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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지원금’이 쏘아올린 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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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백일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백일현 산업부 차장

백일현 산업부 차장

재계 30위권 대기업 과장 A(36)씨. 미혼인 그는 최근 한 기사에 눈이 갔다. LG유플러스가 내년부터 38세 이상 직원이 비혼을 선언하면 결혼 직원과 똑같이 지원금과 유급휴가 5일을 준다는 내용이다. A는 상사에게 이 ‘비혼 지원금’ 이야기를 꺼냈다가 머쓱해졌다. “상사 반응이 안 좋았어요.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인데 이런 제도는 결국 비혼을 조장하는 거 아니냐고요.”

A씨 상사와 비슷한 생각인 이들이 꽤 있다. 기자가 몇몇 대기업에 유사한 제도 시행을 검토하는지 묻자 반응이 비슷했다. 그럼에도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 직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곳이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40세 이상 미혼 직원이 신청하면 경조금과 휴가, 반려식물을 주는 ‘미혼자 경조’를 지난 9월 시작했다. 이후 신청자가 월평균 10건씩 나왔다. 신한은행은 2020년부터 미혼 직원에게 연 1회 10만원씩 ‘욜로 지원금’을 준다. 기혼 직원 결혼기념일 축하금과 형평 차원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중앙포토]

기업들의 MZ세대 눈치 보기가 깊어지고 있다. ‘3요’가 MZ문화라 젊은 직원에게 업무 목적과 의미를 열심히 설명한다는 임원이 많아졌다. ‘3요’는 상사의 업무지시에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 젊은 직원들 반응을 일컫는다. 한 그룹 총수는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오은영 박사에게 “MZ세대와 세대 간극이 있다”며 조언을 구했다. 이뿐인가. 대규모 파업도 MZ세대 노조원 공감을 얻지 못하면 이어가지 못하는 시대다.

정작 MZ 속내는 어떨까. 조직에 만족하는 MZ는 많지 않은 듯하다.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20~30대 직장인이 70%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소위 ‘조용한 퇴사’를 선택한 이들이다. 실제로 퇴사하는 건 아니고 정해진 업무시간에 주어진 일만 한다. 한마디로 ‘영혼 없이’ 직장생활을 하는 거다.

다시 A과장 얘기로 돌아가 보자. 사실 비혼 지원금을 도입하느냐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기혼자에 비해 비혼자들이 상대적으로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는, 조직의 섬세한 접근법이다. 다양한 구성원을 존중하려는 노력은 물론 다른 방향으로도 가능하다. 그런 노력을 아끼지 않는 조직이라면, 2030 조용한 퇴사자들의 마음도 조금은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복지는 기본에,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고 개인이 성장할 기회까지 주는 곳이라면 말이다.

곧 새해다. 가뜩이나 내년 경제 전망이 암울한데, 조용한 퇴사자들이 가득한 조직이라면 좋은 성과를 낼 리 만무하다. 새해엔 기업들이 보다 섬세하게 구성원을 어루만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