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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옮기고 아파트 짓겠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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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화랑대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를 이전해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하다. 그러나 국가 안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정확한 방향성 없이 주택용 부지 확보, 지역 균형 발전, 다른 사관학교와의 형평성 등 즉물적이고 단순 논리만 등장해 실망이 크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어떤 후보는 육사를 자기 고향인 안동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했고, 현 대통령의 고향 사람들은 이 기회에 지역에 명소를 하나 더 만들자는 의욕에서 육사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장성 출신 인사는 최근 국방부·합참·육사를 모두 차령산맥 이남으로 이전하여야 한다면서 은근히 다음번 출마를 위한 지역 공약성 포석도 서슴지 않았다. 국가 안보가 작든 크든 이런 이기적인 생각으로 휘둘리면 나라에 큰 해독을 끼치게 된다.

화랑대는 뛰어난 간부 양성 터
통합사관학교로 육사 개편해야
통합군 체제에 맞는 인재 필요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현대전은 전후방이 따로 없다. 미사일에 전술핵까지 운영된다면 우리나라 중·남부 지역이 현재의 접경 지역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또 무기의 위력이 커져서 가급적 군 지휘부나 주요 부대는 분산해야 한다. 한곳에 몰아넣었다 전멸하면 다시 복원하여 반격할 길이 없다. 그래서 선진국에선 주요 부대일수록 분산 배치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지휘부와 별도로 지정생존자라는 이름으로 각료 중 한 사람을 격리해서 남기는 제도까지 운용하지 않는가. 적의 일격으로 지휘부가 절멸되고 전쟁본부가 초토화되어도 국가 통치기구를 온전히 유지해 반격할 수 있게 한 전쟁 논리에서 나온 지혜다. 이런 의미에서 국방부나 육사를 클러스터라는 단순 논리로 다른 기관과 한 곳에 몰아넣으려는 생각은 전쟁 논리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앞으로는 통합군 개념을 고려해야 한다. 육·해·공군으로 분류하는 방식은 1차 대전 이후 전쟁 수단을 고려한 데서 비롯되었다. 현대전은 보병부대가 고지를 점령하고 탱크가 방어 진지를 유린하는 육군, 전함·잠수함이 해양을 주름잡는 해군, 제공권을 장악하는 공군으로만 분류할 수 없다.

전쟁은 이미 다양한 전쟁 수단으로 발전되었다. 지상군·미사일군·우주군·드론군·사이버군·특수전군 등을 따로 독립해 발전시켜야 한다. 어쩌면 AI군도 따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육·해·공군으로 군 예산 자원을 나누는 것은 낭비 요소가 너무 많다. 통합군으로 운영하고 기능에 따라 분류하며 자원을 배분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국방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다양한 전쟁 기술이 전문화하려면 사관학교 교육부터 다양한 전쟁 기술·전략을 통합하고 전문화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사관학교도 통합사관학교로 개편되어야 한다. 육·해·공군이란 구시대적 분류 개념으로 간부를 양성하는 것은 통합군 개념과 다양한 전쟁 원리와 상반된다.

통합군 개념으로 사관학교를 개편하려면 화랑대에 통합사관학교 1·2학년을 두어 통합군 미래 간부들이 긴밀한 전우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3·4학년은 기능에 따라 여러 지역에 분산된 전문과정을 선택하도록 한다. 간부 양성 과정도 전문성과 통합성으로 운영하는 전략 개념과 일치하게 개편하는 것이 미래 국방 개혁과 부합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자면 화랑대의 육사 시설을 더욱 늘리고 교육 과정이나 환경도 통합군 개념으로 바꿔 다양한 기초교육이 가능하도록 개편해야 한다.

화랑대는 역사적·입지적으로 뛰어난 간부 양성 터였다. 아무리 과학기술군으로 무장한다 하더라도 국방력의 근간은 국가의 자주적인 상무 정신에 있다.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고 기능만 강조하는 전문 교육은 통합군 전략 개념을 왜소화하고 약화할 것이다. 화랑대에 통합사관학교를 두는 것은 기초교양을 함양한다는 목적에 잘 부합한다.

통합안보시스템을 운영할 간부 양성에 적합하고 이상적 입지 조건을 갖춘 화랑대를 아파트 숲으로 만든다는 것은 관운장의 청룡도를 소 잡는 데 쓰는 격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왕릉과 그 주변 자연환경을 훼손하면서 주택용지로 바꾸려는 생각은 국가 백년대계를 고려하지 않는 근시안적인 국토 이용론에 불과하다. 나라의 미래를 좀더 넓고 깊게 생각하자.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종찬 전국가정보원장·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