게 됐다.

SSG가 야구단을 인수하면서 A씨는 구단 자문 역할을 했다. 팬페스트, 우승 축하연에도 참석할 정도로 현장에도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보직을 맡아 구단 운영에 참여하진 않았다. 팬들은 그럼에도 야구 비전문가인 A씨가 류선규 단장을 물러나도록 압박한 게 아니냐며 들끓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SSG가 창단 2년 만에 우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고, 큰 관심을 쏟았다. 클럽하우스 단장 및 전력 강화를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다.

대다수 모기업과 구단주는 야구단을 홍보 수단 또는 사회 환원 사업 일부로 생각한다. 야구장을 1년에 한 번도 찾지 않은 구단주가 대다수다. 그러다 보니 야구팬들은 '용진이 형'이라고 부르며 정 부회장의 행보에 환호했다.

구단주는 야구단 운영에 있어 전권을 행사한다. 관중 수입, 중계권료 등이 과거에 비해 늘어났지만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주주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업들과는 달리 야구단은 구단주의 결정이 곧 법이다. 인사권은 그 중 일부다. 이번 단장 교체 건도 A씨가 관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정용진 부회장의 결재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김택진 NC 다이노스 구단주와 정용진 SSG 구단주. 사진 정용진 인스타그램

김택진 NC 다이노스 구단주와 정용진 SSG 구단주. 사진 정용진 인스타그램

정용진 부회장의 롤모델은 NC 다이노스 구단주 김택진 NC소프트 대표이사다. 김택진 구단주는 자신의 힘으로 9구단 NC 창단을 이뤄냈다. 이후에도 자주 야구장을 찾으면서 과감한 투자를 해 2020년 창단 첫 우승까지 일궈냈다.

오프시즌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던 두산 베어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야구에 대한 애정이 매우 크고, 중요한 의사결정에 개입한다. 박 회장은 올해 두산이 9위에 그치자, 이승엽 감독을 직접 만나 지휘봉을 맡겼다. FA였던 포수 양의지 영입에도 관여했다.

한국프로야구만의 상황은 아니다. 메이저리그도 비슷하다. 사치세, 수익공유, 드래프트 등 전력 평준화를 위한 제도가 마련됐지만 빈부 격차가 크다. LA, 뉴욕,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를 연고지로 한 팀이 아니면 구단주의 재력에 따라 팀의 전력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해외축구도 마찬가지다. 프리미어리그 첼시는 2003년 러시아 석유 재벌 로만 이브라모비치가 구단을 인수한 뒤 세계적인 클럽으로 성장했다. 맨체스터 시티도 2008년 만수르가 사들인 뒤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구단주들은 자신이 원하는 인사를 단장과 사장으로 선임해 팀을 바꿔나갔다.

야구 팬들은 때때로 '돈을 써달라'며 구단주의 호의를 기대한다. 응원을 하는 입장에선 '승리'가 가장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자립형 모델을 만들지 못한 프로스포츠 팀으로선 구단주와 모기업의 방향성에 따라 이리저리 오갈 수 밖에 없다.

SSG 팬들은 불과 며칠 전까지 정용진 부회장에게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정 부회장의 소셜미디어에 댓글을 달고, 본사 앞 트럭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구단이 구단주만의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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