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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 정쟁에 볼모가 된 내년 예산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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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생은 뒷전, 힘 과시에 급급한 거야의 횡포

이태원 참사 책임 질질 끈 여권의 잘못도 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11일 야권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재석 의원 183명이 투표에 임해 찬성 182표, 무효 1표로 해임건의안을 의결했다. 역대 여덟 번째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통과이자 윤석열 정부 들어 박진 외교부 장관에 이은 두 번째 해임건의안 통과다. 국민의힘은 강력히 반발하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위 위원 7명 전원이 사퇴했다. 윤 대통령도 해임건의안을 거부할 게 확실해 정국은 급랭할 것으로 보인다. 윤 정부의 첫 예산안인 내년 예산안도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가 불발되며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여야 모두의 책임이 막중하다. 우선 시민 158명이 목숨을 잃은 대참사가 일어난 지 40일이 넘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고 물러난 인사가 없다. 이에 반발한 유족 89명이 협의회를 결성하고 목소리를 내자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권성동 의원은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막말을 퍼부었다. 정부·여당은 이 같은 정치적 책임과 전략의 부재로 야당의 해임건의안 강행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입법 권력을 쥔 민주당의 태도도 개탄스럽다. 이 장관 해임건의안과 예산안 중 무엇이 시급한가. 민생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후자부터 챙기는 게 순리였을 것이다. 이 장관 거취는 당초 여당과 합의했던 대로 예산 처리 뒤 국정조사 결과에 따라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자체 예산 수정안 통과’란 극단적 카드까지 내세우며 해임건의안을 밀어붙인 건 169석 의석을 앞세운 힘의 횡포다.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아 이재명 대표 수사를 가리려는 정치 공세란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장 뼈아픈 점은 이런 극단적 정쟁에 내년도 예산안이 볼모로 잡힌 것이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정기국회 내 예산안 통과가 불발된 건 처음이다. 법인세 최고 세율을 3%포인트 낮추는 정부 안을 민주당이 반대한 게 핵심 원인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정부 안을 통과시키되 시행을 2년 유예하는 중재안을 냈지만, 민주당은 이마저 걷어찼다. “법인세 인하가 고용 증대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라지만, 법인세가 줄어 기업 이익이 늘면 근로자 임금과 주주 배당이 늘어 투자 확대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 몸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던 김 의장조차 “이러다간 반도체를 대만에 빼앗긴다”며 법인세 인하를 촉구한 현실을 민주당은 직시해야 한다.

양당은 이제 이 장관 해임안 강행에 대한 심판은 여론에 맡기고, 예산안 처리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발 고금리에다 민주노총 총파업 등으로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데 내년엔 성장률이 1%대까지 꺼지면서 경제 환경이 더욱 암울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여야가 ‘윤석열표 예산’ ‘이재명표 예산’ 운운하며 싸움만 계속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김 의장이 데드라인으로 선언한 15일까지는 반드시 여야 합의안을 만들어 통과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