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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무소불위 182석, 휴일 장관해임안 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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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11일 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 등 183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82표, 무효 1표로 통과됐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야권의 해임건의안 단독 처리에 반발해 표결 직전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11일 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 등 183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82표, 무효 1표로 통과됐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야권의 해임건의안 단독 처리에 반발해 표결 직전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182석의 거야(巨野)가 일요일 아침 다시 완력을 행사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찬성 182명, 무효 1명으로 가결하면서다. 지난달 23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에 합의한 지 18일 뒤 핵심 증인의 해임부터 밀어붙인 것이다. 여당 국조특위 위원 전원이 반발해 사퇴했고 진상조사는 시작도 못 한 채 국정조사가 파행으로 치닫게 됐다. 거야의 독주가 거듭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끄는 야권이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마저 5조원 감액 수정안으로 단독 처리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예산안 야당 단독 처리는 헌정사엔 없었던 일이다.

이 장관 해임안은 11일 오전 11시 ‘원포인트’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18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82명, 무효 1명으로 가결됐다. 국무위원 해임건의는 헌법상 국회가 재적 의원(299명) 중 과반수(150명 이상) 찬성으로 한다. 이날 민주당 169명 전원과 정의당 6명 전원, 기본소득당 1명(용혜인), 국민의힘 1명(권은희), 무소속 의원 6명(김진표 국회의장, 김홍걸·민형배·양정숙·양향자·윤미향) 중 5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 박완주 의원은 표결에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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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들어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는 9월 29일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단독 처리 이후 벌써 두 번째다. 이번이 두 달 전(재석 170명 중 찬성 168명, 반대 1명, 기권 1명)보다 야권 결집세가 14명 더 늘었다.

다만 해임건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대통령이 거부하면 야당으로서는 강제할 도리가 없다. 윤 대통령은 박진 장관 해임안을 거부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해임안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이르면 12일 해임안이 대통령실에 공식 통보되면 윤 대통령 입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날 115석 여당 국민의힘은 시종 무력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회의장 입장을 막으려 일부 의원이 복도에 드러누워 “밟고 지나가시라”고 했지만 의사진행을 막지 못했다. 결국 표결 직전 퇴장해 로텐더홀에서 “해임건의안 강행처리=이재명 지키기·대선 불복”이란 피켓 시위를 벌였을 뿐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위원 7명 전원이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며 “해임안이 의결돼 국정조사는 무의미하고 정쟁에 이용될 뿐”이라고 보이콧을 선언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민주당은 애초 이상민 장관 한 명 탄핵보다 국정조사를 통한 참사 진상규명이 시급하다고 했던 게 아니냐”며 “해임안 강행은 실익도 없고 명분도 잃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태원 국조 첫발도 못 떼고 파행…여당, 특위위원 전원 사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폐기 시한을 3시간 앞두고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사진은 이 장관이 지난 8일 해임안 보고 때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있는 모습. 김경록 기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폐기 시한을 3시간 앞두고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사진은 이 장관이 지난 8일 해임안 보고 때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있는 모습. 김경록 기자

박 교수는 “‘다수로 뭐든 가능하다’며 정부 예산마저 수정안 단독 처리를 추진하다간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대 야당의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 단독 처리에 대통령실은 입장을 내지 않은 채 묵묵부답(默默不答)했다. 당초 새해 예산안 처리가 정기국회 회기(9일) 내 이뤄지지 못한 데 대한 공식 브리핑을 검토했지만 이마저 취소했다.

대통령실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의 실체적 진실 규명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주무장관 해임을 건의하는 것은 정치공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야당이 주장해 합의한 국정조사의 목적도 이의 연장선이라는 점만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실의 무반응 자체가 ‘가당치도 않다’는 메시지라는 의미다. 지난 9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발언 논란으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안을 강행했을 때도 대통령실은 이튿날 김은혜 홍보수석 명의 언론 공지에서 “‘헌법 63조에 따라 박진 장관의 해임을 건의한다’는 국회의 해임건의문이 대통령실에 통지됐다. 윤 대통령은 해임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정도로 대응했다. 이번에도 인사혁신처를 통해 해임건의가 넘어오면 별도 입장 없이 거부 입장만 간략히 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이 장관 해임안은 야당의 정략에 따른 ‘상수’였다면, 내년 국정 동력인 예산안 처리 지연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민통합위원들과의 오찬에서도 “법인세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가야 한다. 국민 주식투자를 활발히 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식 관련 세제도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거야가 더 나아가 이 장관 해임안에 이어 탄핵안, 새해 예산안 야당 수정안 단독 처리까지 극한으로 치닫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치가 헌정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 여기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대장동 의혹 수사가 맞물리면서 여의도 정치가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채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란 우려는 기정사실이 됐다.

일요일 아침 이 장관 해임안 강행이 그 신호탄일 수 있다. 국회가 2004년 이래 공휴일 본회의를 열어 통과시킨 건 이번이 열 번째로 그중 여덟 번은 추경을 포함한 예산안이었고, 유일한 예외는 2016년 2월 10일 설 연휴 중 북한 장거리미사일 발사 규탄 결의안 합의 통과였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 장관 해임안 강행과 예산안 처리 지연, 이태원 참사 국조를 관통하는 것은 ‘이재명 구하기’”라고 꼬집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은 이재명의 체포와 처벌에 쏠린 국민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 장관 해임안을 추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민주당에선 해임안 강행 당일 탄핵 발언이 나왔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해임안 가결 후 기자들과 만나 “이재명 대표와 해임안이 무슨 연관이 있겠나. 국민의힘의 억지 생트집”이라며 “이 장관 탄핵 여부는 윤 대통령의 입장이 나온 뒤 판단하겠다”고 했다. 친이재명계인 정청래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해임안을 대통령이 불수용하면 불같이 일어나 탄핵안을 통과시켜 국민 무서운 줄 보여줘야 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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