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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필리핀보다 작아질 2075년 한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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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경제 규모 축소돼

고용 연장, 이민, 갈등 해소 등 숙제 풀어야

한국의 경제 규모가 20년 후엔 나이지리아에 추월당하고, 50년 뒤엔 필리핀에도 따라잡힌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왔다. 미국의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최근 발표한 ‘2075년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의 분석 내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본 한국의 경제 규모는 2020년 현재 세계 10위로 이탈리아(8위), 캐나다(9위) 다음이다. 나이지리아는 26위, 필리핀은 31위다.

한국의 경제 규모 후퇴 원인은 최근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새로 태어날 아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니 고령화 속도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2050년대부터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이 저출산·고령화의 선배 국가 격인 일본보다도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020년대 평균 2%에서 2040년대 0.8%로 떨어진 뒤, 2060년대에는 -0.1%, 2070년대에는 -0.2%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가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은 34개국 가운데 마이너스 성장률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라면 한국의 2075년의 1인당 실질 GDP는 10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프랑스와 캐나다 수준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골드만삭스가 추정한 대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같은 골드만삭스의 전망도 지나치게 후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급속하게 하락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다음 세대가 누릴 세상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잠재성장률을 구성하는 요소는 노동과 자본투입·총요소생산성 세 가지다. 이 중 노동과 자본투입은 인구 감소 등의 이유로 2040년이면 0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계산된다. 문제는 한국의 총요소생산성마저도 최근 급속히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원활한 진입과 퇴출이 이뤄지지 않고, 갈등과 불신으로 사회의 거래비용도 높기 때문이라는 게 KDI의 진단이다.

마침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어제 현행 60세인 정년을 올려 경제활동인구를 지금보다 늘리는 방안 등 노동시장 개혁과제 권고문을 발표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여성의 근무여건 개선뿐 아니라 이민, 고용 연장 등 예민한 이슈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모두 세대 간, 사회 간 갈등 요소를 안고 있어 풀기 어려운 국가적 난제다. 하지만 문제가 뭔지 알고 있으니 해결책도 분명하다. 우리의 아들딸에게 물려줄 세상을 위해 기성 정치권과 정부·기업·개인이 모두 대응책 마련에 머리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