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경호 논설위원
요즘 국회를 보며 고구마 먹고 체한 것처럼 답답해하는 이가 많다.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은 지점이 법인세다. 정부·여당은 당초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려 했지만 ‘부자 감세’라는 야당 반대가 거셌다. 법인세를 내리자는 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은 우리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려야 투자가 늘고, 기업 부담이 줄어들며,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경쟁력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는 법인세 인하 혜택을 대부분 대기업이 누리며, 과거 사례로 봤을 때 법인세 인하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학계의 견해는 엇갈린다. 법인세율을 1%포인트 내리면 투자가 0.46%, 고용이 0.13%,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21% 오른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가 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율을 내렸을 때 기업이 고용·투자나 임금·배당을 늘리지 않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오죽했으면 그 후 박근혜 정부가 늘어난 기업 소득을 사회로 돌리기 위해 2014년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했겠나.
세율 내리고 시행 늦추는 중재안
거시정책 간 부조화 피할 수 있어
야당이 중장기 증세 논의 제안을
원칙적으로 법인세 인하에 찬성한다. 기업 과세는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법인세 인하는 중장기적으로 기업 활력을 높이고 경제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게 경제학의 기본 가르침이다. 하지만 법인세 인하를 꼭 ‘지금’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힘들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숨 가쁘게 긴축을 하는 와중에 재정을 푸는 감세를 해야 하는가. 2인3각 경기처럼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판국에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엇박자를 내도 괜찮은가. 정부가 제출한 세법 개정안의 감세 효과는 법인세 6조8000억원을 포함해 13조1000억원 규모다.
최근 김진표 국회의장의 법인세 중재안은 꽉 막힌 여야 협상을 뚫을 수 있는 ‘사이다’ 같았다. 중재안은 정부안처럼 감세는 하되 실행은 2년 미루자는 내용이다. 감세 폭은 줄이고 유예기간을 더 늘리는 추가 중재안도 나왔다.
중재안에 여당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야당은 여전히 반대한다. 야당은 민주당 정부에서 중용했던 세금 전문가 김진표의 제안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 의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을,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장관(부총리)을 지냈다. 김 의장 안은 이런 장점이 있다.
첫째, 통화는 죄고 재정은 푸는 거시경제 정책의 부조화를 피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재정정책이 확장적이라고 본다. 내년 이후에도 고물가 추이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이때는 피해야 한다. 법인세 인하를 ‘언제’ 하느냐도 중요하다.
둘째, 법인세 인하를 둘러싼 정책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향후 감세 일정을 예고하면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고가 될 것이다. 당장은 아니어도 한국 정부가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는 신호를 대내외에 줄 수 있다.
부자 감세니, 초부자 감세니 하는 건 정치적 프레임이다. 기업의 직원과 주주에게 결국 혜택이 돌아간다는 정부의 설명을 반복하진 않겠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종부세를 도입할 때 그랬듯이 소수의 납세자와 나머지 국민을 갈라치기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김진표의 중재안을 받되, 중장기적인 증세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정식 논의를 시작하자고 판을 키우면 어떤가. 표 계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정부·여당을 견인하는 효과가 있다. 집권 경험이 있고 장차 집권을 노리는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그래야 마땅하다.
감세 못지않게 중요한 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투자할 나라를 결정할 때 세금뿐 아니라 규제 환경, 인적자원, 기업 생태계 등을 고루 따진다. 사회 갈등 요인을 정치적으로 잘 풀어내는 능력도 눈여겨볼 것이다. 정치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는 우리 국회와 정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