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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노동시장 유연화가 맞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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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다양한 기간의 ‘주 52시간’ 총량 적용 권고안 나와

시장 유연성 높이되 근로자 건강권, 복지 보장돼야

정부가 발족한 전문가 논의 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미래연)가 노동시장 개혁과제 권고문을 내놨다. 근로시간과 임금체계에 초점을 맞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주 52시간제’의 유연 적용이다. 현재 1주 단위로 관리되는 연장근로 시간을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로 다양하게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주에 52시간을 넘기더라도 기간 전체의 평균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 이하면 된다. 쉽게 말해 아이스크림 공장 근로자가 여름철엔 많이 일하고, 겨울철엔 적게 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미래연은 일하는 날과 출퇴근 시간 등을 근로자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전 업종에서 3개월 이내로 확대하도록 했다. 현재는 연구개발(R&D) 업무 외에는 1개월로 제한돼 있다. 미래연은 나이가 들수록 월급이 올라가는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에 연계해 개편하고,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미래연의 이번 권고는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안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도 “(미래연) 권고를 토대로 조속히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우리 사회의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고안이 노동시장 유연화에 중심을 두고 개혁의 방향을 잡은 것은 옳다. 경직된 노동시장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저해하고 일자리를 위축시키는 주범으로 거론돼 왔다. 대표적 사례가 주 52시간제다. 제도의 본래 취지는 근로자들을 야근, 초과 근무 등 과중한 근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주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흘러갔다. 많은 근로자가 주 52시간제 시행 뒤 초과 근무나 야근을 하지 못해 졸지에 임금이 줄어들었고, 기업인들은 일감이 있어도 일을 시킬 수 없어 애태워야 했다. 많은 이가 퇴근 후 파트타임 일거리를 찾아 ‘투 잡’에 나서야 했고, 시중엔 주 52시간제 때문에 과로사하겠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노동계는 권고안에 대해 “고용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사용자의 노동시간 활용 재량권을 넓혀 집중적 장시간 노동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했고, 민주노총은 “저임과 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노동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관건은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되, 근로자의 건강권과 복지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다. 미래연이 관련 법제 개선에 근로자의 의견 반영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노동시장 유연화 제도와 노동 약자들에 대한 보호 장치가 조화롭게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