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조만석의 미래를 묻다

인구감소·저성장 풀려면 ‘서울공화국’ 끊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수도권 인구 집중 방치할 건가

조만석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조만석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서울공화국’. 한국 사회에 이미 익숙한 말이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속담의 현대판이다. 취업시장에서는 판교 라인이니 기흥 라인이니 하며 ‘남방한계선’이라는 용어도 이미 정착된 모양새다. 태풍 힌남노가 포항과 동남권에 타격을 입혔을 당시 일부에서 ‘호들갑’이라는 말이 나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울공화국을 재차 떠올렸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은 지방 거주자들에게는 울분의 상징이며, 수도권 거주자들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말이다.

‘지방소멸’이라는 말도 있다. 2014년 일본에서 2040년까지 896개 지자체가 소멸한다고 보고한 ‘마스다 리포트’를 엮어낸 책 제목에서 유래했다. 전 세계 최하위 출생률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요즘은 아예 ‘인구소멸’이라고도 한다. 이제 흔하게 쓰는 말이 되었지만, 생각해 보면 굉장히 섬뜩한 말이다. 감사원은 2021년 보고서에서 2047년이면 229개 기초지자체 전부가 소멸 위험진입 단계에 들어가며, 이 중 157곳은 더 나아가 소멸 고위험에 처한다고 예측하였다. 기나긴 우리나라 역사에서 어떠한 절망적 전란에도 이렇게 대규모로 지방이 통째로 소멸한 적이 없었다.

‘허공의 메아리’된 국토균형발전
갈수록 커지는 지방소멸 경고음
‘수도권=국가경쟁력’ 논리 안 통해
국가 생존개념 차원서 접근해야

실패로 끝난 각종 균형발전 정책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가득 들어선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의 모습. [뉴스1]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가득 들어선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의 모습. [뉴스1]

그렇다면 ‘균형발전’이라는 키워드는 어떨까. 서울공화국과 지방소멸이 가지는 파괴적인 어감에도, 이를 극복하자고 하는 균형발전이라는 말만 나오면 온 국민이 피로감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것이 지금의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는 균형발전을 위해 선언되고 추진된 많은 정책과 사업이 지난 수십 년간 수도권 집중화를 막는 데에 끝내 실패함으로써 허공의 메아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국토 균형발전 또는 지역 간 균형발전은 우리 헌법에 세 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강조되고 있는 개념이다.  헌법 제120조 제2항에는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고 돼 있다. 122조는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123조 제2항을 보면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이런 헌법적 소명을 다 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 시절 공주·연기 지역으로 수도를 옮기고자 했던 임시행정수도 백지계획(1977)부터,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특별조치법(2004)과 혁신도시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2007), 현 정부의 지방시대 공약과 지방시대위원회 출범 추진까지 굵직굵직한 것만 나열해도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정책이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그 대표적인 결과물인 세종시, 각 도의 혁신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 자체의 성공 여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이것이 균형발전을 위한 것인지 또 다른 신도시에 불과한지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대학·교통·재정 등 일극화 가속

균형발전의 실패와 끝 모를 수도권 일극 집중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인서울대학’과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말로 대표되는 교육 이슈, 앞서 언급한 ‘남방한계선’으로 대표되는 일자리 이슈, SRT와 GTX로 대표되는 교통 이슈, 국제공항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경쟁력 이슈, ‘강남 불패’로 대표되는 부동산 이슈, 관습헌법으로 대표되는 고착화한 권력 및 인식 이슈와 편중된 문화·상업·재정 이슈까지 어느 하나 부정하기 힘들고 널리 알려진 타당한 이유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유를 잘 알고 있는데도 왜 균형발전은 성공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있을까. 진정 총인구의 과반(50.5%), 253명 지역구 국회의원의 121명을 차지하는 수도권의 정치적 영향력이 이 문제를 끈질기게 방해하기 때문일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균형발전의 실패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균형발전을 둘러싼 대원칙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설명할 수 있다. 결국 균형발전에 힘이 모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수도권을 더 키워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과 ‘어디서나 살기 좋게 균형발전을 이루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둘 다 꼭 필요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양극화는 자본주의 실패 사례

그러나 방법론에서는 전자의 실행력이 훨씬 좋다. 물론 경쟁력 확보가 마냥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쟁력 상승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정책과 자원이 집중되고, 나아가서는 민간과 개인이 자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후자인 균형발전은 갈 길이 멀다. 수도권에 대항하기 위해 비수도권을 키우자고 하면 또다시 비수도권에서 어느 지역을 키울지가 걸림돌이 된다. 지방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도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의 보전과 차별화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이 모든 걸 중앙이 나서서 강력하게 추진하자니 그것이 균형발전인가 싶고, 지방이 나서서 하라고 하자니 역량과 자원이 모두 심각하게 부족하다.

딜레마(dilemma)는 ‘두 개(di)의 명제(lemma)’라는 뜻이다. 대립 구도 하의 양자택일 상황을 의미하는 말이다. 딜레마를 풀어내는 방법의 하나는 명제가 유효하지 않음을 논증하는 것이다. 이를 ‘딜레마의 뿔을 잡는다’고 한다, 균형발전을 둘러싼 두 개의 딜레마는 사실 현대 대한민국에서 그 효력을 잃었다.

영국의 개발경제학자 폴 콜리어는 저서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양극화와 지리적 분단을 ‘자본주의의 실패’ 사례로 규정하였다. 자본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 반드시 공동체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보는 콜리어 교수의 관점은 균형발전의 딜레마 해결에 중요한 힌트가 된다. 이를 잘 풀어보면, 국가경쟁력 확보와 국토 균형발전을 더 이상 대립하는 관계로 볼 것이 아니라 공동체 회복을 통한 자본주의의 정상화와 그를 통한 성장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생존전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성장인가, 균형인가 딜레마

한국의 미래를 그릴 때 등장하는 두 가지 거대한 키워드는 ‘인구감소’와 ‘저성장’이다. 이 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균형발전과 경쟁력 확보가 모두 필요하다. 수도권 집중은 주택 문제, 일자리 문제, 교육 문제와 과잉 경쟁을 유발한다. 초저출생 현상의 핵심 원인이기도 하다. 지역별 합계출산율의 독보적 꼴찌에 서울이 위치하고, 전남·강원·경북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수도권 집중은 인구감소를 강화하고 있다. 성장 측면에서도 수도권 집중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서울 경기도에서 서울 평균 출근 시간이 1시간 12분이라는 서울시의 2021년 발표는 과밀 집중에 따른 엄청난 규모의 비효율성을 시사한다.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는 것은 더는 경제적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듯 국가 경쟁력 향상과 수도권 인구 집중의 비례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수도권의 경쟁력 향상이 더 이상 인구가 몰리는 형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딜레마에서 벗어났다고 하여 곧바로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도 될까 말까 했던 것을 둘 다 추구하라는 결론이니 이게 무슨 해결인가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갈팡질팡한 상태에서 상황에 대처하는 것과 상황인식이 더 또렷할 때 대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수십 년간의 실패를 거듭하며 균형발전이 허공의 메아리가 되었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을 아무도 내어놓지 않아서가 아니라 해결책에 대한 추진력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상황이 교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 집단지성 동원해야

주택·교통·대학, 수도권 규제, 초광역권 형성과 행정구역 재편, 지방분권을 위한 재정 분산 등 모두 명확한 목표하에 과감한 대안을 추진해 나가면 국가 경쟁력 확보와 균형발전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만 한다. 인구감소는 예정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다시 ‘신대한민국전도’로 돌아가 보자. 수도권 인구 집중의 미래는 암울하다. 국토연구원이 2020년에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2035년에도 수도권 과밀은 여전하며, 여타 지역은 동남권을 제외하면 비중이 극히 낮아질 정도의 불균형을 보여 주고 있다. 수도권 밖 국토 88%에는 사람이 텅텅 빈, 관광지와 농지·산지만 남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지방 인구를 빨아들여 버텨온 수도권이 지방소멸 시대에도 여전히 지속 가능할까. 생존전략으로서 균형발전에 임하면 지금의 우리 인식과 정부, 정치권의 대응은 너무 안일하지 않은가. 이제는 균형발전이 아니라 국가 균형생존으로서, 공통된 목표 아래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을 총동원해야 할 때다.

◆조만석=KAIST 학부에서 신소재공학과와 수리과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기술경영·경제·정책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를 거쳐, 2017년부터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조만석 국토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