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레일이 예상을 깨고 신규 고속열차 도입절차를 내년으로 미뤘다., 사진은 코레일 서울본부. 연합뉴스
2025년 개통예정인 인천·수원발 KTX에 투입할 차량이 부족해 개통 차질까지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코레일이 신규 고속열차 입찰공고를 내년으로 미룬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되면 새 고속열차 도입 시기가 더 늦어져 개통과 운영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진다. 역시 열차 부족 탓에 좌석난이 심각한 수서고속철도(SR)는 계획대로 연내에 신규 고속열차 입찰공고를 내기로 했다.
익명을 요구한 코레일 관계자는 13일 “고속열차 입찰공고가 당초 이달 안에 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경영진이 의사결정을 미루면서 절차가 내년으로 늦춰졌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경영진이 중요한 현안에 대한 결정을 제때 하지 않는 탓에 내년 입찰공고 예정일도 미정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코레일 최고경영자는 나희승 사장이다.
이에 따라 신규 고속열차 도입이 상당기간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현재 5편성이 필요하지만 3편성밖에 확보가 안 된 인천발 KTX는 제때 개통이 쉽지 않은 건 물론 열차 운행 간격이 더 벌어져 승객 불편도 우려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수원발 KTX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또 열차 부족 탓에 수요는 많지만 운행 편수를 늘리지 못하고 있는 노선들의 증편 계획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앞서 코레일은 지난 9월에 신규 고속열차로 동력분산식인 EMU-320 17편성(136량)에 대한 입찰공고를 낼 계획이었다. 일반국제경쟁입찰 방식으로 구매 예정가는 7000억원대다.
동력분산식은 맨 앞의 동력차가 뒤에 연결된 객차를 끌고 달리는 동력집중식(KTX, KTX-산천)과 달리 별도의 동력차 없이 객차 밑에 모터를 분산 배치해 주행하며 가·감속이 뛰어나다.
이 입찰에는 국내 유일의 고속열차 제작사인 현대로템에 맞서 중소 철도제작업체인 우진산전이 스페인의 고속열차 제작사 탈고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현대로템이 독점해온 국내 고속철 시장에서 첫 경쟁이 이뤄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나희승 코레일 사장이 국회에서 답변 중이다. 뉴스1
그러자 현대로템과 관련 부품업체들이 “무분별하게 외국업체의 참여를 허용하면 국내 철도 시장이 무너진다”며 코레일에 입찰자격 제한을 요구했고, 부품업체 관계자들은 국회 앞에서 시위까지 벌였다.
논란이 불거지자 코레일은 감사원에 입찰방식에 대한 사전컨설팅을 의뢰했고, 감사원은 지난달 말 “코레일이 추진하는 경쟁입찰방식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회신했다. 사실상 코레일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후 철도업계에선 부담을 털어낸 코레일이 연내에 고속열차 입찰공고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입찰 절차가 예정보다 늦어졌기 때문에 더 서두를 거로 본 것이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입찰이 내년으로 연기된 데다 추후 일정도 미정으로 확인되면서 적지 않은 우려가 나온다.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인 EMU-320. 연합뉴스
철도업계 관계자는 “현대로템과 우진산전이 철도차량 입찰담합 때문에 조달청으로부터 6개월간 영업제한조치를 받아 현재 법적 대응 중”이라며 “이런 형편에서 코레일이 절차를 서두르지 않으면 자칫 신규 열차 도입이 상당기간 늦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수서고속열차를 운영하는 SR은 예정대로 이달 안에 5400억원대의 신규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14편성(112량)에 대한 입찰공고를 내기로 했다.
SR은 열차가 부족해 승객들이 좌석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R 고위 관계자는 “심각한 좌석난을 고려하면 하루라도 빨리 새 고속철 도입 절차를 시작해야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