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로 등·하교 위험” 학교 땅 줄여 통학로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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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곡중학교가 학교 부지를 활용해 조성한 통학로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사진은 통학로가 조성되기 전 모습. [사진 대구시교육청]

대구 이곡중학교가 학교 부지를 활용해 조성한 통학로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사진은 통학로가 조성되기 전 모습. [사진 대구시교육청]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발생한 음주 교통사고로 이 학교 3학년생 A군(9)이 숨졌다.

학교 후문으로 걸어 나오다 만취한 30대 남성이 모는 차에 치였다. A군이 사고를 당한 길은 폭이 4~5m로 좁고 경사가 가파른 데다 보도가 없는 ‘보차 혼용도로’였다. 학교 옆이어서 스쿨존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보도가 구분되지 않은 탓에 교통사고 위험이 컸다.

이런 가운데 학교 땅을 통학로로 만든 곳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8일 찾은 대구 달서구 이곡중학교는 최근 학교 동편 교문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통학로를 만들었다. 통학로와 도로 사이에는 형형색색으로 칠한 철제 난간이 있어 자동차가 통학로로 침범할 수 없게 했다. 이 통학로를 통해 이곡중 학생 294명이 등·하교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곡중 학생들은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등·하교해야만 했다. 교문을 나서면 곧장 인도가 없는 폭 8m 도로가 펼쳐져 있었다. 도로 양쪽에는 줄지어 주차된 차가 시야를 막았다. 자칫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기에 등·하교 시간마다 교사가 직접 교통지도를 했다.

대구 이곡중학교가 학교 부지를 활용해 조성한 통학로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사진 대구시교육청]

대구 이곡중학교가 학교 부지를 활용해 조성한 통학로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사진 대구시교육청]

2002년 신축 이전한 뒤 줄곧 대구시교육청 등에 통학로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예산문제 외에 차량통행 불편을 우려하는 인근 주민의 반대에도 부딪혔다. 지자체 협의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설득·협의를 거쳐 4억8000만원이 추가경정예산에 편성됐다. 이후 대구남부교육지원청은 지난 8월 통학로 설치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고 지난 5일 완공됐다.

학생과 교직원들은 통학로가 설치되자 만족해하고 있다. 김만철 이곡중 교감은 “등·하교 때마다 학생들이 차를 피해 통행하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고 전했다.

김기호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 안전”이라며 “새로 조성된 학생통학로를 통해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학교로 보낼 수 있고 주민도 도로 이용에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행정안전부도 2018년부터 통학로 설치 지원 사업을 해왔다. 도로 자체가 좁거나 인근에 건물이 있어 통학로를 설치할 수 없는 초등학교가 대상이다.

행안부가 2018년 당시 전국 초등학교 6000여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교 앞에 보도가 설치돼 있지 않은 학교는 1834곳이었다. 이 중 학교부지 일부를 안쪽으로 이동해도 교육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나타난 학교는 110여 곳으로 파악됐다.

행안부는 이들 학교를 대상으로 협의를 거쳐 학교 40곳에 재난안전특교세를 지원했다. 학교부지를 활용한 통학로 조성 사업은 2018년 6월 대전 서구 도마초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당시 통학로 준공식에 참석한 설동호 대전교육감은 “도마초처럼 교육청·지자체가 힘을 모아 통학로를 개선하는 협업 사례가 전국적으로 전파돼 안전한 통학로가 확보되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통학로를 만든다며 학교부지를 축소하는 것에 부정적인 학교도 많다. 행안부 관계자는 “학교부지 면적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통학로 설치가 더 중요한 것 같다”라며 “전국 여러 학교에 통학로가 확보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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