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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회담선 "건설적 역할" 약속해놓곤 밖에선 '美 비난전'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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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한ㆍ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국의 박진 장관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과 한ㆍ중 관계의 발전을 얘기했지만,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한ㆍ중 양자간의 직접 현안이 아닌 제3국인 미국을 비난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화상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진 외교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화상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뉴스1

외교부 당국자는 13일 전날 75분간 화상으로 진행된 외교장관 회담과 관련 “공급망 관련 소통 확대와 한ㆍ중 FTA 후속협상의 재개, 항공편 증편 및 문화콘텐트 교류 활성화에 대한 협의가 이뤄졌다”며 “결론적으로 이번 회담으로 지난달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이뤄진 한ㆍ중 정상회담의 후속 협의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전날도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서면 보도자료를 공개했다. 그런데 같은 회담에 대한 중국 측의 자료는 한ㆍ중 관계가 아닌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대부분이 채워졌다.

중국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왕이 부장은 회담에서 미국의 ‘반도체칩 및 과학법’ 및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언급하며 “미국은 국제규칙의 건설자가 아닌 파괴자임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국가는 세계화에 역행하는 낡은 사고와 일방적 패권 형태에 맞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수호ㆍ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교당국간 양자회담에서 제3국을 언급하고 이를 공개하는 행위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국가뿐 아니라 회담 상대국에게도 외교적 결례다. 그럼에도 중국이 한국과의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을 비난한 것은 한국 정부의 한ㆍ미동맹 강화 기조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적 시도인 동시에 중국 국내적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미국과의 직접 대결의 한계에 직면한 시진핑 3기 체제는 한국 등 주변국 외교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번 반응은 한국의 미국 쏠림을 경계하려는 의도가 강하다”며 “이와 동시에 왕 부장이 내년 3월 중국의 외교정책을 이끌 정치국원에 오르기에 앞서 미·중 경쟁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시 주석에게 자신의 충성심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목적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고위 외교소식통도 중앙일보에 “왕 부장이 전날 회담 내내 한국과의 우호적 분위기를 상당히 신경 쓰면서도 미국이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등의 언급을 과제같이 여기고 말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며 “박진 장관은 왕 부장이 미ㆍ중 경쟁이나 사드를 언급하려 할 때마다 ‘한ㆍ중 우리 얘기를 하자’는 취지로 대화가 미국에 대한 비난 등으로 튀는 것을 여러 차례 직접 경계하며 회담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실제 중국은 전날 공개한 보도자료에서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구체적 표현을 피한 채 “양측은 한반도 정세와 공동 관심의 국제 및 지역 문제에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발표했지만, 실제 회담에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는 말과 함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한 논의까지 이뤄졌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구체적인 사안까지는 밝히기는 어렵지만 한ㆍ중 장관이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대해 소통을 했다”며 “각급에서 중국 측과 긴밀한 소통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급망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국 측 관련 부처에서 구체적 검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화상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진 외교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화상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뉴스1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정상회담을 통해 직접 제안한 시 주석의 방한과 관련해선 아직 구체적인 논의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한ㆍ미ㆍ일 밀착을 문제 삼으며 역할론을 거부하고 있지만, 오히려 한국은 중국이 역할을 제대로 못 할 경우 한ㆍ미ㆍ일 공조가 보다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중국이 명확히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며 “특히 한ㆍ중 모두에게 양국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이 의도하는 미ㆍ중 경쟁의 프레임이 아닌 한ㆍ중 양국을 중심에 둔 외교 기준을 분명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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