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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님달님’ 앞에서 속마음이 술술… 마음의 빗장 푸는 인문학

중앙일보

입력

이제는 인문정신 〈하> 자아찾기·치유 돕는 인문학

출판문화진흥원의 올해 '인문실험' 사업 중 소설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험을 진행한 '팀 양봉토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전사를 새롭게 써보기도 하고, 소설의 주제와 자신의 어린시절을 엮어 풀어내기도 했다. 이들이 진행한 프로그램은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문학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진 출판문화진흥원

출판문화진흥원의 올해 '인문실험' 사업 중 소설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험을 진행한 '팀 양봉토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전사를 새롭게 써보기도 하고, 소설의 주제와 자신의 어린시절을 엮어 풀어내기도 했다. 이들이 진행한 프로그램은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문학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진 출판문화진흥원

인문학의 여러 분야 중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건 문학이다. 문학이 인간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끼치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건 조금 더 적극적인 개입에 해당하는 ‘문학치료’다. 설화·민담 등 짧고 강렬한 이야기를 매개로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꺼낼 수 있게 하는 상담의 한 분야다.

건국대 문학예술치료학과 조은상 교수는 “삼국유사는 시문을 '감동천지귀신(하늘‧땅‧귀신을 감동하게 한다)'이라 쓰기도 했는데, 문학이 갖는 심리적 효과를 알고 쓴 고전들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문학치료 상담기법 중 하나가 짧은 설화를 '내 마음에 들게 바꿔쓰기'다.
'해님달님', '콩쥐팥쥐' 처럼 단순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자신이 재구성한 글을 보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조 교수는 "원래 문학을 읽으면서 감동 받고 삶이 변한다거나, 마음을 고쳐먹거나 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있는데 문학치료는 그걸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스위스·독일 등에서 '동화치료'가 예전부터 발달해왔다. 요즘은 문학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인문학 서적, 신문 기사도 활용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풀어내는 걸 돕는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소설 두면 별 얘기 다 할 수 있어… 상처는 '햄릿'이 대신 받으니까"

문학치료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수업의 형태를 띠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하고, 특히 도서관·주민센터 등에서 여러 사람을 모아 놓고 진행할 때는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작품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면 사실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는 “중간에 『햄릿』을 놓고 인물의 행동과 생각을 풀이해보면 별 얘기를 다 하게 된다”며 “타인이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상처는 햄릿이 받지 내가 받는 게 아니니까 소통이 편안해진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아동 위주로 발달했던 문학치료가 성인으로도 확대되고,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자서전 만들기’로도 변주되며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1994년생 손녀가 44년생 할머니와 전래동화를 놓고 얘기하면서 입장 차이를 좁히고 서로 이해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출판문화진흥원이 올해 진행한 '청년 인문실험' 프로젝트 중에서도 소설을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팀이 있었다. '양봉토끼'란 팀은 마거릿 앳우드의 『시녀 이야기』와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을 주제로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팀 리더 박현주(29)씨는 “처음엔 '왜 이런 걸 시키지?' 라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유년기와 어머니와의 관계, 상실감 등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저마다 꺼내 놓았다”며 “그냥 상담을 하면 대개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게 되는데, 소설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는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새 방향 설정 필요한 중장년층…'낀 세대' 인문학적 지원 필요

출판문화진흥원이 내년에 '중장년 청춘문화공간 조성'을 위해 올해 시범으로 진행된 강연 중 하나로 '사진으로 나를 표현하기'가 있었다. 수업을 진행한 스튜디오 175 이현석 대표는 "자신을 표현하는 법이 익숙치 않은 세대라 사진을 매개로 '나'를 파악하고 드러내는 방법을 돕는다"며 "부모님과의 관계, 어린 시절 기억 등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이 인상깊었다"고 전했다. 사진 출판문화진흥원

출판문화진흥원이 내년에 '중장년 청춘문화공간 조성'을 위해 올해 시범으로 진행된 강연 중 하나로 '사진으로 나를 표현하기'가 있었다. 수업을 진행한 스튜디오 175 이현석 대표는 "자신을 표현하는 법이 익숙치 않은 세대라 사진을 매개로 '나'를 파악하고 드러내는 방법을 돕는다"며 "부모님과의 관계, 어린 시절 기억 등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이 인상깊었다"고 전했다. 사진 출판문화진흥원

인문정신 함양은 단기간 교육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단련해야 하는 영역이다. 김헌 교수는 “어른이 돼서도 지자체·도서관 등의 기관들을 통해 끊임없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창의적 인문가치 확산’을 목표로 하는 출판문화진흥원은 해마다 생애주기ㆍ세대교류ㆍ로컬변화 등 다양한 주제로 인문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위기 청소년,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도 계획 중이다.

올해 '중장년 청춘문화공간 조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범 수업을 진행한 이현석 포토그래퍼는 "중장년층은 인생의 새로운 방향 설정을 해야 하는 나이인데, 자신을 표현하는 게 익숙치 않은 세대라 사진을 매개로 '나'를 파악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터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회복과 치유의 인문학' 강연을 한 연세대 사회학과 김왕배 교수는 "젊은 층과 고령층을 위한 정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들 사이의 ‘낀 세대’인 4050은 막중한 책임에 비해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라 이들이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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