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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8000만원, 신용 1등급인데…고금리 리볼빙 쓰게 한 DS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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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 사는 박모(43)씨는 지난 12일 은행을 찾았다가 당황했다. 10년간 사용하던 마이너스 통장 한도가 30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확 줄어서다. 대기업에 다니는 박씨는 연봉이 8000만원으로 신용등급도 1등급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그의 대출한도를 줄였다. DSR은 개인의 연간 부채 원리금을 연간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40%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박씨는 3년 전 아파트를 사면서 받은 주택담보대출(3억4000만원)과 인터넷은행 마이너스 통장(4000만원)이 있다. 지난해만 해도 박씨가 매달 부담하는 이자는 110만원이었지만, 현재는 200만원이 넘는다. 그간 시중금리가 크게 뛴 여파다. 그는 늘어난 이자를 월급만으로 감당할 수 없어 은행 마이너스 통장(연 7%)으로 대출이자를 충당했다.

결국 박씨는 이번 달 카드값을 내려던 자금으로 대출 이자를 갚고 카드 결제는 리볼빙(연 17%)으로 대신할 생각이다. 리볼빙은 카드대금 중 일정 금액만 결제하면 나머지 금액은 대출 형태로 전환돼 이월할 수 있는 결제 방식이다. 박씨는 “당장 대출이자가 연체될 상황이라 이자가 비싸도 리볼빙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연봉이 8000만원인 대기업 직원의 신용점수. 신용점수(1000점 만점)가 900점이 넘으면 1등급이다. 독자 제공

연봉이 8000만원인 대기업 직원의 신용점수. 신용점수(1000점 만점)가 900점이 넘으면 1등급이다. 독자 제공

신용 1등급인 대기업 직원(연봉 8000만원)이 카드 리볼빙을 이용하면 17% 수수료를 내야한다. 독자제공

신용 1등급인 대기업 직원(연봉 8000만원)이 카드 리볼빙을 이용하면 17% 수수료를 내야한다. 독자제공

리볼빙 잔액이 사상 처음으로 7조원을 넘어섰다. 13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리볼빙 이월 잔액(전업 카드사 기준)은 올해 10월 기준 7조1634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1조811억원(17.7%)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리볼빙 이용자(7월 기준)도 올해 들어서만 7만4000명 늘어난 273만5000명이다. 법정 최고금리(20%)에 육박하는 고금리(연 14.35~18.46%) 대출인데도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몰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펼친 DSR 규제로 대출 한도가 줄어든 금융 소비자의 리볼빙 이용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설명한 박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는 올해 들어 단계별로 DSR 규제를 강화했다. 1월부터 총대출액이 2억원 이상일 경우, 7월부터는 1억원 이상일 경우 DSR 비율을 40%까지 적용한다. 예컨대 연봉이 5000만원인 직장인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 연간 대출 원리금이 2000만원을 넘을 수 없다. 이런 DSR은 모든 대출 상품에 적용된다.

하지만 리볼빙은 규제망을 피했다. 관련법상 리볼빙은 금융 상품이 아닌 카드 서비스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돈 빌릴 곳이 마땅찮은 대출 취약계층의 이용도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도권 신용대출이 막히자 리볼빙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리볼빙은 금리는 높지만, 심사절차가 간단하고 돈을 빌리기도 쉬워 중·저신용자가 많이 이용한다. 실제 리볼빙 잔액은 크게 늘었지만, 은행권의 가계 신용대출(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기타대출)은 올해 들어 9월까지 15조2000억원 감소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영향도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체 카드 승인 금액(285조5000억원) 및 승인 건수(67억7000건)는 1년 전보다 각각 15.1%, 11.6% 늘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대개 카드는 입고 먹는 생활자금으로 쓰게 마련인데 물가가 오르면 같은 수준의 소비를 해도 카드 결제액이 더 늘게 되고 이를 갚지 못해 리볼빙을 이용하는 비중도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리볼빙은 당장 일시 상환 부담을 줄여 연체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리볼빙은 새로운 대출을 통해 기존의 대출을 상환하는 대출 ‘돌려막기’다. 결국 높은 금리로 이자 부담이 늘고, 가계 부채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시장에서 리볼빙 잔액 증가를 가계대출 부실의 징후로 보는 이유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리볼빙 외에도 대부업 등 제3금융권의 대출이 늘고 있는데, 금리 인상기를 거치면서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한계차주가 급증했다는 의미"라며 “취약차주의 부실화에 따른 위험이 시스템리스크로 파급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위한 선별적 금융지원이나 규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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