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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서재, 도서관, 동네책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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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서재는 누구의 것이든 흥미롭다. 그중 작가나 열성 독자의 서재를 구경하는 게 가장 재밌는데, 이는 그가 살아온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가로의 공간은 사실 수직의 깊이를 담보하고 있다. 말의 한계 탓에 평소엔 잡담이나 나누다가 서재 방문 뒤 그에 대한 인상을 싹 바꾼다. 3년 전 심리학자 김정운의 여수 서재를 갔을 때, 난 모임에 함께한 이들이 낯설어 책장 사이를 다니며 이 책 저 책 들춰봤다. 수만 권의 책에는 의외로 읽은 흔적이 사방에 있어, 내가 알던 농담 잘하는 그의 모습은 흐릿해지고 정신 속으로 하강하는 자아가 그려졌다.

휑한 서재는 양가감정을 불러온다. 지난해 이사를 위해 몇몇 집을 둘러보면서 마주친 건 사막 같은 서재들이었다. 부엌엔 음식 냄새가 세월의 때처럼 축적돼 있고 방들은 옷으로 꽉 차도 책꽂이는 헐렁했다. 그럼에도 거기 꽂힌 책 몇 권이 보석 같고, 그로부터 문학 취향이나 사회적 의식이 엿보이면 그를 알고 싶어졌다. 반면 서재에서 개인의 역사보다 한 시절의 서점 가판대가 떠올랐을 때는 호기심이 잦아들었다.

작가·독자의 역사 드러내는 서재
밑줄긋기, 메모 못하는 도서관책
궁극의 서재는 텅 빈 공간 아닐까

교수들의 서재는 의외로 눈요깃거리가 아니다. 단조로워서. 전공은 학자가 평생을 헌신하도록 만들기에 가지를 내기보다는 체목(體木)에 단단히 들러붙길 권한다. 어떤 교수들은 평생 읽을 책 목록을 예비해둬 다른 책엔 한눈팔지 않는데, 이런 단조로운 검은 공간이 가끔 별을 빚어낸다. 그 반대편에 기자나 출판평론가의 산만한 서재가 있다. 증정받은 책이 많은 그곳에선 주인의 취향을 간취하기 어렵고, 신간이 주를 이뤄 겉절이를 대하는 기분이다. 이들에게는 애석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어쩌면 그들은 누구보다 취향이 강한 데다 오래된 책을 읽고 싶을 텐데, 쏟아지는 비등한 책들을 받아내며 통장 잔고를 채워나가기 때문이다.

서재 욕심을 부리기보다 도서관을 애용하는 사람도 많다. 난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을 편집하면서 도서관 이용자들의 머릿속과 사생활이 궁금해 편집자를 그만두고 사서가 될까 고민했었다. 그건 작가를 만나는 일에서 독자를 만나는 일로의 방향 전환이었기에 매력 있어 보였다. 다만 나 개인적으로 도서관 책을 못 보는 이유는 ‘책은 사서 봐야 한다’는 신념 때문뿐 아니라 밑줄 긋기와 메모를 못 하는 것 때문이다.

독서는 의외로 휘발성이 강한 행위다. 저자로부터 흘러나오는 이성과 감성의 양분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느꼈던 심정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읽는 것만큼 서평이 중요한 이유다. 일본 막부 말기의 요시다 쇼인은 이탁오의 『분서』를 읽으면서 미비(眉批)를 남겼다. 미비란 본문에 대해 자신이 파악한 주요 내용이나 의견을 책 여백에 짧게 적는 것이다. 미조구치 유조에 따르면, 쇼인의 미비는 “이탁오의 ‘동심설’ 가운데 ‘진실(眞)’과 ‘거짓(仮)’이라는 두 글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형식의 메모는 독서인으로 하여금 주석을 달도록 종용하기도 하는데, 가령 사뮈엘 베케트라면 데카르트나 제임스 조이스의 주석 자료집을 펴내는 것을 꿈꿨을 수도 있겠다.

내 경우 최근 읽은 책 중 블랑쇼의 『우정』에 가장 많은 메모를 했다. “픽션은 도리어 실상을 열렬히 받아들이고 비실상에도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문장에 “사람들은 현실이 더 소설 같아서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소설의 의미는 허구나 환상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는 메모를 했다. 주변에 소설을 더는 안 본다는 말을 선언처럼 하는 이들이 있기에 그들을 향한 반론을 펼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동네책방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방 주인의 취향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취향은 중요하다. 너와 내가 어울릴 만한지 그 관점과 수준을 측정하는 잣대여서 역사 이래 취향의 공동체는 끊임없이 만들어져왔다. 동네책방에서 독자는 주인의 취향 아래 큰 노력 없이 좋은 것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되며, 점점 고유한 독자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다만 두드러진 취향은 가끔 그 취향이 배제한 것들을 상기시켜, 배제가 만들어낸 결핍을 느끼게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궁극의 서재는 텅 빈 공간일 듯싶다. 이를테면 베케트, 시인 이성복, 철학자 김영민의 서재엔 책이 몇 권 안 꽂힌 채 여백의 미가 흘렀다. 하지만 이 공백은 언어와 의미로 꽉 차 있었다. 이것은 한창때 수많은 책을 정확히, 잘근잘근 씹어 소화한 뒤 이를 수 있는 경지다. 읽고 난 뒤 그들은 하나둘 책을 ‘제거’해 여백과 침묵으로써 충만함이 감돌게 했던 것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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