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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합창’ 지휘 김선욱 “오케스트라는 피아노의 확장, 후회 없이 준비해”

중앙일보

입력

낙상사고를 당한 오스모 벤스케를 대신해 14~16일 열리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베토벤 ‘합창’ 정기공연 지휘를 맡게 된 김선욱.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낙상사고를 당한 오스모 벤스케를 대신해 14~16일 열리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베토벤 ‘합창’ 정기공연 지휘를 맡게 된 김선욱.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가혹한 관습이 갈라놓은 것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이 결합시키고 아늑한 당신의 날개가 있는 곳에서 모든 인간은 한 형제가 되리라.’

오스모 벤스케 골절상으로 긴급 투입 #작년 지휘 데뷔, 서울시향과 22년 인연 #“지휘·피아노, 둘 다 하려는 의지 강해”

베토벤 교향곡 9번에 쓰인 실러의 ‘환희의 송가’ 중 마지막 부분이다. 교향곡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이 곡은 고난, 슬픔과 절망을 이기고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기에 연말 세계 각국 오케스트라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1948년 우리나라에서 베토벤 ‘합창’을 초연한 오케스트라인 서울시립교향악단도 14일 예술의전당, 15·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사흘 연속 이 곡을 연주한다. 서울시향의 연주에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박승주, 베이스 박종민, 안양시립합창단과 모테트합창단,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이 함께한다. 이번 공연을 지휘하는 김선욱이 13일 오후 리허설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났다.

원래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가 지휘할 예정이었지만 6일 오후 낙상으로 골절상을 입어 한국에 올 수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시향 측은 긴급히 벤스케를 대신할 지휘자를 찾았지만 비자 문제 등으로 난관에 부닥쳤다.
마침 6일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 창립 40주년 기념공연을 지휘하고 7일 공항으로 향하던 김선욱에게 SOS를 쳤다. 차 안에서 전화를 받은 김선욱은 “공항 갈 때까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그 30여분 동안 만 34년 일생에서 가장 고심을 많이 했다. 호텔로 돌아오니 시향 측에서 구입해 퀵서비스로 보낸 악보가 도착해 있었고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공연에만 몰입하는 ‘자가격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김선욱이 베토벤 ‘합창’ 실제 연주를 처음 들은 건 1999년 12월 31일, 정명훈 지휘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였다. 지휘자를 꿈꾸던 초등학교 5학년 꼬마는 맨 앞줄에서 보며 '이 곡을 지휘하는 순간이 올까' 생각했다고 한다.

“원래부터 잘 알고 있었고 수십 수백 번을 들었던 곡이죠. 피아노로 베토벤을 많이 쳐 왔기에 베토벤에 대한 생각을 교향곡으로 옮기는 게 어렵거나 부담가지 않았어요.”

작년 1월 KBS교향악단 연주회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김선욱은 올해 8월 광복절 음악회에서 서울시향을 처음 지휘했다. 김선욱과 서울시향의 인연은 22년 전 시작됐다. 어린 연주자들을 발굴해 무대에 세우는 ‘서울소년소녀협주회’에서 정치용 지휘로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을 연주했다.
2007년 지휘자 정명훈과 브람스 협주곡 1번을 연주해 중국과 국내 투어를 돌았고 그 뒤로도 올해 유럽순회 연주를 포함해 수많은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김선욱은 “이런 시간이 주는 저와 단원들의 신뢰가 있었기에 지휘를 요청해주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틀 동안의 리허설을 마친 소감을 “현재까지 순항중”이라고 밝혔다.

“누구에게나 첫 지휘는 있죠. 도와달라고,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서울시향 단원들과 합창단, 솔로이스트들에게 저는 지금 뭐든지 습득하고 체득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죠. 짧은 시간에 온 영혼과 정신과 생각을 투입한 게 얼마 만인가 싶어요. 어제 오늘 리허설을 통해 정리가 됐어요. 단원 분들도 신선하다고 얘기해줍니다. 오늘 리허설처럼만 하면 좋은 연주가 될 거라고 확신해요.”

‘초보 지휘자’가 베토벤의 대곡을 잘 지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김선욱은 “저는 항상 제가 음악가라고 생각해 왔다.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에 미쳐있는 소년이었다. 작년부터 해서 신인 지휘자라고 생각하실 테지만 어릴 적부터 지휘자가 되고 싶었고 피아노 연주가 많아지다 보니 그 기회가 늦어졌을 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이해하는 데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가 많은 도움이 됐다는 김선욱은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와 16개 현악 4중주, 9개의 교향곡이 연결 고리가 있다고 말했다.

“베토벤은 악기를 가리지 않고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작곡했어요. 인생의 음악적인 열정과 능력과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작품이죠. 교향곡 9번 3악장에서 보면 제1바이올린은 오른손 피아노, 금관과 목관은 왼손 피아노로 치환이 가능해요.”

김선욱은 리허설 때 단원들에게 다이내믹(셈여림)과 관련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주문했다고 했다.

“당시 베토벤처럼 귀가 안 들릴 때를 상상해봐야죠. 우리가 듣고 있는 데시벨의 한계를 넘어서 표현해야 한다고, 항상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김선욱은 해석에서 ‘호흡’을 중요시한다고 했다. 무대에 조명이 켜지는 순간부터 음악이 시작되고 음향의 잔향이 남을 때까지 어떻게 한 호흡으로 들리게 하느냐가 중요하단 얘기다. 베토벤 음악이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들과 구별되는 성격에 대해서도 확실한 생각을 드러냈다.

“바흐는 기도, 모차르트는 노래, 하이든은 말, 베토벤은 생각이라고 배웠어요. 생각하지 않으면 베토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본능적으로 즐기려 하면 위험하죠. 철저한 계획과 목적과 의지가 포함돼야 합니다. 단순히 흥에 맡겨서 즐기는 음악이 아니죠.”

지휘와 피아노를 병행하는 김선욱은 “매 순간 한계에 부닥치며 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오랫동안 두 분야를 함께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24시간이 너무 짧아요. 그 어느 때보다 지휘와 피아노 두 개를 다 하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피아노에서 지휘로 바꾸는 게 피아노를 그만두는 것처럼 이분법으로 물어보시는데 어릴 적부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현재 진행형이고 계속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함께 연주해온 지휘자 정명훈은 김선욱에게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 “시간이 걸린다”는 딱 한 가지 조언이었다고 한다. 정명훈이 LA필 부지휘자로 있을 때 음악감독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해줬던 조언이기도 하다.

“결국 음악가는 본인이 어떤 음악을 가지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어릴 적부터 독일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들을 이유 없이 좋아했고 많이 연주했죠. 평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번 지휘도 갑자기 하게 됐지만 깨 있을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후회 없이 준비했습니다.”

김선욱은 사흘 간 베토벤 ‘합창’을 보러 오는 청중들에게 “제가 생각하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시면서 한해를 잘 마무리하셨으면 한다”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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