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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중꺾마’와 ‘졌잘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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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 문구가 적힌 태극기는 어디서 왔을까. 태극기 주인을 찾아 확인해봤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전이 끝난 직후, 관중석의 태극기 몇 개가 선수들에게 전달됐다. 이른바 ‘중꺾마’가 적힌 태극기는 그중 하나였다.

이 태극기는 경기 내내 관중석에 있었다. 후반전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 골로 16강에 진출하면서 ‘중꺾마’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됐지만, 중요한 건 경기 종료 전에 이미 한국 선수들에게 이 말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중꺾마’ 문구는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카타르에 간 김의민(29)씨가 포르투칼전 전날 밤 숙소에서 적었다고 한다. ‘Never give up’(포기하지 마) 등을 태극기에 눌러 쓴 김씨는 “응원하는 입장에서도 결과와 무관하게 끝까지 하겠다는 다짐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3일(한국시간)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 종료 직후 관중석에서 받은 태극기를 든 국가대표팀 선수들. [사진 대한축구협회]

지난 3일(한국시간)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 종료 직후 관중석에서 받은 태극기를 든 국가대표팀 선수들. [사진 대한축구협회]

손흥민 선수도 귀국 후 인터뷰에서 “포르투갈전을 앞두고 과연 몇 퍼센트의 (승리) 가능성이 있을까 했지만, 선수들은 외면하지 않고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투혼을 발휘해 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중꺾마’는 지난 10월 10대들의 월드컵인 ‘롤드컵’(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때 처음 등장했다. 일부 게임 팬 사이에서 쓰던 ‘꺾이지 않는 마음’은 올해 가장 중요한 말이 됐다.

‘벼락거지’ ‘흙수저’ 등 우울하고 부정적 의미를 담은 신조어가 난무하던 때라 ‘중꺾마’는 더욱 의미 있다. 이 말이 긍정과 희망을 담은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관련 있어서다. 승리와 패배, 우승과 탈락 같은 결과와는 관련 없다. 꺾이지 않고 열심히 하는 과정엔 부정적 의미가 개입할 틈이 없다.

지난해 도쿄 올림픽에서 유행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와도 다르다. 당시 메달을 따지 못한 우상혁(4위), 여자배구 대표팀(4위) 등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모두가 ‘졌잘싸’라며 그들을 응원했다. 그러나 ‘졌잘싸’를 보면, 잘 싸웠다는 말 앞에 졌다는 결과가 빠지지 않는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응원은 그래서 더 값지다.

지난 7일 지상파 방송에 나온 ‘다나카’는 개그맨 김경욱의 ‘부캐’(다른 캐릭터)다. 유행이 지난 명품 옷에 떡진 샤키컷 헤어스타일로 유창한 일본어와 어눌한 한국어를 쓰는 그는 이제 유튜브에선 안 나오는 데가 없다. 분명한 MZ세대의 스타다. ‘다나카’는 올해 중순부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그의 유튜브 채널엔 4년 전부터 꾸준히 영상이 올라왔다. 다나카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내가 하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주변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표를 받고 원서를 써야 하는 학생, 졸업을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취업준비생이 있다. 올해 응원은 그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 그 자체를 향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