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독일 벤츠공장, 컨베이어벨트 대신 ‘로봇’이 400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진델핑겐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스마트공장 ‘팩토리56(Factory56)’. 2020년 9월 문을 연 팩토리56은 ‘지구에서 가장 진보한 완성차 공장’으로 불린다.

지난 10월 말 중앙일보는 아시아 언론 중 최초로 이곳을 찾았다. 팩토리56에는 자동차 공장의 상징 격인 컨베이어벨트가 없다. 조립 중인 자동차 뼈대는 ‘플랫폼’이라고 불리는 로봇에 실려 주요 공정을 지나간다. 공장 내부에서는 플랫폼을 포함해 자동무인운반차량(AGV) 400여 대가 필요한 부품이나 장비를 나르고 있었다. 기자가 양해를 얻은 뒤 AGV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 분주히 움직이던 AGV 10여 대가 동시에 멈춰 섰다. 안내를 맡은 마누엘라 슈나이더는 “안전에 대해서는 100% 신뢰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웃었다.

관련기사

미국 동남부 테네시주의 주도(州都) 내슈빌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LG전자 클락스빌 세탁기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가로 100m, 세로 500m짜리 길쭉한 생산라인에서 165대의 AGV가 스스로 부품과 자재를 옮기는 모습은 마치 대학 캠퍼스에서 강의실을 찾아가는 학생처럼 보였다.

벤츠의 혁신…로봇이 부품 나르며 내연·전기차 동시에 생산 

팩토리56에선 무인 자율주행차량인 ‘플랫폼’에 차량이 실려 조립공정으로 이동한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팩토리56에선 무인 자율주행차량인 ‘플랫폼’에 차량이 실려 조립공정으로 이동한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무거운 전공 교과서를 들고 다니는 대학생처럼 본체보다 몇 배는 키가 큰 카트를 이리저리 옮기는 AGV가 있는가 하면, 임무를 마치고 ‘쉴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AGV도 있었다.

미국·중국·일본·독일 등 제조 선도국이 ‘공장 혁명’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세계 경제 다극화,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산업환경 변화가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제조업 현장을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DX)’에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다.

스마트 제조 혁신의 핵심은 유연 생산을 통해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고, 기업의 부가가치를 최대화하는 데 있다. 20세기가 값싼 소품종 대량생산(포디즘)의 시대였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건 비싼 값을 주더라도 만족도가 높은 프리미엄 상품인 셈이다.

전세계 생산시설 정보를 통합한 ‘MO 360’ 시스템으로 각종 정보를 태블릿PC로 전송해 ‘종이 없는 공장’을 구현했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전세계 생산시설 정보를 통합한 ‘MO 360’ 시스템으로 각종 정보를 태블릿PC로 전송해 ‘종이 없는 공장’을 구현했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가령 독일 팩토리56은 ‘풀플렉스 매리지(Fullflex Marriage)’ 공정을 통해 내연기관과 순수 전기차 구동계를 동시 생산할 수 있다. 현재 이곳에선 벤츠의 플래그십(최고급) 모델인 S클래스와 마이바흐 S클래스, 전기차 플래그십인 EQS를 혼류(混流) 생산한다.

요르그 부르저 메르세데스-벤츠 이사회 멤버 겸 공급망관리 총괄은 “이렇게 완전히 다른 구동계의 차량을 하나의 라인에서 만들지만 기존보다 생산 효율이 25%나 높다”며 “모듈 방식이어서 생산 차종이나 구동계를 완전히 바꾸는 데 1주일도 걸리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LG전자 클락스빌 공장에선 단순 자동화를 뛰어넘은 ‘지능화’도 엿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게 ‘예비 불량품’과의 전쟁이다. 곳곳에선 비전 카메라로 공정을 계속 촬영하고, 불량 포인트를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을 통해 불량이 발생하는 흐름을 미리 인지하도록 하고 있다. 손창우 LG전자 테네시법인장(상무)은 “스마트팩토리에선 조립 라인에 들어가기도 전에 불량을 걸러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가 일어나기 전 정보를 미리 예측하는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현실화한 셈이다.

정부와 기업이 호흡을 맞추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독일은 일찌감치 ‘인더스트리 4.0’이라는 비전을 내걸고 민관이 함께 제조업 혁신에 나섰다. 독일 디지털부와 인공지능연구소(DFKI)가 주도하지만 지멘스·보쉬·SAP 등 쟁쟁한 민간 기업이 함께하는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세부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텔스텐트 4.0’ 액션플랜을 가동해 중소기업의 참여를 확대했다. 산업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플랫폼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들을 보유한 미국은 DX의 선두주자다. 2011년 첨단 제조 파트너십(AMP)을 시작으로 올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르기까지 제조업 부활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 밖에 프랑스(인두스트리 뒤 푸트르·Industrie du Futur), 중국(중국제조 2025), 일본(이노베이션 25), 캐나다(인더스트리 2030) 등 이름은 다르지만 제조업 분야에서 혁명적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경쟁국에 비하면 한국은 겉핥기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정부에서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 윤석열 정부 들어선 ‘디지털플랫폼 정부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기구를 만들어 DX와 제조업 혁신에 공들이고 있다. 문제는 정부와 민간을 아우르는 중장기 전략이 전혀 구체화하지 못했고, 현장에선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가 2018년부터 추진해 온 스마트공장 구축 사업은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한 스마트공장 중 4분의 3 이상은 초보 단계여서 ‘숫자 채우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스마트공장으로 지정된 2만5039곳 가운데 1만9228곳(76.8%)은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최 의원 측은 “기업 경영을 위한 기본 솔루션으로 인식되는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만 갖춰도 ‘기초’ 단계 스마트공장으로 분류됐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스마트공장을 기초→고도화1→고도화2 단계로 구분하는데, 실제 스마트공장이라 부를 수 있는 ‘고도화2’ 단계는 343곳(1.4%)에 그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06년 이후 15년간 독일과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권을 유지해 오던 제조업 경쟁력 지수는 지난해 5위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조업 혁신을 위해선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제조업 혁명은 결국 유연화를 위한 것인데 양적 보급에만 치중하다 보면 오히려 경직성이 높아진다”며 “스마트팩토리 시스템보다 스마트팩토리에 대한 이해와 마인드가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벤츠 팩토리56

● 공사기간: 2년6개월
● 연면적: 22만㎡, 축구장 30개 크기
● 생산 차종: S클래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 EQS(2023년 E클래스 생산 예정)
● 재생에너지: 1만2000개 이상의 태양광 모듈, 5000메가와트피크(㎿p) 생산
● 에너지 저장: 자회사 메르세데스-벤츠 에너지, 1400㎾h 용량 에너지 뱅크
● 통신망: 고성능 WLAN, 5G 이동통신 네트워크 사용

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

제품 기획부터 제조·판매까지 모든 생산 과정을 정보통신기술(ICT)로 통합해 최소 비용과 시간으로 고객 맞춤형 제품을 생산하는 지능형 생산공장. 로봇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이 결합해 지능적 제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컴퓨터·인터넷을 활용한 이전 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제조 방식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