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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해고하더니, 이직은 왜 도와줘?" 요즘 스타트업 ‘좋은 이별’에 애쓴다

중앙일보

입력

한 IT 스타트업 임원 A씨는 최근 회사가 경영 사정상 구조조정에 들어가자 직원들 이직을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회사 상황을 잘 아는 기업들에 직원 추천을 위해 연락하고, 채용 플랫폼에 들어가 직접 정보도 찾는다. A씨는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하게 됐지만, 그동안 열심히 일해준 실력있는 직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들이 새 직장을 잘 찾게 돕고 있다”며 “언젠가 다시 만나 일할 수도 있으므로, 좋게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최근 시장이 얼어 붙으면서 직원들 고용 유지가 어려워진 다른 회사들도 직원들의 전직을 도우려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경기 침체로 구조조정을 시작한 스타트업들 늘어나는 가운데, 일부 기업들은 퇴사가 확정된 직원들이 원활하게 새 직장을 찾을 수 있게 돕는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 퇴사 직원에 대한 전직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인재가 곧 자산인 IT 스타트업은 지금 잘 헤어져야 훗날 다시 인재를 유치할 수 있다는 분위기도 아웃 플레이스먼트 확산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렇게 관련 수요가 늘자 최근엔 전직 지원 전문 서비스도 나왔다.

채용 플랫폼 원티트랩은 지난달 30일 “경영효율화에 나선 기업을 대상으로 ‘전직 지원 프로그램’ 서비스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기업이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감축 대상이 된 직원들이 더 빠르게 새 직장을 찾을 수 있게 원티드랩이 도와준다는 것. 가령, 해당 직원들에게 우선적으로 면접을 연결해 주거나, 구인 회사들이 이 회사 직원들의 이력서를 먼저 볼 수 있게 해주는 식이다.

HR플랫폼 원티드랩의 기업 대상 전직지원 서비스 화면. 사진 원티드랩

HR플랫폼 원티드랩의 기업 대상 전직지원 서비스 화면. 사진 원티드랩

이게 왜 중요해  

이직의 시대, 기업엔 퇴사자와 관계도 중요하다.
① 아웃플레이스먼트는 자발적·비자발적 퇴사자를 위해 기업이 전직을 지원하는 제도. 노동 시장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미국에서 발달했다. 국내에선 IMF 금융위기 당시 구조조정기를 겪으면서 대기업 중심으로 도입됐다. 미국에서는 구조조정을 앞두고 직원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회사가 지원함으로써 구조조정 충격과 노사 갈등을 완화하는 데 활용됐다.

② 긴축 경영에 돌입한 스타트업이나 창업자 입장에서는 직원 전직을 지원하는 등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기업과 자신의 평판을 지킬 수 있다. 동시에, 인재 유치를 위한 장기 전략이기도 하다. 핵심 인력들이 바로 경쟁사에 이직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경영 상황이 호전됐을 때 이들과 다시 일할 미래를 기대하려면 잘 헤어져야 한다.

해외는 어때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서도 구조조정 칼바람이 분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운영사 메타는 지난달 전직원의 13%인 약 1만1000명을 해고하겠다고 결정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직원들에게 보낸 공지에서 “해고에 좋은 방법은 없지만 관련한 모든 정보를 가능하면 빠르게 제공하고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밝혔다. 메타는 구조조정 아웃플레이스먼트의 일환으로 직원들에게 최소 16주 이상의 기본급과 건강보험료 지급 등을 약속하면서 전문업체를 통한 커리어 지원과 채용 공고 조기 접근 등을 약속했다.

글로벌 핀테크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인 스트라이프의 패트릭 콜리슨 CEO는 지난달 직원들에게 인원 감축 계획을 알리며 “금전적인 지원 외에도, 퇴사하는 직원과 다른 회사를 연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훌륭한 전직 스트라이프 직원들의 고용에 관심이 있다면 연락해달라”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직접 올리기도 했다.

 스트라이프 CEO 패트릭콜리슨이 ″훌륭한 전직 스트라이프 직원 채용에 관심있으면 연락달라″며 올린 트윗. 트위터 캡쳐

스트라이프 CEO 패트릭콜리슨이 ″훌륭한 전직 스트라이프 직원 채용에 관심있으면 연락달라″며 올린 트윗. 트위터 캡쳐

국내 상황은

스타트업계를 제외하면 국내 대부분 기업의 아웃플레이스먼트는 고령 퇴직자 중심이다. 고령자고용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2020년 5월부터 1000명 이상 고용 기업은, 1년 이상 재직한 50세 이상 직원이 비자발적 사유로 이직하는 경우 이직일 직년 3년 이내 직업훈련, 취업 알선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SK텔레콤은 2019년부터 만50세 이상, 근속 25년 이상 직원 대상으로 ‘넥스트커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최대 2년 동안 유급 휴직과 창업 준비 등을 지원한다. KT는 만50세 이상 직원 대상 '내일설계휴직제도'를 통해 유급 휴직과 외부기관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2001년부터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로 경력컨설팅센터를 운영한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재취업자가 약 7000명에 이른다.

앞으로는 

인건비의 비중이 큰 스타트업들의 경우, 전직 지원 움직임은 앞으로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원티드랩 관계자는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경영 효율화에 나서면서 이직 시장에 나서는 인재가 늘고 기업들이 나서면서 관련 서비스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기업들은 전직 지원 부서를 따로 두고 운영한다. 퇴직예정자뿐 아니라 기존 직원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어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며“직무형 노동시장으로 변해가면서 관련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