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與 국조 거부 명분만 줬다"…野내부도 우려한 이상민 해임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9석 거대 야당이 결국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일요일인 11일 단독 처리했다. 역대 여덟 번째이자 지난 9월 박진 외교부 장관에 이은 윤석열 정부 두 번째 해임건의다.

11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결의안 표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에 항의하며 김진표 국회의장실 앞 복도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결의안 표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에 항의하며 김진표 국회의장실 앞 복도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초 이 장관 해임안은 지난 8일 본회의(오후 2시)에 보고됐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국회 보고 뒤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처리돼야 하며, 기한(11일 오후 2시)을 넘기면 자동 폐기된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은 11일 오전부터 강행 처리 수순에 들어갔다. 이날 본회의엔 ‘공휴일 본회의 개의에 관한 건’이 먼저 상정돼 재석 281명 중 찬성 180명, 반대 101명으로 본회의 개최가 가결됐다.

이어 개최된 ‘원 포인트’ 본회의는 권은희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 114명이 퇴장한 채 진행됐다. 재적의원(299명) 과반(150명 이상) 찬성으로 통과되는 해임안 표결에선 183명이 참여해 찬성 182표, 무효 1표로 가결됐다. 인사에 관한 안건이라 무기명으로 진행된 만큼 실제 182표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민주당 169명 전원과 정의당 6명 전원, 기본소득당 1명(용혜인 의원), 국민의힘 1명(권은희 의원), 무소속 5명이 찬성표를 던졌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무소속 의원은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해 박완주·김홍걸·민형배·양정숙·양향자·윤미향 의원 등 7명이다. 이 중 박완주 의원은 휴일 본회의 개최 안건 표결에 불참했다. 나머지 무소속 6명이 표결에 참여해 그 중 1명이 무효표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크다.

해임건의는 일종의 권유인 까닭에 인사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따를 의무는 없다. 윤 대통령은 이미 박진 장관 해임건의를 거부했었고, 이번 논의 과정에서도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이 우선”이란 입장을 강조했기에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태원 국조 불참” 선언한 與

국민의힘은 오전부터 강하게 반발했다. 본회의 개의 직전 국회 본청 3층 국회의장실 앞 복도에 진을 치고 본회의 취소를 요구했다. 김 의장을 향해 “이례적으로 일요일에 본회의를 연 의장은 사퇴하라”고 고성을 질렀다. 김 의장이 본회의장으로 이동해야 할 시점에는 일부 의원이 바닥에 드러누워 “밟고 지나가시라”고 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 표결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 표결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회의가 개의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회의장에서 “협치파괴” “대선불복”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었다.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왜 조사도 하기 전에 행안부 장관부터 해임해야 하느냐”고 따졌고,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여야 합의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가동된 상황에서 해임건의가 야당 단독으로 처리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정조사 불참’ 카드를 꺼냈다. 야권이 국정조사를 주장할 때부터 이미 대통령실과 여당은 “진상규명 뒤 이상민 장관 거취에 대한 입장 표명”을 일종의 원칙으로 내세웠다. 경찰 수사든 국정조사든 먼저 진상이 뭔지 알아야 책임도 물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친윤(親尹) 핵심인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정치라는 탈을 쓰고 가슴에는 칼을 품고 다니는 정치 자객이다. 애초 국정조사는 합의해줘선 안 될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야당의 '이상민 해임안 강행'은 오히려 여당에게 국정조사 보이콧의 빌미를 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주호영 원내대표도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위원들이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며 “국정조사가 끝나기 전에 해임안이 의결돼 국정조사가 무의미하고 정쟁에 이용될 뿐이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탄핵소추안 발의 등) 민주당의 추가 조치를 알 수 없으므로 여러 상황을 봐가며 최종적으로 국정조사에 참여하지 않을 건지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 투표를 한뒤 투표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 투표를 한뒤 투표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야당으로선 실익이 훨씬 많은데도 갑자기 지도부가 이 장관 해임안 추진으로 급발진했다”며 “여당에 국정조사를 거부할 명분만 줬다. 정국을 끌어갈 카드 하나를 날려 먹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예산안 협상 파행까지 겹치면서 연말 정국은 더욱 얼어붙게 됐다. 김 의장은 15일을 예산안 합의 처리를 위한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지만 여야 관계가 악화하면서 합의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본회의 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은 이재명의 체포와 처벌에 쏠린 국민 관심을 분산시키고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 장관 해임안을 추진한 것”이라고 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 가결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 가결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해임안 가결 후 기자들과 만나 “이재명 대표와 해임안이 무슨 연관이 있겠나. 국민의힘이 억지 생트집을 벌이는 것”이라며 “수사를 한 뒤 이 장관에 대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논리구조다. 대법원 판결까지 몇 년이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장관 탄핵 여부는 윤 대통령의 공식 입장이 나온 뒤 판단하겠다”(박 원내대표)고 했지만, 강경파는 벌써 탄핵 추진을 주장하고 있다. 친명계 정청래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해임안을 대통령이 불수용하면 불같이 일어나 탄핵안을 통과시켜 국민 무서운 줄 보여줘야 한다”고 적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