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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버즘나무? 플라타너스? 나라마다 이름 다른 까닭

중앙일보

입력

올해 가을은 그리 쌀쌀하지 않더니 12월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추워지며 금세 한겨울 날씨가 됐습니다. 식물들도 겨울을 대비해서 잎을 떨어뜨리기 위해 가을에 단풍이 드는데요. 12월이 되었는데도 단풍이 아직 안 들었거나, 단풍이 들었어도 아직 잎을 매달고 있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버드나무·버즘나무·단풍나무처럼요. 그중 약간 생소한 이름의 버즘나무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즘나무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즘나무

우리가 길가에서 가로수로 만나는 버즘나무는 사실 양버즘나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보통 그냥 버즘나무로 부르죠. 양버즘나무의 학명은 ‘Platanus occidentalis’입니다. 북미 원산의 큰키나무로 서양에서는 ‘플라타너스’라고 하지요. 버즘나무(Platanus orientalis)는 서남아시아 및 남유럽 지역이 원산지예요. 같은 버즘나무과버즘나무속이지만 특징이 좀 다르죠. 이제 버즘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좀 감이 오나요.
버즘나무, 즉 플라타너스는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있다”라고 시작하는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라는 시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껍질이 얼룩덜룩하게 벗겨진 모양이 마치 버짐(버즘) 핀 것 같다 해서 버즘나무라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잎이 넓기 때문에 플라타너스라고 부르지요.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스즈카케노키’라고 하는데 이는 열매를 보고 붙인 이름입니다. 저마다 다른 관점에서 나무의 특징을 파악하고 다르게 이름을 붙여준 사실이 재미있죠.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즘나무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즘나무

우리나라에 심어진 가로수 중에 제일 많은 나무는 은행나무를 들지만, 두 번째로 꼽히는 게 바로 플라타너스입니다. 가로수로 심어지는 나무들은 특징이 있어요. 도시 공해에 강해야 하고, 잎도 넓어야 합니다. 도심 속 먼지들을 잎으로 붙잡아야 하거든요. 요즘에는 코로나19 등 전염병 탓에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녀 먼지의 영향을 좀 덜 받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때도 우리 대신 먼지를 먼저 잡아내 주는 가로수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버즘나무 열매는 탁구공만 한 크기로 단단하게 생겼는데, 모두 씨앗입니다. 양버즘나무는 가지 끝에 1~2개, 버즘나무는 3~5개 달리죠. 비 맞고 건조되기를 반복하다 보면 ‘톡’ 하고 터지면서 뭉쳐있던 마치 민들레 씨앗처럼 생긴 버즘나무 씨앗들이 바람에 날아갑니다. 이때 씨앗과 함께 나오는 털이나 잎 뒷면의 털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고 해서 미움을 받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은 면역력이 약해진 우리 인간이 원인이지 나무에 잘못을 덮어씌우는 것은 나무의 고마움을 오히려 무시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그 나무가 도심에서 묵묵히 그늘을 만들어주고 산소도 만들어주고 먼지도 걸러주는 역할이 얼마나 큰가요? 늘 주변에 있으니 고마움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즘나무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즘나무

우리가 플라타너스에 잘하지 못하는 일이 더 있습니다. 바로 가지치기인데요. 도심 속 가로수로 심다 보니 나무가 자라면서 주택가나 상가, 전봇대 등에 영향을 주는 일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가지를 댕강댕강 잘라버리면 모양도 좋지 않고 나무도 상처를 치유하고 새 가지를 내는 데 큰 에너지를 소모하게 돼요. 그런 과정이 반복된다면 차츰 기세가 약해지고 그사이에 병충해가 침투하면 나무가 죽게 될 수도 있죠. 나무의 생태를 고려해서 적절하게 가지치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버즘나무 잎은 다른 나뭇잎에 비해 크기도 크지만 조금 특이한 구조예요. 잎자루 끝부분이 주머니처럼 구멍이 나 있거든요. 겨울눈을 감싸게 되어 있는 구조인데, 왜 그런 형태를 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겨울눈을 싸고 있다가 겨울이 깊어지는 어느 때 떨어지니 겨울눈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닌가 유추하죠.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즘나무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버즘나무

겨울눈은 원래 싹이 나오면서부터 생겨나 있습니다. 봄에는 작게, 여름을 지나면서 조금씩 커가다가 가을에 제 모습을 갖추고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이듬해 싹을 냅니다. 그런데 추위에 적응하지 못하면 겨울눈도 죽을 수 있습니다. 버즘나무는 잎이 최대한 길게 매달려 있으면서 가능한 한 추위에 덜 노출이 되도록 겨울눈을 보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왠지 그 따듯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지요? 추운 겨울 도심 속 나무들의 고마움을 느끼며 따듯한 연말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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