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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친환경 ‘그린워싱’ 주의보…공정위도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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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나는 종이 병이야’라고 적힌 제품의 포장지를 벗기자 플라스틱 용기가 나왔다. [‘플없잘’(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 페이스북 캡처]

‘나는 종이 병이야’라고 적힌 제품의 포장지를 벗기자 플라스틱 용기가 나왔다. [‘플없잘’(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 페이스북 캡처]

‘안녕, 나는 종이 병이야’(Hello, I am paper bottle).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가 제품 겉면에 이런 문구로 ‘친환경 제품’임을 강조했지만, 실제론 내용물이 플라스틱병에 담겨 판매된 게 알려지면서 지난해 논란이 일었다. 당초 친환경 제품을 선호한 소비자에게 큰 호응을 받았지만, 거짓이 드러나면서 불매운동이 일기도 했다.

스타벅스도 지난해 다회용컵에 음료를 제공하는 ‘리유저블 컵 데이’를 진행했는데 일부 소비자와 환경단체로부터 “새로운 플라스틱 쓰레기를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환경을 위한다는 취지였지만 플라스틱 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업계에선 이런 사례를 ‘그린워싱(Greenwashing·위장 환경주의)’으로 꼽는다. 홍보를 위해 친환경을 위장하는 마케팅 수법이다. 지난해 KB금융그룹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KB국민카드 고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31.6%가 제품 구매 시 기업의 친환경 활동 여부를 고려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친환경에 지갑을 열겠다는 소비자가 늘면서 그린워싱으로 인한 피해자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전 세계 경쟁 당국이 그린워싱 제재에 뛰어드는 배경이다. 12일 정부에 따르면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도 그린워싱에 대한 가이드라인 수립과 제재에 나설 계획을 세웠다.

지난달 열린 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그린워싱 관련 가이드라인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COP27 보고서는 탄소중립 관련해 정부·기업의 활동이 실제 친환경적인 것인지, 그린워싱인지를 가르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탄소 배출 관련 단기·중기·장기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화석연료 사용 중단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 탄소중립 진척도를 알 수 있도록 매년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을 통해 그린워싱 규정을 내놨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롯한 기타 환경문제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다. OECD뿐 아니라 그린워싱 제재는 곳곳에서 진행형이다. 이탈리아에선 ‘탄소배출을 줄인 극세사’라고 광고한 섬유회사에 대해 “해당 표현 사용을 중지하고 판결 내용을 공개하라”는 법원 결정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공정위가 그린워싱을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에 들어간 만큼 COP27, OECD의 가이드라인 같은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는 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 개정을 준비 중으로, 최근 한국소비자원에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진 심사지침에 그린워싱을 판단하는 규정이 모호했다.

특히 친환경 광고나 캠페인 대부분이 당장 달성할 수 있지 않다는 점에서 기존의 표시·광고 위반과 다른 기준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지난 3월 공정위는 환경단체가 신고한 “친환경 LNG 시대를 연다”는 SK E&S의 광고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향후 계획에 관한 것인 만큼 현시점에서 거짓이나 과장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의 이미지를 위한 캠페인성 광고나 향후 계획을 명확히 한다면 괜찮겠지만, 근거 없는 친환경 제품 홍보는 문제”라며 “미래 계획이 허위인지 아닌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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