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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노영민이 이정근에게 CJ 계열사 취업 제안했다더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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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연루 사업가 박모씨에게 들어본 ‘게이트’ 내막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친분을 거론하며 사업가 박모씨에게 9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사건이  ‘친문 게이트’로 확대되고 있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 전 부총장의 CJ 계열사 고문 취업에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출국 금지됐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더불어민주당 4선 노웅래 의원의 6000만원 수수 혐의도 이 전 부총장 수사로 불거진 것이다. 사건의 키를 쥔 박씨는 검찰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박씨의 휴대전화를 검찰이 확보하면서 ‘근거 있는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씨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내막을 알아본다.

“이정근, 휴대폰에 녹음앱 깔고 녹음”

지난 9월30일 억대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가운데)이 영장 실질심사 출석차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며 취재진에 둘러싸여있다. 돈을 건넸다는 사업가 박씨는 “개인적으로 빌려준 돈으로 뇌물이 아니라는 증거가 명백하며 검찰도 이를 인정했다”고 했다. [뉴스1]

지난 9월30일 억대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가운데)이 영장 실질심사 출석차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며 취재진에 둘러싸여있다. 돈을 건넸다는 사업가 박씨는 “개인적으로 빌려준 돈으로 뇌물이 아니라는 증거가 명백하며 검찰도 이를 인정했다”고 했다. [뉴스1]

이 전 부총장은 검찰에서 “박씨가 연 20% 넘는 고금리 사채 이자를 유도해 거절했더니 대선 이후 음해하기 시작했다”고 했다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사실이라면 날 악덕 사채업자로 고소하면 되지 않나. 증거가 전무하니  못 하는 거 아니겠나.”
당신이 이 전 부총장에 준 돈은 개인적 대출인가, 청탁 용도인가.
“내가 이정근에 청탁했다고 검찰이 추정하는 건수는 16개에 달한다. 고작 9억여원으로 그럴 수 있나? 이정근이 내게 전세금으로 빌려 간 돈만 3억원이다. 남은 6억여원으로 15건을 청탁할 수 있겠나? 다만, 내가 전세금 빌려주면서 ‘심부름 한번 해 달라’ 정도는 할 수는 있지 않나? 이정근은 그럴 때마다 내게 (또)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이게 (검찰에서) 졸지에 ‘대가’가 돼 버리는 거다. 한마디로 오비이락일 뿐이다.”
즉 이 전 부총장이 당신에게 받은 돈은 개인 채무인데 뇌물로 오인됐다는 건가.
“그렇게 보면 딱 맞는다. 검찰이 사람 때려잡는 백정이 아니지 않으냐. (내가 뇌물을 준 게 아니라는) 증거가 분명히 있다. 검찰도 그 사실을 인정했으니 ‘알선 수재’ 혐의만 적용했지 않았겠나. 검찰 조서도 다 그렇게 돼 있다. 어떤 바보가 통장에 3억원을 ‘정치자금’으로 넣어 주겠나. 전세금 빌려준 거니 그럴 수 있었던 거지. 그 말로 갈음하겠다.”
이 전 부총장이 2020년 서울 강남 구룡마을 개발과 관련해 “노영민 비서실장님이 도와준다고 했다”면서 당신에게 돈을 받아갔다는 혐의는 사실인가.
“검찰 조사가 사실일 것이다. 이정근은 자신의 휴대 전화에 녹음 앱을 깔아뒀다. 거기서 나에게 없는 것(녹취록) 수백개가 나왔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내가 뭐든지 녹음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난 거짓말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만 녹음한다. 이정근도 나랑 전화할 때는 얘기 안 하고 다  빠져나간다. 대신 나를 만날 때 얘기한다. 그때 (내가) 녹음한 기록에서 결정적인 것들을 잡아낸 거다. 그밖에 다른 의혹들은 전부 이정근이 녹음한 것에서 나온 거다.”

(검찰은 10월 이 전 부총장이 민주당 인사들과의 통화를 녹음한 휴대전화를 입수했다. 이 전 부총장은 “8월 초 폭우 속에 휴대전화를 분실해 새로 개통했다”며 검찰에 새 전화기를 제출했으나, 검찰은 그가 휴대전화를 지인 집에 숨겼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색 끝에 확보했다. 검찰은 그가 삭제한 통화기록도 포렌식으로 되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노영민에게 차관 자리 달라 했다”

2020년 8월, 이 전 부총장이 “노 실장님에게 그동안 돈을 갖다 주지 않았지만 이젠 비즈니스 관계로 전환하려 한다”며 당신에게 5000만원을 받아 간 혐의가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정근이 그런 뉘앙스로 혼잣말한 걸 들은 적은 있지만, 나한테 얘기한 건 아니다. (혼잣말 내용은?) ‘내가 노 실장을 오빠, 오빠 해왔는데 아무리 친한 오빠라도 내 단가(값)가 떨어지는 것 같아 앞으론 비즈니스로 전환해 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이 전 부총장은 노 전 실장을 ‘오빠’로 부르는 관계인가?
“문자 등등에서 그런 식으로 확인이 되더라.”
노 전 실장은 2020년 이 전 부총장이 CJ그룹 계열사인 한국복합물류 고문에 취임하도록 영향을 미쳤다는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데.
“검찰 조서에 있는 내용이니 말하겠다. 그 제보는 내가 한 거다. 이정근이 하루는 나한테 ‘노영민 실장이 내게 CJ에 취직하라고 했다’면서 ‘억대 연봉에 차와 카드도 나오는 자리’라고 하더라. 내가 ‘그러면 거기 가라’고 권하니, 이정근은 노영민 실장한테 ‘정치인으로 부적절한 자리라 안 가겠다. 대신 차관 자리를 달라’고 말했다고 내게 얘기하더라. 내가 ‘그러면 (차관이 되면) 언제 돈 벌어 내 빚을 갚나’고 물으니, 이정근은 ‘오빠(박씨)가 오빠 회사 고문 자리를 내게 주면 안 되나’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 보니 CJ 고문 자리도 받고, 나한테도 고문 자리를 받아 돈을 모으려 한 듯하다.”
노 전 실장이 지난해 1월 이 전 부총장을 통해 당신과 통화하면서 “내가 이정근과 각별하게 지내는데, 회장님(박씨)이 많이 도와 달라”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이정근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받았더니 ‘오빠, 노영민 실장님 바꿔드릴게요’하며 노 전 실장을 연결하더라. 그래서 노 실장과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그 뒤 이정근이 전화를 넘겨받으면서 웃는 목소리로 ‘오빠, 놀랐지?’라고 하더라. 그게 전부다. 이게 무슨 문제냐? 누가 바꿔주면 인사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 뒤 어떻게 됐나.
“난 그래서 이정근이 CJ 계열사에 취직하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5월 말 민주당 모 시의원이 내게 ‘이정근이 CJ 계열사 고문으로 있었다’고 하더라. ‘안 갔다고 하던데’라고 되물으니 ‘이정근이 당신을 속인 거다. 봉급 통장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CJ 쪽 소스에 물어보니 ‘이정근이 CJ 계열사 고문으로 근무한 게 맞다. 문재인 청와대가 거기 앉히라고 CJ에 부탁해왔다고 CJ 인사 라인 간부가 전언했다’고 답해주더라. 내가 검찰에 이 얘기를 했는데, 약 한 달 전 검찰이 이 제보를 바탕으로 수사를 개시하면서 나를 불러 진술 조서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노 전 실장이 CJ 대한통운에 (압력을 행사해) 자리 준 사람이 이정근 말고도 더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 전 부총장은 당신에게 노 전 실장 외에도 민주당 인사들을 여럿 거명했다는데 누구인가.
“이렇게만 얘기하겠다. 나는 이정근에게 A란 사람 이름을 듣고 돈을 줬는데, 내가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보니까, 그 돈이 다른 사람들에 갔더라. 그 다른 사람들이 다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검찰은 이정근 수사 과정에서 나온 추가 범죄 연루 인사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내게 ‘아는 게 있나’고 물어보더라. 난 ‘그 사람들 얘기는 못 들어 봤다’고 했다.”
검찰이 언급한 그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 사람들인가.
“그렇다. 100%다.”
이 전 부총장 구속 전 그를 만났나.
“6·1 지방선거 직전, 이정근이 ‘광화문 피어선 빌딩에서 만나자’고 연락해왔다. 당시 나는 채무 불이행 혐의로 이정근을 고소한 상태였다. 약속 장소로 가보니, 조영달 서울시 교육감 후보 선거사무소더라. 이정근은 정권이 바뀌니까 즉각 보수 진영에 선을 댄 거다. (실제 조 후보는 5월 19일 피어선 빌딩에서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했다.) 이정근은 조 후보 측근이란 여성과 함께 나를 맞으면서 ‘나는 이제 힘 있는 쪽(여권)에 붙을 테니 봐달라. 1억원 주겠으니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하더라. 난 ‘돈 뜯길망정 치사한 짓 안 한다’고 거절했다. 동행한 비서도 들은 사실이라 자신 있게 얘기한다.”

“노영민, ‘청탁한적 전혀 없어’ 주변에 해명”

노 전 실장에게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했으나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노 전 실장을 취재해온 다른 기자도 “약 두 달 전부터 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노 전 실장은 주변에 “(이 전 위원장의 취업과 관련해) CJ나 국토부에 전화한 적이 전혀 없고, 압력을 넣은 일도 전혀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