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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쑥쑥 큰 한국공예, 못 따라간 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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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지난 9일 서울 코엑스 C홀. 제17회 공예트렌드페어(이하 공예페어) 전시장에서 한뼘 남짓한 공간에 작품을 내건 한 작가를 만났습니다. 그가 전시한 것은 작은 베틀 하나, 그리고 직접 만든 가방과 러그 몇 개. 1990년생, MZ세대인 작가(조예린)가 베틀 작업을 한다는 게 얼마나 신기했던지요. 작가는 12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공예페어에 처음 참여했는데 작품을 모두 팔았다. 다양한 반응을 보며 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하 공진원)이 주관하는 공예페어가 8~11일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올해 총관람객은 7만7000여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김혜정, 매병, 심피( 心皮) 시리즈, 2020, 도자, 사진촬영 김화영, [사진 김혜정]

김혜정, 매병, 심피( 心皮) 시리즈, 2020, 도자, 사진촬영 김화영, [사진 김혜정]

하지만 ‘공예 열풍’ 가운데서 열린 이번 페어는 몇 가지 과제도 남겼습니다. 우선, 주제관 역할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올해 주제관 전시는 양태오(태오양스튜디오 대표) 총감독이 이끌었는데요(중앙일보 12월 5일자 B7면), 젊은 감독답게 조향까지 동원한 감각적인 연출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역성과 전통’ ‘손의 가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공간을 3개로 나눈 것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3개의 협소한 공간은 전통·현대 공예가 43인의 작품을 제대로 담아내기엔 갑갑했습니다. 전시품 하나하나가 모두 내로라하는 장인들의 작품인데, 오밀조밀한 배치는 개별 작품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이 제대로 빛을 내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둘째, ‘올해의 공예상’ 수상자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에도 세심한 고민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공진원은 지난 9월 ‘2022 올해의 공예상’ 창작 부문 수상자로 김혜정 도예가를 선정하며 페어에서 수상자 전시를 연다고 알렸는데요, 정작 페어에서 김 작가의 전시 부스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작품이 공진원(KCDF) 통합 사업관 안에 들어가 우수공예품 지정제도, 한지 분야 육성지원 프로젝트와 함께 ‘사업 홍보’의 목적으로 전시됐기 때문입니다. 공진원이 작가의 예술적 실험과 작품의 심미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선정한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으론 몹시 아쉬운 부분입니다. ‘올해의 공예상’ 선정이 스타 공예인을 탄생시키고 키우기 위한 발판이 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합니다.

공예든, 미술품이든 ‘무엇’을 보여주느냐 못잖게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보여주는 방식은 대상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대변합니다. 잘 소통하기 위해선 대상에 대한 공부와 이해가 우선입니다. 전통과 현대,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앞으로 한국 대표 문화 콘텐트로 발전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각 참여 부스의 퀄리티부터 주제관, ‘올해의 공예상’ 전시, 심지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조명까지 보다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공예페어는 앞으로도 계속 진화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